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태권도 협력 약속…합의 과정과 전망

북한 태권도 시범단 선수들이 지난 2007년 4월 한국 춘천에서 시범 공연을 펼치고 있다. 당시 남북한은 서로 다른 태권도 기구의 통합 방안을 논의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북한 태권도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는 데 한 발 더 다가갔다는 소식을 26일 전해 드렸습니다. 남북한 태권도 당국이 그런 목표를 함께 추진하기로 공식 합의하면서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건데요. 태권도 통합의 첫 단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습니다. 양측이 이번 합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진통을 겪었고, 이를 현실화하는 데 어떤 걸림돌이 남아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백성원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진행자) 이번 합의의 주체가 남북한 태권도 당국이라고 전해 드렸는데요, 정확한 표현은 아니죠?

기자) 형식적으로는 남북한이 각각 주도하는 태권도 단체, 이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양측 모두 남북한 외에 여러 나라 선수들이 소속돼 있는 다국적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태권도는 한국 주도의 세계태권도연맹 (WTF)과 북한 주도의 국제태권도연맹(ITF)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발전적 협력을 약속한 의향서를 체결한 주체도 바로 이 두 연맹입니다. 다만 한국과 북한이 태권도 종주국이자 두 연맹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남북한 간 협상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진행자) 그래도 남북한 간 직접 합의는 아니고 양측이 대표하는 단체 간의 의사표현으로 봐야 하는 거죠?

기자) 예, 편의상 북한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가능성이 열렸다, 이렇게 소개됐지만 정확히 얘기하면 북한이 가입돼 있는 국제태권도연맹 소속 선수들이 앞으로 올림픽에 출전할 길이 열렸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현재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세계태권도연맹만 인정하고 있지만, 앞으로 이 구도를 바꿔 국제태권도연맹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하자, 그런 큰 방향에 합의를 한 겁니다.

진행자) 큰 방향이라고 했는데, 그럼 구체적인 방법론은 합의문에 담지 않았나 보죠?

기자) 그게 이번 의향서의 특징이자 약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총재, 그리고 북한의 장웅 국제태권도연맹 총재가 지난 21일 중국 난징에서 의향서에 서명했는데요. 문서명이 ‘Protocol of Accord’입니다. 그러니까 최종 합의문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보충 협약 성격인 겁니다. 그런 만큼 구체적인 협력 절차와 방법 대신 문서 한 장에 대체적인 원칙만 4개 항으로 정리해 놨습니다.

진행자) 내용을 좀 소개해 주시죠.

기자) 국제태권도연맹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가능성이 가장 주목을 받긴 했지만, 사실 의향서는 두 태권도 연맹이 서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전제에 가장 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원론적 입장 정도로 들릴 수 있지만 북한 태권도 당국자들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국제태권도연맹 본부 측과 이 문제에 관해 여러 차례 얘기를 나눴었는데, 이 전제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상당히 민감해 했습니다.

진행자) 그래도 의향서에 손에 잡히는 목표도 제시돼 있지 않았습니까?

기자) 예, 알려진 대로 두 연맹에 소속된 선수들이 서로의 경기규칙을 준수하면 상대방 단체가 주최하는 대회와 행사에 교차 출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국제태권도연맹 선수들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 그런 약속들이 담겨있긴 합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그걸 현실화할 것인지에 대해선 언급이 없습니다. 양측이 이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줄다리기를 했는데도 말이죠.

진행자) 어떤 점이 쟁점인가요?

기자) 그동안 북한 측은 국제태권도연맹 선수도 올림픽에 출전케 해달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한국 측은 좋다, 하지만 그러려면 세계태권도연맹 선수로 정식 등록하고 그 규칙을 준수해라, 그런 입장이었구요. 한마디로 옷을 갈아입으라는 거죠. 실제로 일부 국제태권도연맹 소속 유럽 선수들은 그런 절차를 거쳐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자국 선수들을 올림픽에 출전시키기 위해 한국 주도의 태권도연맹에 가입시킬 리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 조건을 좀 유연하게 하자는 게 북한 측 요구였지만 한국 당국에게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던 겁니다.

진행자) 앞으로도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닌 것 같군요.

기자) 장담할 수 없는 절차입니다. 조정원 총재와 장웅 총재가 이 문제를 포함한 협력안을 구두로 약속한 게 지난해 3월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문서화하는 데 1년 반이나 걸린 건데, 바로 이 문제가 대표적인 걸림돌이었습니다. 북측은 올림픽 출전의 문턱을 낮춰달라는 거고, 여러 단계의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 세계태권도연맹은 쉽게 의견을 모을 수 없었던 겁니다. 다만 북한의 입장에서 고무적인 부분은 이번 의향서 3 항에 국제태권도연맹 소속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가능 시기를 명시하고 있는 점입니다.

진행자) 빠르면 2016년 브라질 리우 하계올림픽 때부터 그렇게 하자고 제안했죠?

기자) 예, 북한 측 입장이 많이 반영된 걸로 보이는 문안입니다. 수 십 년 동안 다른 길을 걸으며 겨루기나 품새가 크게 달라져 기술적으로 조정할 부분은 많지만, 어떻게든 2년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약속한 겁니다. 따라서 이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양측이 어떤 식으로 조정하고 어느 선에서 타협할지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진행자) 적어도 2년은 시간이 있으니까요. 의향서에 주목할 부분이 또 있나요?

기자) 두 태권도연맹이 각각 다국적 시범단을 구성하자는 제안입니다. 전세계를 돌면서 태권도의 위상을 높이자는 건데, 거기에는 남북한 방문도 포함돼 있습니다. 다소 의아한 건 최근까지 북한 태권도 당국자들이 “남북한 선수들이 포함된 시범단”을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의향서에는 두 연맹 “각자의 다국적 시범단”으로 표현돼 있어서 남북한 선수들이 한 팀을 이루는 데는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 약속대로라면 북한 태권도 선수들의 한국 시범, 반대로 한국 선수들의 북한 시범도 기대해 볼 만 합니다.

진행자) 의향서에는 4개 항 밖에 담기지 않았는데, 여기까지 오는데도 우여곡절이 참 많았죠?

기자) 예, 말씀 드린 대로 두 연맹 총재가 독일에서 만나 구두로 합의하고도 이걸 문서화하는 데 1년 반이 더 걸린 건데요. 그래도 시작은 희망적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19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 합의서에 서명하기로 했으니까요. 이어 다음달 4일 양해각서에 체결하는 수순까지 밟으려고 했지만 양측의 입장차가 불거지면서 결국 불발로 끝났습니다. 양측은 그 뒤에도 수 차례 양해각서 초안을 주고받으며 세부안 조정을 시도했지만 쉽게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원래 스위스 로잔의 국제올림픽위원회 본부에서 서명식을 갖기로 했는데, 결국 중국에서 의향서를 체결하지 않았습니까? 장소가 갖는 상징성을 감안할 때 양측이 이 점에서도 역시 의견을 달리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