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가 고향인 한국의 실향민들이 서울의 현충원을 찾아서 6.25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참전용사들의 묘역에 참배했습니다. 서울에서 박은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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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현장음]
버스를 타고 서울 국립현충원 여기저기를 돌면서 현충탑에 헌화하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립니다.
[녹취: 현장음]
기온이 뚝 떨어진 1월, 70대부터 90대까지 어르신들이 서울 국립현충원에 모였는데요, 이북오도위원회의 함경북도 도민들입니다. 이북오도란, 1945년 현재 행정구역상의 도로서 아직 수복되지 아니한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로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북 5도의 임시 사무소는 당해 관할지구가 수복될 때까지 서울특별시에 두며, 이북 5도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동처리하기 위하여 ‘이북 5도위원회’를 두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북오도위원회의 각도 도민들은 매년 1월에 이렇게 현충원을 참배하는데요. 함경북도의 박기정 도지사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녹취: 박기정, 이북오도민 위원회 함경북도 지사] “ 매년 1월 달이 되면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 호국영령들, 나라를 지키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에게 저희가 영면을 하시라고 넋을 기리는 행사를 합니다. 거기에서 우리 함경북도 도민회에서도 같이 오셔가지고 같이 참여를 하는데 다들 진심으로 순국하신 분들에 대해서 추모를 하고 그러기 때문에 이 추모식이 끝나고 나면 그래도 좀 마음이 편안하고 그렇습니다.”
[녹취: 현장음]
함경북도민들은 특히 김백일 장군의 묘지를 참배하는 일을 매년 빼놓지 않는데요, 김백일 장군은 6.25 한국전쟁 때 38선을 맨 먼저 돌파한 한국 육군 제 1군 단장입니다. 김백일 장군은 만주 연길에서 출생했지만 원래 그의 할아버지는 함경북도 명천에서 살고 있었는데,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만주 간도로 이주했습니다.
[녹취: 박기정, 함경북도 지사] “김백일 장군은 잘 아시겠지만, 우리 흥남철수 작전의 영웅이십니다.”
참배를 온 함경북도 도민 중에는 6.25 한국전쟁 당시 김백일 장군과 함께 한 동지들도 있는데요, 오래 전 함께 한 전우의 묘 앞에선 노병들을 만나봤습니다.
[녹취: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 “함북 삼 일의 약속, 함경북도 삼 일의 약속 전우회의 회장 방성운입니다. 김백일 장군은 우리 부대의 백골부대의, 제 4대 사단장을 하셨습니다. 아주 강직하고, 지장이면서 용장이었죠. 대한민국에서 장군 중에서 나는 저 분이 제일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나라를 위해서, 지금도 저 양반 돌아가셔서 남북통일을 현재, 돌아가셔도 거기에서 기원하고 있을 겁니다.”
“그 때는 어떻게 된 건지 몰랐지. 정보도 못 듣고. 잡혀서 죽을 것 같고 그래서 나도 길에 나가니까 젊은 사람만 줄 서 있더라고. 거기 가서 서 있었지 뭐. 그런데 그게 마침 이긴 날 한 이 백 명이 젊은 사람들만 바로 철수하는 배를 탔지 뭐.”
“지금 전우들도 다 가고 대전에 가서도 친구들을 묻고 오니까 참 눈물 나요. 통일이 될 줄 알고 그렇게 했는데, 안 되잖아요. 지금까지. 말을 못 해.”
함경북도민들은 새해 첫 달 현충원을 찾아 참배하면서 통일을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이북오도민위원회 함경북도 도민] “고향 꿈을 꿨거든. 그런데 고향집은 그대로 있는데 사람은 하나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거야. 내가 고향에 갔는데, 통일 돼 가지고. 와, 난감하더라고. 집은 옛날 집은 다 그대로 있는데, 사람만 아닌 거야. 사람은 내가 알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야.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거지. 참 통일이 빨리 돼야 되는데.”
“시댁 어른들이. 정말 이런 기회를 통해서 정말 어르신들 찾아 뵙는 마음이 참 한 편으로는 진작 못 찾아 뵈었다 하는 게 좀 그렇고. 뭐 고향 얘기들 하시지요. 봄에 왔을 때 다르고 가을에 다르고. 우리 고향 어르신들 체육대회가 일 년에 두 번 있더라고요. 봄, 가을로. 그럴 때마다 달라요, 어르신들이 많이 안 보여요.”
“지금 왕래를 하는 거를 항상 내가 건의하는 사항인데 그게 실현이 되려나 모르죠. 이번에 수소탄 저렇게 했으니까 뭐 그것도 실현이 어렵겠고. 지금 외국에 다 나가서 여행하고 다 왕래를 할 수 있는데 같은 민족끼리, 우리끼리 하면서 이게 못하니까 이게 답답한 거죠. 그렇죠. 그러니까 중국에 가서 이렇게 건너다 보고 말잖아요. 빨리 통일이 돼서 고향에 가서 이런 모임 가지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참 갑갑하죠.”
[녹취: 현장음]
서울에서 VOA 뉴스 박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