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다룬 다큐 영화 ‘캠프 14’ 가 지난 8일 독일에서 개봉됐습니다. 이 영화는 14호 개천관리소에서 태어나 자란 뒤 탈북한 신동혁 씨와 관리소 보위원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인권 유린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사(글로벌 스크린)는 독일 극장 20 여 곳에서 영화가 상영 중이며, 지금까지 토론토 국제영화제와 암스테르담 국제영화제 등 14개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큰 호응을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영화를 제작한 마크 비제 감독은 8일 ‘VOA’ 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수용소의 끔찍한 실상을 세상에 알릴 뿐아니라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8일 비제 감독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비제 감독님 영화 개봉을 축하드립니다. 어떤 계기로 이 영화를 만드셨나요?
“지난 2008년에 베트남 전쟁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중에 워싱턴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워싱턴포스트’ 신문이 보도한 신동혁 씨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됐습니다. 신 씨가 14호 관리소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수용소 밖의 세상에 대해 몰랐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바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런 소재는 영화 감독으로서 평생 한 두 번 정도 밖에 만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중간에 쉬는 기간을 빼고 영화를 완성하는데 한 2년 반 정도 걸렸습니다.
기자)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까?
두 세 개 정도의 다른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단순하게 말해서 스토리 그 자체입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슬픈 일이죠. 몇 해 전 미국의 두 여기자가 북한에 억류되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 들을 데리고 온 얘기는 언론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었죠. 무척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안내원처럼 관객들을 이끌고 21세기에 이렇게 끔찍한 곳이 완벽하게 숨겨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관리소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도입부에 넣은 것도 그런 의도 때문입니다. 관리소의 실체를 위성을 통해 확인해 주면서 관객들과 여정을 시작한다는 의미였죠.
기자) 그럼 또 다른 메시지는 어떤 건가요?
“ 영화 속에서 인터뷰한 보위원 출신 2명은 제게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나찌를 연상케 했습니다. 그런 전체주의 체제는 인간에 대한 세뇌와 압제를 마음대로 조종합니다. 그 보위원들은 나찌처럼 괴물과 같습니다. 그 보위원은 당신과 저처럼 한 가정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관리소에 가면 수감자들을 강간하고 고문하고 죽이는 괴물이 됩니다. 그 괴물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저는 신 씨와 가해자 모두 피해자일 수 있는 이 구도를 관객 스스로 알아가면서 인간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길 바랐습니다.
문) 말씀 하신대로 가해자인 보위원 출신 탈북자 2명을 직접 한국에서 인터뷰 하셨는데, 그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지난 15년 동안 보스니아나 중동 등 많은 분쟁과 내전 지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나쁜 사람들을 많이 인터뷰했습니다. 관객들은 수 많은 피해자들을 보면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해자들을 인터뷰한 겁니다. 그런데 가해자들은 대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합니다. 가령 그런 일은 당시 보편적이었다거나 자신이 속한 부대나 조직이 했다고 둘러 댑니다. 그런데 그 전직 관리소 보위원들은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내가 했다고 말해 무척 당황했습니다. 내가 고문했다, 죽였다. 강간했다. 그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었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겁니다. 특히 22호 회령관리소 출신 권 모 씨는 지금까지도 전혀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적이 화려한 다른 보위원 출신 오 모 씨는 인터뷰 뒤에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문) 어떤 변화를 보였습니까?
“ 오 씨는 저를 쳐다보며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북한의 문이 열리거나 남북통일이 될 경우 자신이 고문했던 사람들이 살아 남아 자신에게 보복할까 두렵다는 겁니다. 오 씨는 그리고 나서 마지막 4분여 동안 자신이 범한 죄들을 나열했습니다. 또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인간인데 내가 그런 짓을 했는가’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지난 15년 동안 가해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문) 그러니까 영화가 단순히 수용소의 인권 유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얘기군요.
“ 그렇습니다 제 영화는 단지 수용소에 관한 영화가 아닙니다. 두 보위원과 신동혁 씨 모두 결국 북한 체제에 세뇌된 희생자들이란 메시지도 담겨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인간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란 대조적인 관계로 영화가 시작하지만 갈수록 양측은 비슷해집니다. 제가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14호 관리소에 관한 신동혁 씨의 생각이었습니다. 신동혁 씨는 여전히 관리소를 비판할 수 있는 판단력이 없었습니다. 엄마와 형은 규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처형됐고 자신은 엄마가 죽으면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는 겁니다.
문)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거나 가족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일텐데, 참 가슴이 아픈 얘기군요.
“ 그렇죠. 신동혁 씨는 수용소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다른 수감자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 가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은 과거 25년 간 감옥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을 경험한 뒤 감옥에 갔었습니다. 그 엄청난 차이가 처음부터 저를 움직였습니다. 신동혁 씨는 아무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수용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4살 까지 그 안에 있었습니다. 탈출을 시도하면 죽는다는 것만 배웠습니다. 그 때까지 수용소 담장 밖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 것이 제게는 충격있었고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겁니다.”
문) 비제 감독께서 과거 유대인들과의 아픈 역사가 있는 독일인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마음이 끌린 것은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그런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제가 독일인이기 때문에 특별히 이 주제에 끌린 게 아니냐구요.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전 그저 신동혁 씨의 이야기에 감동된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결코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시사회를 가졌는데 반응은 어떻습니까?
“시사회마다 수 많은 영화평론가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관람한 평론가들은 ‘편안하게 보기 힘든(tough) 영화다. 하지만 보라’ 는 평가를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볼수록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전반적으로 관객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캐나다의 한 유명 영화잡지는 이 시대 가장 중요한 다큐멘터리 가운데 하나라고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영화제 심사위원들의 기준은 아마 다른 것 같습니다. (웃음)
문) 끝으로 영화를 제작하면서 겪었던 일 중에 기억에 남는 것 한 가지만 얘기해 주시죠.
“많은 한국인들이 남북 통일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 두렵냐고 물었더니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서독인들이 수 많은 비용을 치르며 경제적 부담을 지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란 겁니다. 남북한 격차를 보면 자신들은 훨씬 더 큰 부담을 질 수 있기 때문에 통일이 두렵다는 거죠. 저는 한국인들이 통일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것 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21세기에 아직도 그런 끔찍한 정치범수용소가 북한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런 수용소를 운영하는 북한의 독재가 끝나야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것이 더 중요한 관점이라고 봅니다.”
이 영화를 제작한 마크 비제 감독은 8일 ‘VOA’ 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수용소의 끔찍한 실상을 세상에 알릴 뿐아니라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8일 비제 감독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비제 감독님 영화 개봉을 축하드립니다. 어떤 계기로 이 영화를 만드셨나요?
“지난 2008년에 베트남 전쟁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중에 워싱턴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워싱턴포스트’ 신문이 보도한 신동혁 씨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됐습니다. 신 씨가 14호 관리소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수용소 밖의 세상에 대해 몰랐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바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런 소재는 영화 감독으로서 평생 한 두 번 정도 밖에 만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중간에 쉬는 기간을 빼고 영화를 완성하는데 한 2년 반 정도 걸렸습니다.
기자)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까?
두 세 개 정도의 다른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단순하게 말해서 스토리 그 자체입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슬픈 일이죠. 몇 해 전 미국의 두 여기자가 북한에 억류되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 들을 데리고 온 얘기는 언론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었죠. 무척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안내원처럼 관객들을 이끌고 21세기에 이렇게 끔찍한 곳이 완벽하게 숨겨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관리소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도입부에 넣은 것도 그런 의도 때문입니다. 관리소의 실체를 위성을 통해 확인해 주면서 관객들과 여정을 시작한다는 의미였죠.
기자) 그럼 또 다른 메시지는 어떤 건가요?
“ 영화 속에서 인터뷰한 보위원 출신 2명은 제게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나찌를 연상케 했습니다. 그런 전체주의 체제는 인간에 대한 세뇌와 압제를 마음대로 조종합니다. 그 보위원들은 나찌처럼 괴물과 같습니다. 그 보위원은 당신과 저처럼 한 가정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관리소에 가면 수감자들을 강간하고 고문하고 죽이는 괴물이 됩니다. 그 괴물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저는 신 씨와 가해자 모두 피해자일 수 있는 이 구도를 관객 스스로 알아가면서 인간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길 바랐습니다.
문) 말씀 하신대로 가해자인 보위원 출신 탈북자 2명을 직접 한국에서 인터뷰 하셨는데, 그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지난 15년 동안 보스니아나 중동 등 많은 분쟁과 내전 지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나쁜 사람들을 많이 인터뷰했습니다. 관객들은 수 많은 피해자들을 보면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해자들을 인터뷰한 겁니다. 그런데 가해자들은 대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합니다. 가령 그런 일은 당시 보편적이었다거나 자신이 속한 부대나 조직이 했다고 둘러 댑니다. 그런데 그 전직 관리소 보위원들은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내가 했다고 말해 무척 당황했습니다. 내가 고문했다, 죽였다. 강간했다. 그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었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겁니다. 특히 22호 회령관리소 출신 권 모 씨는 지금까지도 전혀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적이 화려한 다른 보위원 출신 오 모 씨는 인터뷰 뒤에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문) 어떤 변화를 보였습니까?
“ 오 씨는 저를 쳐다보며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북한의 문이 열리거나 남북통일이 될 경우 자신이 고문했던 사람들이 살아 남아 자신에게 보복할까 두렵다는 겁니다. 오 씨는 그리고 나서 마지막 4분여 동안 자신이 범한 죄들을 나열했습니다. 또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인간인데 내가 그런 짓을 했는가’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지난 15년 동안 가해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문) 그러니까 영화가 단순히 수용소의 인권 유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얘기군요.
“ 그렇습니다 제 영화는 단지 수용소에 관한 영화가 아닙니다. 두 보위원과 신동혁 씨 모두 결국 북한 체제에 세뇌된 희생자들이란 메시지도 담겨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인간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란 대조적인 관계로 영화가 시작하지만 갈수록 양측은 비슷해집니다. 제가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14호 관리소에 관한 신동혁 씨의 생각이었습니다. 신동혁 씨는 여전히 관리소를 비판할 수 있는 판단력이 없었습니다. 엄마와 형은 규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처형됐고 자신은 엄마가 죽으면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는 겁니다.
문)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거나 가족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일텐데, 참 가슴이 아픈 얘기군요.
“ 그렇죠. 신동혁 씨는 수용소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다른 수감자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 가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은 과거 25년 간 감옥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을 경험한 뒤 감옥에 갔었습니다. 그 엄청난 차이가 처음부터 저를 움직였습니다. 신동혁 씨는 아무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수용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4살 까지 그 안에 있었습니다. 탈출을 시도하면 죽는다는 것만 배웠습니다. 그 때까지 수용소 담장 밖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 것이 제게는 충격있었고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겁니다.”
문) 비제 감독께서 과거 유대인들과의 아픈 역사가 있는 독일인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마음이 끌린 것은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그런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제가 독일인이기 때문에 특별히 이 주제에 끌린 게 아니냐구요.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전 그저 신동혁 씨의 이야기에 감동된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결코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시사회를 가졌는데 반응은 어떻습니까?
“시사회마다 수 많은 영화평론가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관람한 평론가들은 ‘편안하게 보기 힘든(tough) 영화다. 하지만 보라’ 는 평가를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볼수록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전반적으로 관객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캐나다의 한 유명 영화잡지는 이 시대 가장 중요한 다큐멘터리 가운데 하나라고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영화제 심사위원들의 기준은 아마 다른 것 같습니다. (웃음)
문) 끝으로 영화를 제작하면서 겪었던 일 중에 기억에 남는 것 한 가지만 얘기해 주시죠.
“많은 한국인들이 남북 통일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 두렵냐고 물었더니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서독인들이 수 많은 비용을 치르며 경제적 부담을 지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란 겁니다. 남북한 격차를 보면 자신들은 훨씬 더 큰 부담을 질 수 있기 때문에 통일이 두렵다는 거죠. 저는 한국인들이 통일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것 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21세기에 아직도 그런 끔찍한 정치범수용소가 북한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런 수용소를 운영하는 북한의 독재가 끝나야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것이 더 중요한 관점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