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소울의 여왕'으로 추앙받는 어리사 프랭클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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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음악의 여왕으로 불리우는 가수 어리사 프랭클린이 8월 16일 76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서 20세기 최고의 가수로 명성을 날린 프랭클린은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었습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근 ‘20세기 문화예술인 20인’을 선정하면서 대중음악인 네 명 중 한 명으로 어리사 프랭클린을 꼽았습니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포함되지 않았는데, 어리사 프랭클린이 들어간 것은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가수였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리사 프랭클린은 미국의 음반 예술계 최고 영예인 그래미상을 18번이나 받았습니다. 음반은 7천500만 장 이상이나 팔렸고, 'Amazing Grace' 즉 ‘놀라운 자비’라는 앨범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가스펠(gospel)’, 복음성가 앨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또한 프랭클린의 노래 17곡이 빌보드 탑텐(TOP 10), 즉 상위 10안에 올랐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는 여성 가수로는 최초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어리사 프랭클린은 1942년 미국 남부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클래런스 L. 프랭클린은 침례교 목사, 어머니는 교회의 피아노 반주자였습니다. 1946년 아버지 프랭클린 목사가 중서부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로에 있는 한 교회의 담임 목사직을 맡게 되면서 가족은 그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후 디트로이트는 어리사 프랭클린의 고향이 됐습니다.
부모들의 복잡한 결혼 관계로 가정은 안정되지 못했고 어리사는 정식 음악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귀동냥으로 피아노와 노래를 익혔습니다. 어리사의 아버지는 100만 달러짜리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목소리가 열정적이었고 설교를 잘했습니다. 그래서 집에는 늘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유명 흑인 교회 지도자들과 복음 성가 가수들이 들락거렸습니다. 어리사도 그 덕에 유명인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유명 음악인들을 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어리사가 처음 노래를 부른 건 교회 성가대에서였습니다. 교회 음악 활동은 어리사에게 가수가 되기 위한 시험대가 됐고 신앙 생활의 바탕이 됐습니다. 12살이 되자 아버지는 노래 부르는 어리사를 데리고 전국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는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이러는 동안 어리사는 사람들로부터 장래가 촉망되는 소녀 가수로 안정을 받기 시작합니다. 음악계에서는 이때를 어리사의 가수 생애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리사는 아버지에게 사회의 노래도 부르고 싶다고 졸라 콜럼비아음반사에서 1960년 ‘Today I Sing The Blues’를 취입했습니다. 1967년에는 애틀랜틱음반사를 통해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당신을 사랑하듯 남자를 사랑한 적이 없어요’를 내놓았습니다. 이 노래는 빌보드 순위 상위에 오르면서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후 프랭클린의 노래는 무려 73곡이 빌보드 차트 ‘핫100(Hot 100)’에 들어가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합니다. 이어 내놓은 ‘Respect’ 는 드디어 빌보드 1위로 올라섰습니다. ‘존경’이라는 의미의 이 곡은 당시 흑인들의 당당한 의식을 고취하는 노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후 어리사 프랭클린은 소울의 완벽한 소화, 빛을 발하는 가창력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그 뒤 약간의 침체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Freeway of Love,’ ‘사랑의 고속도로’ 등이 히트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어리사 프랭클은 음반에서뿐만 아니라 수많은 행사장과 공연 무대에서도 화려한 빛을 발했습니다.
1998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대신해 노래를 불러 그녀의 천부적인 가창력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2009년에는 바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축가를 불러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렸고, 그날 쓰고 나온 모자까지 온라인에서 뜨거운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불멸의 여왕처럼 보이던 프랭클린도 암에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암으로 투병해 오던 어리사 프랭클린은 8월 16일 디트로이트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습니다. 여러 언론은 프랭클린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음악에서나 영적인 면에서나 미국의 중심에 서 있던 그의 천재성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어리사 프랭클린은 50년의 가수 생활을 뒤로하고 저 세상으로 갔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