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선 르포] 유권자들 “익숙해진 북한 위협보다 경제와 적폐 청산 중시”

4일 한국 고양시 일산 문화공원에서 열린 대선후보 집중유세 현장에서 시민들이 대형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닷새 뒤인 오는 9일 대통령 선거가 실시됩니다. 한국인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미국의 강경 대응으로 한반도 긴장이 상당히 고조돼 있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유권자들은 안보 문제 보다 경제나 `적폐 청산’을 후보 선택의 우선순위로 꼽고 있습니다. `VOA' 방송의 한국 대통령 선거 특별기획, 서울에서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전쟁기념관 안내자 목소리] “6.25전쟁은 배경부터 발발, 그리고 진행되는 순서부터 제가 안내를 해 드릴 겁니다…”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 주는 이 곳에는 많은 학생들이 현장 수업을 위해 방문하지만 이들에게서 진지함을 엿보기는 힘듭니다.

[전쟁기념관 앞에서 학생들이 웃으며 크게 떠드는 소리]

전쟁기념관에서 수 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70대 할머니 이승희 씨는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별 관심 없이 전시관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녹취: 자원봉사자 이승희 씨] “학생 아이들이 많이 찾아와요. 선생님들이 데리고 오는데, 요새 아이들은 제가 보기에도 별 관심 없이 그냥 한 바퀴 빙 돌아서 간다는 차원 같아요. 안타깝지요”

이 씨의 지적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 유권자들의 반응에서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습니다.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한반도 위기가 상당히 고조됐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안보 위협을 바라보는 세대 간 차이가 더 뚜렷해 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서울역에서 만난 60대 남성 최만성 씨는 국민들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의 심각성을 너무 모른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건너편에 앉은 20대 남성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녹취: 최만성 씨] “나라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국민들이 심각성을 모릅니다. 그래서 답답해 미치겠습니다.”

[녹취: 20대 남성] “예전부터 계속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조금은 늘 그렇듯이 그냥 그렇게 넘어가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신뿐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이 북한 정권의 협박에 많이 익숙해져 있고, “또 저러는 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단체인 리얼미터가 한국 `CBS’ 방송의 의뢰로 지난 1-2일까지 유권자들을 조사한 결과 대선 투표 때 후보를 선택하는 제1의 기준에서 안보는 다른 사안에 크게 밀렸습니다.

가장 높은 선택기준은 ‘적폐 청산과 개혁 의지’로 27.5%, 이어 24.5%가 ‘민생과 경제 회복 능력’이라고 답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안보 수호’는 18.5%였습니다.

지난달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5%가 후보들의 경제 정책에 관심을 보인 반면 북 핵 문제 해법에는 9%만이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서울역에서 만난 30대 장 모 씨는 이런 결과가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장모 씨] “관심사는 아무래도 촛불집회 이후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니까 적폐 청산이죠. 경제도 말 할 것도 없이 우리 지금 가족들 만나러 여행 가는 분들이 대부분일텐데 지금 청년실업이 굉장히 심각하니까 대부분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이런 황금 연휴에도 여행도 제대로 못할 거에요. 그런 거 생각하면 당연히 경제죠”

북한 정권의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시각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영어 강사인 존 매넌 씨는 “한국인들이 세계 누구보다 위기 고조와 긴장 상황에 익숙해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매넌] “I think the South Koreans are probably more used escalation…”

한국인들은 실질적 위협보다 정치적 수사가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고, 자신도 마찬가지란 겁니다.

한국인들의 가치관과 삶을 외국인의 시각에서 바라 본 책 ‘서울 맨’의 저자인 ‘워싱턴 포스트’ 신문 기자 출신 프랭크 에렌스 씨는 한국인들이 북한의 도발을 계속 흡수하고 감내하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에렌스] “I think there’s a feeling among South Koreans that the North..”

한국인들은 “불량배 집 옆에 사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란 겁니다.

에렌스 씨는 자신도 한국생활 초기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겪으며 `전쟁지대’에 왔다는 생각을 했지만 6개월 후에는 무덤덤해 졌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내 정치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그 ‘더 코리언 외국인’(The Korean Foreigner)운영자인 존 리 씨는 북 핵 위기에 무감각한 이유를 “북한 정권이 이성적”이란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존 리] “The idea is they are not irrational…”

전쟁이 일어나면 남북한 모두 끝장이란 것을 북한 정권이 잘 알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은 체제 생존을 가장 중시하는 김 씨 정권이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존 리 씨는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