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의 절반 이상은 북한에 있을 당시 통일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김정은체제가 굳건해지고 있다는 인식이 북한 내에서 확산하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가 크게 꺾인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한상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해 한국에 온 탈북민의 상당수는 북한에 머물 당시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해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해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민 132명을 대상으로 지난 6~8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북한에 있을 때 통일이 언제쯤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6%가 ‘통일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설문조사 결과 당시 44%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10년 안에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응답은 지난해 45%에서 올해 26%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또 ‘3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봤다’는 응답은 2%에서 9%로 증가해, 통일이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는 탈북민이 크게 늘었습니다.
북한 정권이 유지될 수 있는 예상 기간을 묻는 질문에는 ‘30년 이상’이라는 응답자 비율이 28%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는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북한 정권의 안정성에 대한 인식이 증가했음을 보여줍니다.
‘5년 미만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응답은 지난해 10%에서 올해 8%로 감소했습니다.
설문조사를 실시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측은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정권이 체제 유지 기반을 다져가는 것으로 풀이하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가 한층 꺾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또 통일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견해와는 달리, 통일의 필요성과 당위성에는 응답자의 거의 대부분이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탈북민의 96%가 통일이 매우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아울러 북한에 있을 때 통일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북한의 현 체제로 통일’해야 한다는 응답이 12%로 지난해 조사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한국식 체제로 통일해야 한다는 응답은 38%로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지난해 응답 비율보다는 줄었습니다.
남북한 체제의 절충을 선택한 응답자는 15%, 어떤 체제든 상관없다는 응답은 26%였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직무 평가는 ‘매우 잘못하고 있다’가 40%, ‘대체로 잘못하고 있다’가 30%로 부정적 평가가 70%를 차지했습니다.
‘대체로 잘하고 있다’, ‘매우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각각 23%와 8%로 조사됐습니다.
이번 조사와 관련해 탈북민, 북한인권 문제에 관여하는 북한정의연대 정 베드로 대표는 북한 주민들이 통일을 생각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정 베드로 대표 / 북한정의연대]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정권의 통제 강화 때문에 통일이 쉽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그러한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보고요.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은 외부세계와의 단절 가운데 있으면서 북한 김정은체제와의 사이에서 갈등이랄까요, 통일에 대한 것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환경에 놓여 있겠죠.”
정 대표는 북한 내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싸우는 주민들에게 사실상 통일을 생각할 여유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민은 모두 1천 417명입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한상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