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미국 서부 진출의 길을 연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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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웨더 루이스(Meriwether Lewis)와 윌리엄 클라크(William Clark)는 미국 건국 초기 광대한 중부 대륙을 거쳐 태평양 연안에 도달하는 길을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같이 탐험한 동반자들이어서 미국에서는 언제나 ‘Lewis and Clark’로 두 이름이 함께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탐사했던 곳은 1803년 미국 제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프랑스로부터 매입한 루이지애나영토(Louisiana Territory)로, 동쪽으로는 미시시피강에서 서쪽으로는 거대한 로키산맥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지역입니다.
당시 미국은 미시시피강까지는 진출하고 있었고 그 서쪽 땅을 매입한 것인데, 사기만 했지 그 땅이 어떤 땅인지 잘 몰랐습니다. 매입한 땅의 넓이가 한반도의 약 10배, 그 안에는 긴 강이 있고 사막이 있고, 또 험준한 산맥도 있습니다. 또 북쪽의 캐나다에서부터 미국을 거쳐 남쪽으로 멕시코까지 수백 킬로미터씩 이어지는 광활한 평원도 있습니다.
제퍼슨 대통령은 루이스와 클라크에게 대륙을 관통해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수로, 즉 큰 강과 그 지류가 있는지를 확인해 보라는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또, 다른 나라들에 새로 얻은 영토가 미국의 영토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확실히 해놓으라는 것, 그리고 동식물 생태계, 지리, 천연자원들을 알아보라는 것 등이 탐사의 주요 목적이었습니다.
루이스는 육군 대위 출신으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개인 비서였습니다. 클라크는 루이스의 친구로 육군 중위 출신이었습니다. 이들은 총과 식량, 방한복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유리 목걸이와 가락지까지 준비했습니다. 장식품들은 탐사 도중 원주민들을 만나면 물물교환도 하고 환심도 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 체격이 좋고 책임감이 강한 대원을 뽑아 훈련을 시켰습니다. 대원은 짐꾼과 사공까지 모두 44명이었습니다.
1804년 5월 14일, 루이스와 클라크 탐사대는 세인트루이스의 캠프 뒤보아를 출발, 2년 4개월, 약 1만2천Km에 달하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탐사대는 지도를 작성하고, 지형과 동식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탐사 지역은 대평원 지역(Great Plains), 험난한 로키산맥 지역, 그리고 태평양에 이르는 서북쪽 해안지역으로 나누어집니다.
지형이 달라지면서 기후와 생태환경 또한 달라지기 때문에 탐사대는 그때마다 새롭게 적응하는 데 힘이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탐사 중 마주치는 원주민 인디언과의 관계 또한 조심스러웠습니다.
첫 단계의 탐사는 황량하고 메마른 지역과 대초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새롭게 접하는 동식물도 많았고 풍경 또한 완전히 다른 나라 같았습니다. 출발한 지 2개월이 지난 1804년 7월 19일 이들은 끝도 없이 펼쳐지는 대초원을 발견했습니다. 클라크는 대평원 지역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갑자기 광활하고 끝을 알 수 없는 초원이 펼쳐졌다. 약 50~60cm 크기의 풀로 온통 뒤덮여 있다…. 홀연 전개되는 정경에 나는 넋을 잃고 찾아 나선 목적도 잊은 채 이를 바라보았다.”
광야에 집단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강아지처럼 생긴 프레리도그(prairie dog), 작은 늑대처럼 생긴 카요테(coyote) 등 처음 보는 동물들이 많았습니다. 미국 대평원지대에는 아메리칸 버펄로, 또는 바이슨(Bison)이라고 하는 들소 또한 많았습니다. 이들은 수만 마리의 버펄로 떼가 달리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당시 북아메리카에 몇 마리의 버펄로가 있었는지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략 6천만 마리에서 7천500만 마리가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평원의 원주민들에게 버펄로는 먹을 것, 입을 것, 주거지용 자료를 제공해 주는 삶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루이스와 클라크는 모두 122종의 동물, 134종의 새, 178종의 식물을 발견해 보고했습니다.
탐사대는 세인트루이스를 떠난 지 거의 6개월 만에 당시의 백인들, 주로 모피 사냥꾼들이 가본 가장 먼 변경인 ‘맨단 (Mandan)’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동안 지나온 거리는 약 2천600Km에 달했습니다. 맨단은 오늘날의 노스다코타주에 있는 마을입니다. 이곳 대평원과 노스다코타 일대에 사는 맨단이라고 불리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루이스와 클라크는 교육받은 백인들로서 처음 마주하게 된 원주민 부족들이 많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들 원주민도 백인을 처음 보았습니다. 탐사대가 맨 처음 부딪친 원주민은 쇼손 부족이었습니다. 루이스와 쇼손 대장은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으로 의사를 주고받았습니다. 탐사대는 쇼손 족들에게 구슬, 거울, 장신구, 담배, 위스키 등을 선사했습니다. 쇼손은 음식과 담배를 주며 탐사대를 따뜻하게 대했습니다.
탐사대는 쇼손 족 여성 사카가웨아(Sacagawea)를 대원으로 영입했습니다. 사카가웨아는 프랑스 모피상 샤르보노의 아내였습니다. 모피상이 탐사대에 참여하게 되면서 아내인 사카가웨아도 자연스럽게 합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사카가웨아는 길잡이, 통역관, 지형정보, 식용 식물 채취 등으로 탐사대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사카가웨아가 아기를 업고 있는 모습은 지금도 미국의 1달러 동전에 새겨져 있습니다. 포카혼타스(Pocahontas)와 더불어 미국인들 사이에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전설 같은 인디언 여성입니다.
겨울 동안 맨단에 머물던 일행은 미주리강의 얼음이 녹자 이듬해 4월 7일, 다시 여정에 올랐습니다. 일행 중의 일부는 그간의 답사 보고서, 지도, 채집한 동식물 표본 및 인디언 민속품 등을 갖고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갔습니다. 루이스와 클라크 탐사대는 그 후로 거대한 폭포, 험준한 로키산맥을 넘어 태평양 해안까지 도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