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9일 실시되는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남북관계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북한의 반응을 물은 뒤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했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대선 후보들의 토론이 북한의 인권과 민생에 필요한 실질적인 대북정책 논의에 더 초점을 맞추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인권 문제는 유엔헌장과 세계인권선언이 핵심으로 다루는 인류보편적 사안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치적, 이념적으로 크게 갈라져 왔습니다.
보수세력은 북한 주민의 기본적 존엄 등 정치·사회적 자유를 강조하고 있고, 진보세력은 보편적 자유보다 식량권과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인권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집권당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은 물론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에 대한 표결도 달라져 왔습니다.
유엔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이 처음 제출됐던 2003년에 현 유엔 인권이사회의 전신인 인권위원회는 찬성 28, 반대 10, 기권 14로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노무현 정부는 표결에 아예 불참했습니다.
당시 ‘뉴욕타임스’ 신문 등 매체들은 심각한 인권 문제보다 남북 화해를 강조하는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서방세계에서는 인류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주저하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됐습니다.
에드 로이스 당시 공화당 하원의원은 북한의 열악한 인권 참상을 국제사회가 이해하는 데 (한국의 기권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국제 인권단체들도 한국의 자랑스런 자유와 민주주의 역사에 부끄러운 일이라며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결의안의 취지에 동감한다면서도 남북관계 개선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불참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2004년과 2005년 표결에서는 불참 대신 기권을 했습니다.
이어 2005년 유엔총회도 처음으로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역시 기권했습니다.
그러다 2006년 표결에서 돌연 찬성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북한의 첫 핵실험으로 급변한 안보환경과 국제사회의 비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배출국이란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됐습니다.
유엔 사무총장 선출 전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했던 반기문 전 외무장관입니다.
[녹취: 반기문] “처해 있는 현실이 남북 화해, 교류협력도 추진해 나가면서 북한의 인권도 개선해 나가야 하는 참 어려운 입장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7년 한국이 다시 유엔총회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으로 돌아서자 국제사회의 비난이 강하게 쇄도했습니다.
유럽연합과 결의안을 공동 제출한 다카스 유키오 유엔주재 일본 대사는 표결 뒤 기자들에게 “실망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다카스 대사] “human rights situation in DPRK including….”
새 결의안에 남북정상회담과 6자회담 진전 환영 등 보완 노력을 많이 해 한국이 찬성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북한의 심각한 인권 문제에 기권을 해 실망스럽다는 겁니다.
미국 정부는 공개적인 반응은 삼갔지만 이날 표결에 앞선 논의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방관하는 것은 유엔의 기본 기능을 훼손하고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에둘러 비판했습니다.
결의안에 찬성한 97개 나라에 한국이 빠지자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며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인류보편적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기권했다고 설명했지만 인권단체들로부터 북한의 인권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도 않았는데 입장을 바꿨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유엔의 유럽연합 관계자들은 ‘VOA’에,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 개선을 선도해야 할 한국의 진보 정부가 나쁜 선례를 남겨 개탄스럽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정권이 바뀌면서 한국 정부는 최근까지 계속 북한인권 결의안에 찬성은 물론 공동 제출국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고 있는 논란은 지난 2007년 한국의 표결 기권과 직결돼 있습니다.
당시 결의안에 기권한 한국 정부의 결정이 북한 정부의 반응을 타진한 뒤에 이뤄졌는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겁니다.
이 문제는 송민순 당시 외무장관이 문건까지 공개하면서 제기했고, 이에 대해 현재 유력한 대선 후보인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런 논란에 관계없이 북한 정권의 반인도 범죄가 국제사회에 공론화가 됐기 때문에 한국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10년 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워싱턴의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입니다.
[녹취:스칼라튜 총장] “외교적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중요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인권이사회가 합의로 투표없이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를 설립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유엔총회도 그렇고 유엔 안보리도 그렇고. 그런데 대한민국이 그런 동맹(국제공조)에서 빠지면 안됩니다. 대한민국 없이 그런 노력들을 계속하기가 상당히 어렵지요. 만약에 또다시 그렇게 된다면 아주 크게 실망하게 될 겁니다.”
뉴욕에 본부를 둔 휴먼 라이츠 워치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담당 부국장은 22일 ‘VOA’에 국제사회는 북한 정권의 만연된 인권범죄 뿐아니라 주민들의 민생과 빈곤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한국 대선 후보들이 서로에 대한 비난 공세보다 미래 실질적인 대북정책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논의에 초점을 맞추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