연결 가능 링크

21일 타계 그레이엄 목사, 남북한과 인연 깊어...김일성에 성경 선물


지난 2002년 10월 텍사스 어빙에서 연설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지난 2002년 10월 텍사스 어빙에서 연설하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21일 소천한 미국의 세계적인 복음 선교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한반도와 인연이 깊었습니다. 아내인 루스 그레이엄이 평양 외국인학교 출신, 본인은 한국은 물론 북한도 두 번이나 방문해 김일성 주석에게 성경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정권은 그러나 그레이엄 목사를 김씨 일가의 수령 우상화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 1순위로 뽑혔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

미국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 있는 그레이엄 목사 기념 도서관에 가면 그가 남북한을 각각 방문했던 두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1973년 무려 1백 10만 명이 운집한 서울 여의도 전도 집회, 그리고 1990년대에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난 사진입니다.

그레이엄 목사는 6·25 한국 전쟁 시기인 1952년 성탄절 시기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5만 명의 신도들 앞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녹취: 그레이엄 목사 한국 방문 기록 영화] “Korea’s president Syngman Rhee welcomed the American preacher…”

당시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직접 맞이했고 전장의 많은 미군 병사들은 그의 메시지를 통해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레이엄 목사는 폐허가 된 한반도와 절망에 빠진 한국인들, 그리고 1년 반째 이역만리에서 적과 싸우고 있는 미군 병사들을 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메시지를 통해 남북한의 평화로운 통일을 기원했습니다.

[녹취: 그레이엄 목사 한국 방문 기록 영화] “Mr. Graham expressed hope that their country will be peacefully reunified……”

그레이엄 목사는 한국 방문 뒤 “지난 몇 년 동안 흘린 모든 눈물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울었다”며 “이런 경험이 나의 삶을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1973년 6월 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 집회에는 1백10만 명이 운집했다.
1973년 6월 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 집회에는 1백10만 명이 운집했다.

20여 년 뒤인 1973년 110만 명이 운집한 그의 여의도 전도 집회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녹취: 그레이엄 목사/통역 김장환 목사] “22 years ago, I was here in Korea. 22년 전에 저는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는 성탄절 때였습니다. 굉장히 추웠습니다. 제 일생 그렇게 추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의 전도 집회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모인 이 집회에서 그레이엄 목사는 한국인들에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던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녹취: 그레이엄 목사/통역 김장환 목사] ‘Love one another! 서로 사랑하라! ‘Love one another! 서로 사랑하라! ‘Love one another! 서로 사랑하라!”

당시 통역을 맡았던 김장환 목사는 한국으로 피란을 내려온 수백만 명의 북한 실향민 중 다수였던 기독교인들이 그레이엄 목사의 집회에 참석해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함께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을 각각 만났던 그레이엄 목사는 그가 선포했던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품고 1992년 서방 세계 목사로는 한국 전쟁 뒤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습니다.

당시 미국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주민을 세뇌해 자신을 신으로 우상 숭배하게 하는 김일성을 그레이엄 목사가 만나는 것은 부적절 하다며 방북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레이엄 목사는 언론에 “외교관이나 정치인 자격으로 북한에 간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로 갔다”고 말했습니다.

외가가 기독교 집안인 김일성 주석은 그레이엄 목사를 환대했고 그레이엄 목사는 성경책과 자신의 저서를 김 주석에게 선물했습니다.

1992년 4월 평양을 방문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자신의 저서와 성경을 선물했다.
1992년 4월 평양을 방문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자신의 저서와 성경을 선물했다.

한국 파송 선교사 출신으로 당시 그레이엄 목사의 통역을 맡았던 드와이트 린튼 목사는 지난 2007년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아 VOA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레이엄 목사가 김 주석의 특별 허가로 봉수교회 설교는 물론 평양의 한 실내 체육관에서 전도집회까지 열었다고 말했습니다.

린튼 목사는 김일성 주석이 그레이엄 목사의 아내인 루스 그레이엄이 평양 외국인학교를 다닌 인연을 들어 그레이엄 목사 부부를 초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파송 미국 의료선교사의 딸이었던 루스 그레이엄은 10대 시절인 1930년대 동아시아의 기독교 성지-예루살렘으로 불리던 평양의 외국인학교에서 몇 년 동안 공부했었습니다.

평양외국인학교는 기독교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 1900년에 설립돼 40년간 운영되다 1940년 11월 미국과 전쟁 중이던 일본 정부의 탄압으로 폐교됐습니다.

그레이엄 목사는 2년 뒤인 1994년 다시 평양을 방문해 김 주석을 만났습니다.

린튼 목사는 VOA에 김일성 주석이 당시 유년 시절을 얘기하며 “목사인 외삼촌이 교회에 가자고 여러 번 제의했지만, 낚시를 더 좋아해 교회에 따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널리 알려졌듯이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권사였고 외삼촌은 목사인 강량욱 초대 북조선기독교연맹 위원장이었습니다.

이후 이 단체는 조선그리스도연맹이란 이름으로 바뀌었고 3대와 4대 위원장은 강량욱의 아들 강영섭과 손자인 강명철이 세습하고 있습니다.

그레이엄 목사의 방북을 계기로 린튼 집안은 대북지원단체인 유진벨 재단과 조선의 그리스도인 벗들(CFK)을 설립해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민간단체 ‘사마리아인의 지갑’을 통해 역시 북한 주민들을 꾸준히 돕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북한은 현재 세계 최악의 기독교 탄압국으로 비난받고 있습니다.

국제 기독교단체인 오픈도어즈는 지난달 발표한 기독교 박해 관련 연례 보고서에서 북한을 17년 연속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가로 지목했습니다.

[녹취: 커리 회장] “North Korea is again the number one country in the world on the world watch list for persecuting Christians.”

이 단체의 데이비드 커리 회장은 북한은 김씨 일가를 우상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고 기독교는 사회에서 근절돼야 하는 적대적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탈북민 출신인 한국 새터교회 강철호 목사는 모든 북한 주민이 기독교 등 종교 반대 교육을 철하게 받고 자란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강철호 목사] “북한 동포들은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란 강력한 기독교 반대 교육을 받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탄압이 있기 때문에 정말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아닌 것이죠. 접할 수 있는 여건도 거의 막혀있다고 봐야 합니다.”

북한은 심지어 관영 매체들을 통해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우상화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지난 2016년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맞아 ‘미국 종교 지도자가 숭상한 현세의 하느님’이란 장문의 논평을 실었습니다.

신문은 그레이엄 목사가 과거 방북 당시 “김일성 주석은 현세의 하느님”이며 “이런 나라에 성경책이 과연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김 주석을 칭송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레이엄 목사는 “조선(북한)에 가서 전도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며 이는 인류의 한결같은 목소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레이엄 목사 측은 그러나 이런 북한 정권의 주장에 대해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레미 블름 그레이엄 목사 대변인은 워싱턴포스트 신문에 그레이엄 목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전혀 없다”며 그런 김정은 정권의 주장은 “그레이엄 목사의 신학이나 어법과도 크게 동떨어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북한은 과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을 “미국의 건국과 운명을 대표했던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하다”고 칭송했다고 주장하는 등 주기적으로 이런 거짓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교원 출신인 탈북 목사는 과거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가 주최한 청문회에서 북한 정권이 기독교를 왜곡해 우상화에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매우 보편적 현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탈북 목사: “북한 사회는 김일성이란 교주에 주체사상이란 경전에 의해 유지되는 국가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배치되는 기독교든 천주교든 또 다른 종교가 들어갔을 때 말 그대로 김일성 종교가 무너지고 훼손된다는 겁니다. 그럼 그 체제를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불렀던 김일성이 진짜 하나님이 아니구나란 사실을 알 때 주민들 속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그걸 막기 위해 북한 정권이 박해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레이엄 목사는 북한을 두 번 방문했지만, 역설적으로 과거와 현재 북한에 억류된 대부분의 미국인과 한국인은 기독교 목사나 선교사들입니다.

기독교 선교사였던 케네스 배, 임현수 목사, 로버트 김은 물론 현재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김상덕, 김학송, 김동철 씨, 그리고 김정욱 선교사 등 한국인 3명도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에 2년 동안 억류됐다가 풀려난 케네스 배 씨는 지난 20일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 인권회의에서 북한은 개인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할 기본적 자유조차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케네스 배] ““No rights to worship, no rights to speak, no rights to free vote, no rights to travel……”

배 씨는 그러나 2천 500만 북한 주민들은 국제사회가 자신들을 위해 싸우고 있음을 북한 주민들이 안다면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며 진실을 주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과거 북한의 봉수교회와 신학교를 방문했었던 데이비드 앨튼 영국 상원의원은 앞서 VOA에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이 선전용으로 활용하는 칠골교회가 증조할머니인 강반석이 다니던 곳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은 정권이 하루빨리 기독교 탄압을 멈추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