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소개해드리는 '인물 아메리카'입니다. 오늘은 미국 현대 로켓 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고다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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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릴랜드 주 그린벨트에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 산하 비행센터는 로버트 허칭스 고다드의 이름을 따 고다드 우주 비행센터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런 대형 기관에 그의 이름이 붙게 된 건 그가 최초의 액체 추진 로켓을 연구 개발해 큰 발전을 이루었고, 그 결과가 미국의 우주 개발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기 때문입니다.
고다드 박사는 1920년부터 액체 추진제 로켓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다드 이전의 로켓들은 모두 고체 추진 연료를 사용했습니다. 고체연료는 짧은 거리를 비행하는 데는 좋지만 대형 로켓으로 먼 거리를 나는 데는 이상적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고다드의 액체 연료 로켓의 개발은 라이트 형제의 최초 비행기만큼이나 중요한 성공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로버트 고다드는 1882년 10월 5일에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우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고등학교를 2년 늦게 들어가는 등 학업에 다소 지장이 있었지만 1904년에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워체스터사우스 고등학교에서 졸업생 대표연설을 하게 된 그는 ‘어제의 몽상가가 오늘의 희망이 되고 내일의 현실이 된다는 것은 흔히 진실이 되어왔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습니다.
고다드는 영국의 공상 과학 소설가 H.G.웰즈의 ‘우주 전쟁’을 읽고 우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일기에 ‘화성까지 갈 수 있는 기기를 만들면 얼마나 놀라울 것인가? 그리고 내 발치에서 농장을 보면 얼마나 작게 보일까?’라고 적을 정도로 우주 비행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다드는 우스터 과학기술대학에 들어가 물리학을 공부하고 클라크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는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군 복무나 로켓 개발을 위해 잠깐씩 학교를 떠나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대학교에 적을 두었습니다.
고다드는 1926년 3월 16일 미국 동북부 매사추세츠 주 오번(Auburn)이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로켓 실험을 했습니다. 이 실험에서는 5.5kg의 로켓이 사용됐습니다. 이 로켓은 2.5초 동안 12m까지 상승해 56m를 날아갔습니다. 요새 같으면 장난감 같은 것이었지만 이는 최초로 액체 연료의 가능성을 증명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은 당시에는 그 진가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예를 종종 보게 되는데 고다드도 그런 예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고다드의 로켓 실험을 엉뚱한 몽상가의 짓이라는 식의 보도를 했습니다. 1929년 한 실험이 끝나자 어떤 신문은 “달 로켓이 23만8천 mi을 벗어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달과 지구의 거리가 23만8천 mi인데, 그렇게 빗나갔다는 말은 한치도 제대로 날아가지 못했다는 조롱이었습니다. 급기야 매사추세츠 주는 로켓 실험의 위험성을 들어 실험 금지조치를 내리기까지 했습니다.
교수의 봉급이 많지는 않아 고다드는 로켓 연구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비행 영웅 찰스 린드버그가 당시 부호 명문가였던 구겐하임 가를 설득해 4년간 10만 달러를 지원하도록 해주었습니다. 항공 역사상 처음으로 대서양을 횡단 비행한 린드버그는 ‘비행기 다음은 로켓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고다드를 지원했습니다. 1914년에는 스미스소니언 협회로부터도 도움을 받아 로켓 모터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군에 자원입대해 로켓을 군사적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때의 연구 결과는 훗날 바주카와 무반동 총의 추진체 기술로 응용돼 모든 현대적인 대전차 로켓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고다드는 1930년부터 서남부 뉴멕시코 주로 실험장을 옮겼습니다. 그해 12월 30일 새로운 곳에서의 첫 실험에서는 무게 2.3kg, 지름 14.7cm의 엔진을 단 길이 3.35m의 로켓이 발사됐습니다. 이 로켓은 8m의 발사대를 떠나 총 20초간 609m까지 상승했으며, 최고 속도는 시속 800km였습니다.
첫 실험 때 올라간 높이가 겨우 10여 미터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큰 발전이었습니다. 실험이 거듭되면서 액체 추진제 로켓은 발전을 이어갔습니다. 1935년 10월 14일에 발사된 거의 완벽한 로켓은 길이 4.6 m, 무게 39kg이었습니다. 이 로켓은 최고 2천286m까지 올라갔고, 처음으로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 1937년 3월 26일에는 같은 로켓을 이용해 2천590m까지 고도를 크게 늘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1940년 8월 9일 고다드 박사는 그가 지금까지 만든 로켓 중 제일 큰 것을 제작해서 성공리에 발사했습니다. 로켓의 길이 6.7m, 전체의 무게는 334kg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 해군의 로켓 엔지니어로 등용돼서 로켓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 해군은 로켓의 가치를 파악하지 못했고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츰 우주 개발용으로 또 군사용으로 로켓이 중요해지면서 차츰 고다드의 연구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의 공포의 무기였던 V-2 로켓을 개발한 폰 브라운 박사는 전쟁 후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계획을 지휘했습니다. 브라운 박사는 1963년 고다드의 로켓 연구에 대한 선구적 업적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조악한 것일지는 몰라도 가장 현대적 로켓과 우주 운항체에서 사용되는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찬양했습니다.
당시에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오늘날 미국 우주 개발의 초석을 놓은 로버트 고다드 박사는 지병인 후두암으로 1945년 8월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