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 유엔 북한 인권 조사위 설립] 1.원동력

2007년 5월 21일 한국 서울에서 열린 북한 정치범수용소 인권탄압 실태조사 '잔인함의 집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강철환(오른쪽) 공동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지난 21일 사실상 만장일치로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 혐의를 가릴 조사위원회 설립을 결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지난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국제사회의 가장 강력한 조사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저희 VOA는 조사위원회 설립이 현실화 된 배경과 앞으로의 전망에 관해 살펴보는 세 차례 특집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조사위원회 설립 결의가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을 전해 드립니다. 김영권 기자입니다.

북한에 관한 유엔 조사위원회 설립에 가장 큰 근거를 제시한 것은 북한의 악명 높은 관리소, 즉 정치범 수용소 입니다.

정치범 수용소 문제는 지난 1991년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북한의 유엔 가입을 계기로 처음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93년 1차 북 핵 위기와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에 따른 북한 내 인도적 위기가 발생하면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15호 요덕관리소 출신 탈북자 강철환 씨의 자서전 ‘평양의 어항’이 2000년과 2001년 각각 불어와 영어로 출판되면서 다시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강철환 씨는 지난 2004년 워싱턴에서 열린 제1회 북한자유주간에 참석해 홀로코스트 박물관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이면서 ‘VOA’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녹취:강철환] “집단광기와 우상화, 그리고 공포정치. 히틀러와 너무 똑같았다는 거죠. 그런 폭압적인 독재권력이 존재하는 땅에서는 대량학살이 동반된다는 그런 진리를 알겠 됐습니다. 그래서 히틀러 정권 때와 똑같은 강제수용소가 북한에 있기 때문에 참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 것을 세상에 알리고 북한 사람들에겐 자기들이 겪고 있는 불행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말도 안되는 일인가를 알리고 싶어 장소를 홀로코스트로 택하게 됐어요.”

홀로코스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정권이 유대인 수 백만 명을 학살한 반인도적 범죄를 결코 잊지 말자며 세워진 기념관입니다.

강철환 씨에 이어 2003년에는 인권 전문가인 데이비드 호크 씨가 북한 내 수용소의 실상을 처음으로 파헤친 보고서 ‘감춰진 수용소’를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 북한과의 두 차례 인권 대화에 크게 실망한 유럽연합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전신인 유엔 인권위원회에 처음으로 북한인권결의안을 제출해 통과됩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서방세계의 정치적 모략이라며 결의안을 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과 헬 마그네 본데빅 전 노르웨이 총리,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 등이 나서 북한의 인권 탄압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된다며 유엔의 대응을 강하게 촉구합니다.

북한 정부가 `고난의 행군' 때 대량 아사 사태를 방치했고, 현대판 강제수용소를 운용하는 등 자국민 보호에 실패했기 때문에 유엔이 개입해야 한다는 겁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는 이 들과 공동으로 유엔 개입을 국제법적으로 뒷받침하는 ‘보호실패: 유엔 안보리의 대응 촉구’란 책자를 발표했습니다.

이 단체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VOA’에, 국제사회의 조사위원회 설립 촉구는 사실상 이 때부터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사무총장] “I think that most important work…”

민간단체들의 구체적인 목표와 구심점이 조사기구 설립으로 모아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지난 2009년에 열린 북한에 관한 유엔 인권이사회의 보편적 정례검토(UPR)가 국제사회에 조사위원회의 필요성을 부각시킨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지적합니다.

북한 대표단은 당시 회의에서 인권 유린 혐의들을 대부분 부인해 국제사회에 큰 실망을 안겨줬습니다.

[녹취: UPR 북한 대표단] “우리나라에는 정치범이란 말 자체가 없으며 정치범 수용소도 없습니다.” “이른바 납북자 문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민들을 여러 부류로 나누고 차별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국가는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들의 자유로운 활동 조건을 보장해 준다고 기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국제사회의 권고에 대해 이행안을 전혀 제출하지 않은 유일한 유엔 회원국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에 관한 조사위원회 설립 목소리는 이 때부터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 추동력은 유럽의회가 제공했습니다. 유럽의회는 2010년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 혐의를 규탄하며 조사위원회 설립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처음으로 채택했습니다.

유럽의회 인권소위원회를 이끌었던 하이디 하우탈라 소위원장은 결의안 채택 직후 ‘VOA’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연합이 총력을 다해 북한에 관한 조사위원회 설립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하우탈라 위원장] “Now I hope that the European Union will use with all energy…

비팃 문타폰 초대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도 2010년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참혹하고 지독한 인권 유린에 대해 국제사회가 책임 소재를 추궁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녹취: 문타폰 전 보고관] “We have a lot of information on torture, political prison camps…”

고문과 거대한 정치범 수용소 운용 등 조직적인 인권 탄압이 만연돼 있기 때문에 이를 고유항목으로 분류해 서둘러 조사를 검토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움직임에 고무된 국제 인권단체들도 조사위원회 설립에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휴먼 라이츠 워치와 한국의 북한인권시민연합, 브라질의 코넥타스는 2010년에 3각 연대를 구성해 북한의 인권 실태를 알리는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이어 2011년에는 세계 40여 개 인권단체들이 북한 반인도범죄 철폐 국제연대(ICNK)를 결성해 유엔과 정부를 상대로 북한 조사위원회 설립을 압박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버타 코헨 객원선임연구원은 ‘VOA’에, 이런 적극적인 운동이 유엔의 표결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코헨 연구원] “There are a lot of states now that voting for resolution…”

2011년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을 찬성한 나라는 123개국으로 늘었고, 지난 해에는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총회에서 결의안이 표결없이 사실상 만장일치로 채택됐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미국 등 주요국들은 조사위원회 설립에 미온적이었습니다. 핵 협상 등 북한과의 대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정부들의 입장이 바뀌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북한 14호 개천관리소에서 태어나 자란 뒤 탈북한 신동혁 씨였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