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출신으로 한국 유일의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인 최현미 선수를 미국 언론이 집중 조명했습니다. 최 선수는 오늘의 자신을 만든 것은 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소영 기자입니다.
‘더 이상 탈북자가 아니다. 최 씨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세계 챔피언이다’.
미국의 AP 통신이 지난 19일 탈북민 출신으로 한국 유일의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 최현미 선수를 소개한 기사의 제목입니다.
통신은 13살에 탈북해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유일한 세계 복싱 챔피언인 최 선수가 슈퍼페더급에서 통합 타이틀을 획득한 뒤 체급을 올려 세계 최고 여자 복서 가운데 한 명인 아일랜드 출신 케이티 테일러 선수에게 도전하는 야망을 갖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통신은 최 선수가 한국으로 탈북했을 당시 다른 많은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갖고 있던 자격을 대부분 인정받지 못해 빈곤과 차별을 겪어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 북한에서 권투에 재능을 보였던 최 선수가 한국의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탈북 출신 배경에 대한 모욕을 당한 후 다시 권투를 시작했다며, 최 선수는 권투가 성공적인 전문 경력을 쌓을 기회를 줄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습니다.
최 선수는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급우가 자신에게 욕설하며 ‘북한에 그냥 있지 왜 한국에 있는 내 앞에 나타났느냐’고 말한
사건은 감정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AP 통신은 한국 유일의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인 최 씨가 북한 출신을 앞세우는 탈북 복서라는 꼬리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최 선수는 고생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 자리에 왔는데 챔피언 타이틀 앞에 늘 탈북자라는 단어가 붙는다며, “여기 이 자리까지 오고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AP 통신은 최 선수가 2006년 한국 대표팀에 들어갔다가 이후 프로 선수로 전향했고, 2008년과 2014년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연달아 석권하고 방어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어 최 선수는 현재 미국 복싱 에이전시 소속으로 더 위대한 복서가 될 수 있는 미국에서 대부분 훈련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1990년 평양에서 태어난 최현미 선수는 11살 때인 2001년 김철주사범대학 총감독에게 발탁돼 권투를 시작했습니다.
최 선수는 2019년 VOA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여자도 권투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선했으며 부모의 반대도 오히려 권투에 더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경쟁은 무척 치열했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현미] 올림픽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10대 친구들을 전국에서 뽑아요. 한 숙소 안에서 10년 동안의 경쟁이 시작돼요. 그렇게 시작되면 친구가 없죠. 합숙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스파링을 해서 1등부터 20등까지 순위를 정해요. 두 번 세 번 이상 20등을 하면 바로 선수촌에서 쫓겨나요.”
최 선수는 2014년 아버지와 함께 탈북해 한국사회에 정착했고, 다시 권투를 시작했습니다.
3년 만에 프로 복싱에 데뷔한 최 선수는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세계권투협회(WBA) 여자 페더급 세계 챔피언 경기에 나갔습니다.
[녹취: 최현미] “제가 인공기를 달고 운동했던 선수다 보니까, 한 번도 제 의지와 상관 없이 뛰었고, 어릴 때는 못 느꼈지만 나라를 대표한다는 건 굉장히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기 때문에 제가 한국에 와서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굉장히 컸어요. 제가 선택하고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저의 선택으로 오른 자리였기 때문에 더 남달랐던 것 같아요.”
최 선수는 2008년 WBA 여자 페더급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고, 2013년 체급을 바꿔 슈퍼페더급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12월 콜롬비아의 칼리스타 실가도 선수와의 경기에서 판정승을 거두면서 미국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최 선수는 19전 18승 1무 0패, 네 번의 KO승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