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서울에서 만나는 평양 아파트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도시건축비엔날레에 평양 아파트를 재현한 '평양살림' 전시가 마련됐다.

북한 정권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도발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서울에서는 평양의 가정집을 보여주는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평양 시민들의 생활상을 이해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는 견해와, 핵·미사일 위기 속에 북한인들의 삶을 왜곡해 미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녹취: 탈북민 안내자 문유진 씨]

갈색으로 거의 통일된 가구들 사이에 북한산 물건들이 곳곳에 가득 놓여 있습니다.

주방과 거실에는 냉장고와 평면 TV, 자녀 방에는 침대와 인형, 책상, 북한 교과서들도 보입니다.

TV에서는 평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나오고 다른 스피커에서는 북한 음악들이 흘러나옵니다.

[녹취: 북한 음악]

벽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를 상징하는 빈 액자와 평양 시내 지도, 대동강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도시건축비엔날레에 평양 아파트를 재현한 '평양살림' 전시가 마련됐다. 진열장에 북한산 물건들이 놓여있다.

관람객들은 분단 이후 한국에서 처음 전시되는 평양의 살림집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녹취: 관람객들] “여기가 평양 가정집이래? 여기 지도도 보인다.” “북한 책들도 있어”

이곳은 서울시가 지난달 2일부터 개최 중인 서울 도시건축 비엔날레의 도시전 가운데 하나인 ‘평양전-평양살림’ 전시 공간입니다.

서울시가 자랑하는 웅장한 크기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설치된 평양의 살림집은 30여평 규모의 아파트를 3분의 1로 축소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거실과 식사 공간, 부엌, 침실 등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된 이 살림집은 평양의 특수계층이 아닌 “중산계층에게 일괄 공급되는 아파트를 재현한 것”이라고 서울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 공간의 전문 안내자(도슨트)는 평양 출신의 탈북민 문유진 씨입니다.

[녹취: 문유진 씨]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잖아요. 그 70여 년이 넘었는데 처음으로 서울시 한복판에서 평양전을 한다? 이것은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가 큰 거죠”

지난 2004년 탈북해 현재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문 씨는 평양의 모습을 제대로 알리고 싶은 마음에 안내자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유진 씨] “우리가 북한한테 뭔가 퍼주려는 게 아니라 최소한 북한 사람, 평양 사람들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교육이라는 것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불어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역할들이 있고. 평양에 대해 결코 좋은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평양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문 씨는 관람객들에게 평양의 열악한 전기 사정으로 아파트 승강기가 작동을 제대로 못 해 겪는 시민들의 어려움 등 다양한 현실을 소개했습니다.

배형민 도시건축 비엔날레 총감독은 언론들에, 최신 유행하는 평양의 아파트 스타일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었다며 자본주의가 들어가면서 평양의 모습도 바뀌는 중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정치적 얘기에 묻혀 실제 평양 주민들이 사는 모습에는 관심이 적었던 만큼 이번 행사를 계기로 평양의 삶을 들여다 보기 원했다는 겁니다.

평양의 살림집 전시관 앞에는 판문점을 상징하는 중간지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서울의 화려한 불빛과 건축 사진들이 놓쳐 있어 두 도시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도시건축비엔날레에 평양 아파트를 재현한 '평양살림' 전시가 마련됐다. 탈북민 문유진 씨가 관람객들에게 북한인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평양의 살림집을 처음 접한 많은 관람객은 생각보다 평양 시민들이 괜찮게 살지만, 내부는 한국의 70년대 처럼 매우 단조로워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관람객들] “옛날 저희 70년대? 그런 정도의 느낌을 받았고 좀 협소하다는 느낌. 가구들도 획일적이고 단순하다는 느낌. 저희는 본인의 개인 취향이 많이 들어가는데 (평양은) 단순하다는 느낌” “한국 가정집하고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의자 배치나 색깔이 일반적인 집 색깔은 아닌 것 같아요. 색 자체 톤도 이런 색은 쓰지 않는 것 같아요”

북한 전문가들은 개인의 창의력과 개성보다 집체성을 강조하는 북한사회의 특성이 집안 구조 등 생활에도 그대로 녹아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평양전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 내 여러 탈북민 단체들과 일부 언론들은 이번 전시가 북한의 일반 주민이 아닌 상류층이 사는 아파트 모습을 미화해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북한체제를 선전하는 것 같다”, “일부의 삶을 마치 전체의 삶처럼 보여주고 있다”, “북 핵 위협이 고조되는 위중한 시기에 꼭 이런 전시를 하는 의도가 무엇이냐”며 따져 묻고 있습니다.

문 씨도 그런 부류의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유진 씨] “크게는 북한이 지금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많이 쏘잖아요. 그래서 북한이 지금 그런 판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가 꼭 이것을 봐야 하냐? 되게 민감하고 도전적인 질문이거든요”

하지만, 서울시와 문 씨는 북한인들의 삶의 양식과 변화를 주목하고 이해하는 것 역시 향후 남북 교류와 통일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일부 시민과 학생들도 이런 전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관람객들] “같은 민족으로서 서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정치적인 면을 떠나서 좋은 의도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뭐든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많이 없어요. 여기는 학용품 같은 것도 간단한 것들만 있는 데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고. 동화책도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는데, 여기는 단편적이고 색깔도 고전적. 우리보다 좀 칙칙하다는 느낌. (그래도 직접 보니까 도움이 되나요?) 네 이해가 돼요. (이런 전시를 자주하면 괜찮을 같아요?) 네 괜찮을 것 같아요”

하지만 북한에 관한 객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 북한 주민들이 겪는 열악한 삶, 세계 최악으로 지탄받고 있는 인권 유린 상황에 대해서도 균형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서울시장과 평양시장에게 바라는 편지를 11월 초까지 접수해 편지전과 북한영화제, 토론회도 개최할 계획입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