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투데이 풍경’입니다. 지난 주말 워싱턴에서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61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는데요, 그 중에는 남북 이산가족의 아픔을 기리는 미술작품 전시회도 있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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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음:판소리]
미국 수도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 한국전쟁 정전협정 61주년을 맞아 한인단체가 주관하는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기원하는 이 집회에는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데니스 쿠시니치 전 하원의원과 참전용사들, 평화운동가 등이 참석했습니다.
집회는 전쟁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구슬픈 판소리 가락에 이어 정전협정 체결 날짜인 7시27분에 하나 둘 씩 촛불이 밝혀지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이어 뉘엇뉘엇 해가 질 무렵 행사 내내 사람들을 궁금하게 했던 전시물에 환하게 불이 밝혀졌습니다.
바로 남북 분단의 비극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상징하는 설치미술이었습니다.
‘평화와 치유의 정신’이란 제목의 이 전시물은 180센티미터 높이의 숫자727모양 조각들이 약 10미터에 걸쳐 나열됐고, 그 앞에는 6개의 의자 모양 조각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습니다.
투명하고 길다란 폴리에스테르 플라스틱 필름들을 이어 만든 것으로, 얼핏 유리처럼 보이는데요 필름 안쪽에는 형광색 실들이 빽빽하게 압착돼 있습니다.
엉킴 없이 촘촘히 붙은 연두, 주황, 하얀 색의 수많은 실들이 의미하는 건 “끊을 수 없는 남북한의 인연”과 “보이지 않는 희생자들의 영혼”, “희망의 세계”입니다.
투명한 30여 장의 흑백 사진이 조형물에 부착됐는데, 한국전 당시의 모습을 담은 이 사진들은 한 많은 사연을 의미합니다.
조형물들에 불가시광선 (블랙라이트) 조명이 들어오자 빛을 받은 실들은 하늘로 날아 올라갈 듯 했는데요, 잊혀져 가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시금 기억해 치유한다는 의미입니다.
작품을 제작한 이은숙 씨는 지난 1990년대 독일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로, 2005년부터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어왔습니다.
통일 전 동서독을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에서 한반도 분단의 비극이 가슴에 와 닿았고, 북한 출신인 아버지의 사연을 뒤늦게 안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자녀 4 명을 모두 북한에 남기고 피난해서는 이를 숨기고 살아온 아버지와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게 된 어머니.
이은숙 씨는 전쟁 통에 맺은 두 사람의 인연이 있었기에 자신이 태어났다며, 이는 작가로서의 운명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은숙] “저희 엄마 아버지가 이산가족이시고, 6.25가 없었으면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이런 일을 하라고 그때 태어나지 않았나 생각을 해요. 지난해 숨진 아버지에게 가족들을 찾아 드리겠다고 약속했어요.”
이은숙 씨는 지난해 임진각에서 “정전 60주년, 그리운 북쪽 가족을 부르다” 라는 주제로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다며, 이번 전시는 그 연장선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씨는 이달 말까지 워싱턴의 한국문화원에서 6.25전쟁과 이산의 아픔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요, 정전협정 기념일을 위해 별도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한국이 아직도 전쟁 중이란 사실과, 자신의 아버지 같은 이산가족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링컨기념관 앞에 환하게 불을 밝힌 전시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신기한 듯 감상했는데요, 작품 설명을 읽으며 진지하게 감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녹취: 미국인 관람객] “I’m very touched that the artist is remembering….”.
[녹취: 미국인 관람객] “She wants to express that experience with others..”
“작가가 한국전쟁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것이 감동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을 것 같다” “작가가 아버지의 사연을 통해 같은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것이 감동적이다.”라는 반응입니다.
또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고마움과 자신이 느끼고 믿는 것에 대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미국인 관람객]” to show their appreciation and to get their word out and their feeling..”
이은숙 씨는 이산가족 세대가 사라지면 이들을 기억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며 한국 내 젊은이들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한인 2세가 주축이 된 민간단체 ‘리멤버 727’의 한나 김 대표는 이은숙 작가의 이런 안타까움이 잘 나타나 작품을 행사에 초대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나 김]”어두워지면 광이 나잖아요.그게 무슨 뜻이에요 몰랐던 게 안보였던 게 보인다고 하는 거잖아요. 7월 27일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거든요. 미국에만 해도 10만이 넘는 이산가족이 있어요. 사람들이 그 분들의 아픔은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이은숙 씨는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면서 휴전이 아닌 종전의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며, 자신의 작품이 발하는 빛은 그런 희망을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은숙] “우리는 전쟁이 끝난 걸로 알고 있어요. 전쟁 중인데 젊은 사람은 그걸 못 느끼고 있어요. 휴전이 아니라 아주 끝났으면 좋겠어요. 통일이 되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