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핵 검증은 불가능하다고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이 밝혔습니다. 리스 전 실장은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기로 하면 대가가 지불돼야 할 텐데 미 의회가 이를 용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비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자신이 참여했던 협상에서 북한 관리들이 비핵화의 조건으로 미-한 동맹 파기를 요구했었다고 밝혔습니다. VOA는 미-북 대화 재개 가능성에 따라 북한 문제를 다뤘던 미국 전직 고위 관리들과의 인터뷰 시리즈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덟 번째 순서로, 1990년대 당시 북한의 경수로 사업을 추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미국측 수석대표를 지내고 현재 북아일랜드 특사를 겸임하고 있는 리스 전 실장을 김영남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스 전 실장) 저는 이런 만남 제안이 있었고 나아가 요청이 수락됐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장소를 비롯해 아직 많은 것들이 결정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이 회담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기자)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리스 전 실장) 저는 미국의 대통령이 이런 만남에 동의한 것은 아주 많은 위험이 뒤따른다고 생각합니다. 만남을 북한에서 갖는 것으로 합의하는 것도 위험하고 회담에 대한 준비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원래 이런 만남에 대한 세부내용은 몇 주 전이나 몇 달 전부터 결정된 다음에 고위급이 만나 최종 사안에 대해 합의하는 겁니다. 지금은 거꾸로 됐고 두 정상이 많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만남이 당연히 이뤄질 것처럼 앞서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기자) 한국 대표단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진정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리스 전 실장) 저희는 북한의 이런 메시지를 지난 몇 년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들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발언에 대해 매우 회의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북한 사람들과 만나 이 문제에 대해 압박을 가했을 때 북한 사람들은 비핵화에 앞서 여러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이런 조건 중 하나는 미-한 동맹 파기였습니다. 어떤 미국 행정부도 용납할 수 없는 조건이죠.
기자) 대화에 회의적이신 이유는 북한의 요구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시군요.
리스 전 실장) 북한의 이런 요구는 현실적이지도 않고 실현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몇 주간 실제 만남이 이뤄질지 아닐지 지켜봐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미-한 동맹의 신뢰가 악화될 수도 있는 큰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한국 측과 회담이 열릴 때까지 긴밀히 논의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기자) 현 시점에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역량을 제한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스 전 실장) 저는 이런 방법 역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어떤 제한을 가한다고 했을 때 검증이 가능할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선 실험 동결을 할 수 있겠죠. 감시하기 가장 쉬운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결만으로는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등 기술을 진전시키고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 나가는 것을 방지할 수 없습니다. 또한 북한의 역량을 제한한다고 한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겁니다. 재정적인 부분이 될 수도 있고 북한의 요청에 따라 일부 정책을 바꾸는 방법이 되겠죠. 저는 미국이 이런 부분에 동의할지 모르겠습니다. 행정부 차원에서 이를 원한다고 해도 의회가 북한과 협상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기자) 과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에 미국 측 수석대표로 참여하셨습니다. 북한 내에서 검증 절차가 이뤄지는 데 한계는 어떤 게 있습니까?
리스 전 실장) 저는 1990년대에 KEDO에 참여했었습니다. 북한은 합의를 어겼죠. 검증이 어려운 이유는 북한 핵 시설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북한의 플루토늄이나 농축 우라늄이 얼마나 생산되고 얼마나 저장됐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북한은 매우 폐쇄된 국가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에서처럼 정보를 얻는 건 불가능합니다. 북한은 많은 수의 미국인 조사관들이 떼지어 들어오는 것도 용납하지 않겠죠. 저는 북한 정권의 속성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검증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KEDO 당시 상황을 언급하셨는데요. 북한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당시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합의가 깨졌다고 주장하는데요.
리스 전 실장) 이런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당시 기록을 확인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죠. 이미 1998년부터 북한이 농축 우라늄 관련 일을 진행하면서 합의를 어기고 있다는 징후가 있었습니다. 당시 미 행정부는 이에 대한 정확한 검증을 하지 못했습니다. 1999년에서 2000년에 접어들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뒤 북한은 제임스 켈리 당시 국무부 차관보에게 KEDO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합의 위반인 다른 핵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점을 시인했습니다. 당시 기록들이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지만 저는 이런 기록들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자) 과거 사례를 비춰볼 때 검증 단계까지 가게 되더라도 실패할 것이란 시각도 많습니다.
리스 전 실장) 저는 그 단계까지 가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저는 검증 절차가 이뤄지고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조건들을 수용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기자) 북한의 최근 핵과 미사일 진전 상황을 봤을 때 과거보다도 협상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십니까?
리스 전 실장) 저는 실제로 협상이 이뤄질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이는 진정한 협상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협상이라는 것은 준비하는 데 수 주가 걸릴 뿐 아니라 진행되는 데도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게 됩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로버트 갈루치 특사의 경험이 그랬고 제가 KEDO에서 겪은 일이 그랬습니다. 저는 미국 대통령이 협상의 세부 사안을 논의하는 데 관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타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기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경질되고 마이크 폼페오 CIA 국장이 후임으로 내정됐습니다. 미-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리스 전 실장) 저는 북한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만남을 갖는데 전념하고 있다고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 정책을 이끌어가고 있는 거죠.
기자) 북한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오셨습니다.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미국이나 한국 당국자들에게 조언이 있으시다면요.
리스 전 실장) 저는 미-한 동맹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목표로 삼아왔습니다. 북한이나 누구도 양국의 관계를 갈라놓을 수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어떤 정책이나 북한과의 만남보다도 중요한 겁니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으로부터 미-북 대화의 고려 사안과 변수 등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김영남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