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주한 미 대사관 직원 가족과 탈북 청소년들의 특별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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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미군 기지 안에 있는 한 볼링센터에서 탈북 청소년들과 주한 미 대사관 직원 가족들이 함께 볼링을 치고 있다.

서울의 미국대사관 직원들과 가족들이 10년째 탈북 청소년들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달마다 모여 끈끈한 정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지난 주말에는 미군 기지에서 볼링을 치고 피자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녹취: 볼링 치는 소리]

서울의 미군 기지 안에 있는 한 볼링센터. 한국에 사는 탈북 청소년들과 미국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신나게 볼링을 치고 있습니다.

탈북 청소년 홍우 군이 10개의 핀을 모두 쓰러트린 뒤 환호성을 지르자, 옆에 있던 미국 소년 재키 자이커 군이 “멋지다”며 손을 쭉 뻗어 홍우 군과 손바닥을 마주칩니다.

[녹취: 김홍우 군] “처음에는 되게 서먹서먹했는데 점점 볼링을 치다 보니까 되게 친해진 것 같아요. 제가 재키를 1년 전에 처음 봤거든요. 오랜만에 보니까 하이파이브도 막 먼저 하고 반갑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재키와 되게 친해진 것 같아요.”

미 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 아버지와 함께 볼링장을 찾은 재키 군은 다양한 배경의 탈북 청소년들을 만나 아주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행복해합니다.

[녹취: 자이커] “I feel that it’s just a really nice time for multifuel people like…”

북한에 사는 열악한 주민들을 생각할 때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그 곳을 탈출해 한국에 온 친구들을 만나 함께 볼링을 칠 수 있어 매우 기쁘다는 겁니다.

옆 레인에는 10살 때 북한에서 나온 19살 광훈 군과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4년째 서울에 사는 17살 언드레 양이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녹취: 광훈] “What do you do after school?”

[언드레] “practice basketball”

광훈 군의 영어가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언드레 양이 친근하게 질문하며 배려하기 때문에 소통에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녹취: 광훈] “처음에는 진짜 영어라는 단어도 솔직히 생소하고 내가 말하는 데 그 사람이 이해할지, 나는 또 그 사람이 뭐라고 얘기하는 데 내가 이해를 해야 하잖아요. 답변을 해야 하는데 (영어를) 몰라서 일단 말을 안 걸고 될 수 있으면 말하는 것을 피하고 그랬었어요. 근데 몇 번 와 보고 학교에서 영어 수업도 듣고 제가 따로 영어 공부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점점 말하는 것도 재밌고 소통하면서 친해지니까 제가 손해 보는 것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얘기하는 게 되게 재밌어졌어요”

탈북 청소년들은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한겨레중고등학교 학생들입니다. 이들은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청소년들과, 중국에서 탈북 여성과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학생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습니다.

이 학교는 통일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탈북 청소년 특성화 학교로 2006년 개교 이후 거의 10년째 미 대사관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대사관 영어 프로그램이란 의미의 ‘EEP’ 프로그램은 10여 년 전 서울의 미 대사관 직원들이 따로 시간을 내서 탈북 청소년들을 돕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시작됐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책임 코디네이터인 은주 세거튼 씨는 탈북 청소년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을 보다 긍정적으로 보고 친근하게 생각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녹취: 세거튼 씨] “I want the North Korean kids to see Americans, oh they are friendly people, well intended…”

세거튼 씨가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자원봉사자들은 대사관 직원과 가족뿐 아니라 미 종교단체 관계자들과 주한미군,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교사도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확대됐습니다.

한국에 온 지 넉 달이 된 미 외교관 조지 놀 씨 부부는 이날 세 자녀와 함께 볼링장을 찾았습니다.

[녹취: 놀 씨] “I would like to support them…”

세 자녀가 비슷한 또래 탈북 청소년들의 영어 공부를 돕는 한편 이들의 삶을 통해 무언가 배울 수 있길 바란다는 겁니다.

경기도 포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에이프럴 하워드 씨는 특별한 의도와 요구 없이 그저 친구를 사귀고 함께 즐길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하워드 씨] “With no agenda and no demands from them, just make friends with them…

탈북 청소년들이 북한을 탈출하는 어려운 과정들을 겪고 북한과 크게 다른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함께 먹고 즐기며 친구가 되는 게 의미가 있을 것이란 겁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미국인 자원봉사자들은 탈북 청소년들이 세상에 아직 긍정적인 면이 많고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크산드라 씨와 서연 양 대화] “My name is Suh-yeon” “That’s beautiful name” “What is your name?”

외교관 아버지를 방문하러 왔다가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대학생 크산드라 씨는 이날 만난 탈북 청소년 서연 양과 금새 친해졌습니다. 크산드라 씨는 사람들이 자주 북한 정부와 주민들을 혼동한다며 주민들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크산드라 씨] “People confuse the government with people and so when we think about North Koreans..

북한인 모두가 핵무기를 만드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주민들은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좋은 사람들이란 겁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약 30명의 한겨레중고등학교 학생들들은 새 친구들을 사귀는 기쁨뿐 아니라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져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량강도에서 13살에 탈출할 때까지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했다는 이향 양은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습니다.

[녹취: 이향] “진짜 좋아요. 미국 분들이랑 대화도 영어로 많이 할 수 있어서 영어도 늘고 또 얘들도 많아서 노는 게 재밌어요.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나요?) 많이 못 하는데 자신감이 생겼어요. 옛날에는 물어보면 말도 못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특히 많은 학생은 북한에서 배웠던 미국에 대한 부정적 교육이 거짓이란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광훈 군 역시 그런 세뇌 후유증 때문에 처음에 불편했지만, 미국인들과 지내면서 생각이 바뀌어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광훈] “(미국) 사람들이 솔직히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착하고 친근해서 제가 좀 미안한 마음도 있었어요. 맨 처음에 제가 꺼려해서 쉽게 다가가지 않고 사람들이 다가와도 제가 피하고 그랬으니까. 이제는 제가 다가가야죠”

탈북 청소년들은 두 달에 한 번씩 이렇게 서울에 올라와 미국인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일부는 주말에 미국인 가정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고 파티에도 참석합니다.

10년째 학생들을 이끌고 이 프로그램을 찾는 이 학교 김가연 영어교사는 학생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정서적이나 교육적으로 큰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가연 교사] “저는 외국인들과 만나 잠깐 활동한다고 영어가 크게 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아이들이 일단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은 확실히 없어지고요. 그 다음에 놀면서 공부하는 게 더 잘 되잖아요. 그래서 같이 영어를 하니까 영어에 대한 흥미도 생기고 문화적인 것도 아, 거기에 가니까 이렇더라. 그 외국인이 이렇게 표현하더라 라는 것도 배울 수 있어서 넓게 장기적으로 보는 영어 공부에 도움이 매우 된다고 생각합니다.”

탈북 청소년들은 이날 미국인 자원봉사자들과 점심으로 피자를 함께 먹으며 3시간 동안 볼링을 즐겼습니다.

20여 명의 미국인 자원봉사자들은 학생들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해 통일시대에 귀한 일군들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