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미국 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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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명작을 남겼습니다. 그는 대단히 미국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는 작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미국 문학에 있어 허클베리 핀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 후로도 없었다’고 극찬을 할 정도로 그의 문학가적 위치는 확고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의 본래 이름은 새뮤얼 랭혼 클레먼스(Samuel Langhorne Clemens)였습니다. 클레멘스는 1835년 11월 30일 미국 미주리주 플로리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4살 때 가족은 역시 미시시피강 부근 도시인 한니발(Hannibal)로 이사 갔습니다.
11살에 아버지를 잃은 마크 트웨인은 학교 공부는 12살로 마감하고 소년 가장이 됐습니다. 가게 점원, 인쇄소 수습공 등 여러 곳을 전전하다 15살 때는 조그마한 시골 신문에 글을 쓰는 일도 했습니다. 21살 때 당시로써는 부러움의 대상인 증기선의 수로 안내인이 됐습니다. 미시시피강을 운항하는 배의 수로 안내인은 보수도 좋았고 강을 오르내리는 일도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마크 트웨인은 미국 서부를 휩쓴 금 열풍을 따라 1861년에 네바다와 캘리포니아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금 찾는 데는 실패하고 빚만 몽땅 지게 됐습니다. 정기적인 수입이 절실해진 마크 트웨인은 네바다주 버지니아시티 신문사 ‘테리토리얼 엔터프라이즈(Territorial Enterprise)’의 기자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기사도 쓰고 논설도 쓰고, 그 외 여러 가지 잡다한 글을 썼습니다. 당시 주급이 25달러, 요새 가치로 따지면 약 750달러쯤 되는 보수였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그 시대의 위선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쓰는 '저돌적' 기자였습니다. 그런 성향은 나중에 발표되는 그의 문학 작품에서도 짙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이름은 이때 붙여진 필명입니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미시시피 강에서 배가 지나가기에 안전한 수심을 뜻하는 속어였습니다. 수로 안내인들이 조타수를 향해 ‘배 밑에 수심이 두 길이니 지나가기 안전하다’는 뜻으로 “마크 트웨인!”이라고 외치곤 했습니다.
당시 서부에서는 마크 트웨인이 말 잘하고 재미있고, 풍자를 잘하는 이야기꾼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1865년에 발표한 소설 ‘짐 스마일과 뜀뛰는 개구리(Jim Smiley and His Jumping Frog)’는 여러 신문과 잡지에 실리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뒤를 이어 신문에 연재한 지중해 유람선 여행기는 유머러스한 필치로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핸섬한 외모, 붉은 머리의 저널리스트이자 여행가인 마크 트웨인. 30대 중반인 그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 올라섰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부인을 끔찍이도 사랑한 것으로도 소문난 작가였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열렬한 구애 끝에 1870년 24살의 올리비아 랭던과 결혼했습니다. 뉴욕에서 석탄 사업으로 큰돈을 번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늘 가난했던 마크 트웨인은 미국 동부의 돈 많은 상류사회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올리비아와의 결혼은 돈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여성으로서 가장 완벽한 보석’, ‘그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에덴동산’ 등으로 아내를 찬양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에게는 마지막 약 15년이 작가로서 가장 영예로운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 마크 트웨인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작가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그는 가장 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는 사람이었고, 박수와 환호에 휩싸였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순회강연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많은 인기를 끌어 국제적인 명사가 됐습니다.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학과 미국 예일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의 가정은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의 질병과 죽음으로 괴로워했고, 여행 중 부인이 집에서 혼자 숨을 거두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마크 트웨인 자신도 말년에 많이 변했습니다. 친구들과 가까운 이들에게 충격적으로 불손한 태도를 보이는 괴팍성을 띄었고, 때로는 분노를 화산처럼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12권의 장편, 21종의 단편, 그 외 희곡, 기행문, 수필집 등 많은 작품을 펴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1910년 4월 21일 74세를 조금 넘기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핼리 혜성이 지나갈 때 태어나서, 혜성이 다시 지나갈 때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던 마크 트웨인. 그는 정말로 핼리 혜성이 지구에 찾아온 때 태어났고 다시 찾아온 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