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한국 청년예술가·유학생들 “DMZ의 평화가 자유로운 왕래로 이어지길”

'비무장지대 평화의 길을 걷다' 행사에 참가한 한국전쟁 참전국 출신 유학생들이 도라산 전망대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전쟁 참전국 출신 외국 유학생과 한국 청년예술가들이 최근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을 걷는 행사에 참가해 통일의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들은 철조망과 아름다운 자연이 공존하는 비무장지대 위로 남북한 국민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지난 6일 비무장지대(DMZ)에서 2km 떨어진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내 캠프 그리브스.

미군이 지난 2004년 한국에 반환한 뒤 경기도가 문화공간으로 사용하는 곳이지만, 곳곳에 남아있는 철조망과 막사들은 오랜 분단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곳에 6·25 한국전쟁 참전국 출신 유학생들과 한국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청년들, 일반인들이 모여 DMZ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출신 유학생 애티나 라푸 씨는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를 비무장 지대에 떨어트리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녹취: 라푸 씨] “I was just thing about the reunification of Korea…

남북한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 궁극적으로 통일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겁니다.

또 다른 한국인 참가자는 비무장지대 철조망에 지뢰 경고 대신 사랑을 뜻하는 하트를 그려 넣었습니다.

[녹취: 참가자] “철조망에 지뢰 표시를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빨간 표시로 평화와 하트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걸었을 때 이 길의 이음이 더 상징적이지 않을까? 이음이란 것은 길의 이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이어져서 길이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분단국가인 이 나라가 마음이 이어진다면 곧 길도 이어져서 마음 놓고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날 행사는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개최한 ‘비무장지대 평화의 길을 걷다’ 종주 행사의 일부.

이 행사의 책임자인 김지선 한국관광공사 한반도관광센터 차장은 DMZ의 딱딱한 이미지가 활기찬 평화관광지대로 전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행사를 열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지선 차장] “DMZ가 안보관광에서 평화관광으로 전환되고 있잖아요. 그 평화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DMZ를 접하고 있는 10개 지자체를 걷고 느끼고 관광자원도 보고 음식도 체험하면서 그 평화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를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DMZ는 약간 딱딱하고 무거운 이미지였지만, 이제 활기차고 관광자원도 가득 찬 그런 이미지를 재고하기 위해 이런 활동도 하고 관광 콘텐츠도 많이 개발해서 많은 분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외국인 유학생과 청년예술단은 이날 제3땅굴에 들어가 북한 정권의 옛 도발 흔적을 보고 도라산 전망대로 이동해 4·27 판문점 회담 후 달라진 현장 분위기를 체험했습니다.

이현경 파주시 문화해설사는 참가자들에게 도라산 전망대 상황이 4·27 판문점 회담 이후 크게 달라졌다고 설명합니다.

[녹취: 이현경 해설사] “여기 포토라인이 있었는데요. 이 곳에서만 찍어야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어느 방향과 각도에서도 사진 촬영이 가능하고요. 그리고 대북 확성기가 서로 아주 시끌벅적했었는데 대북 확성기를 모두 철거해서 이렇게 대화도 들리고. 평화가 멀지 않았다란 느낌이 들곤 합니다.”

외국인 유학생들과 청년예술단은 이렇게 비무장지대를 걸으며 보고 느낀 것들을 의인화해 그리거나 소망을 각자 도화지에 표현했습니다.

한국계 우즈베키스탄인 유학생 이네사 김 씨가 비무장지대에서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한 그림.

해외 한인 출신 대표로 참석한 한국계 우즈베키스탄인 유학생 이네사 김 씨는 희망을 의미하는 무지개를 환하게 웃는 자신의 얼굴을 통해 그렸습니다.

[녹취: 이네사 김 씨] “One rainbow is for South Korea, the 2nd one is for North Korea…”

왼쪽 무지개는 한국, 오른쪽 무지개는 북한, 둘이 평화롭게 하나가 될 때 입가에서 ‘희망’이란 통일의 무지개가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겁니다.

홍익대에서 공부하는 터키 출신의 미술학도 악수 에미르한 씨는 남북한이 서로 포옹하려고 하는데 뒤쪽에서 다른 손이 붙잡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녹취: 에미르한 씨] “There is no problem between North and South. But both side are under control…”

강대국들의 이익 때문에 남북한의 교류와 통일이 지연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는 겁니다.

필리핀 출신 유학생 마이클 펜 씨는 철로가 시원하게 남북한을 잇는 그림을 그리며 옆에 ‘자유’라고 썼습니다.

[녹취:펜 씨] “freedom to move means ‘be connected’. We will be connected each other…”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가 없고, 특히 이동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현실을 반영해 남북한 모두가 자유롭게 오가고 서로 연결된 한반도를 철로에 담고 싶었다는 겁니다.

673일 동안 46개국을 여행하며 400 여장의 그림을 그린 청년예술작가 김물길 씨는 이날 평화 그리기 시간을 진행하며 스스로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물길 작가] “이미 머릿속에 영감이 떠오른 게 있어서 서울에 돌아가면 작업을 할 텐데..저는 지뢰를 사실 처음 봤고, 철조망도 동네에 학교에 있는 철조망은 봤지만, 사실 여기에 있는 이런 철조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만져본 적도 처음이어서 저한테 굉장히 임팩트가 많이 왔고. 또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는 자연환경이 정말 아름다워서 굉장히 놀랐어요.”

30살의 이 청년 작가는 철조망과 DMZ의 아름다운 자연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녹취: 김물길 작가] “이 철조망과 이 아름다운 자연의 대비가 평화의 아슬아슬한 것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까지의 수 천 년의 우리 역사 속에 철조망 같은 아픈 신발을 신고 있다가 그걸 벗고 우리가 봤던 그 반대의 아름다운 자연으로 꾸며진 신발을 갈아신는 느낌을 굉장히 받았어요. 우리는 그 과정에 있다! 그래서 벗을 때는 피가 나오고 뜯기겠지만, 결국 다시 예쁜 신발을 신을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런 장면을 꼭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또 다른 청년예술가 신요한 씨는 비무장지대에 드럼이 놓인 조형물을 그렸습니다.

[녹취: 신요한] “등산하다 발견하게 된 조형물인데, DMZ의 자연을 드럼이란 악기에 담아서 표현한 것 같은데 그게 인상적이라 그리고 있어요.”

비무장지대에서 총성이 다시 들릴지, 아니면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 들릴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책임은 남북한 모두에게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청년들은 최근의 남북 평화 분위기에 섣부른 낙관도, 맹목적인 비관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김물길 작가입니다.

[녹취: 김물길 작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설렘 반 걱정 반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통일이란 자체가 굉장히 설레는 단어. 전 국민이 그럴 거에요. 첫 설렘은 공존하지만, 지금 당장 통일된다면 저는 두려움이 클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사이에 있는 애매한 마음. 당장 통일이 되면 좋겠다고 말은 할 수 있겠지만, 통일이 된 후를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도 들고. 그래서 굉장히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도 항상 조심스러운 것도 같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통일이) 오래 걸리는 것도 같고. 변화하는 과정은 항상 힘든 것 같아요. 섞이는 것은 항상 고통인 것 같아요. 뜻밖의 기쁨도 있겠지만, 사실 조금 고통이 더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비무장지대를 따라 평화의 길을 걷는 7박 8일의 일정은 8일 마무리 됐습니다.

이번 종주에 참가한 청년예술가들은 비무장지대에서 느낀 생각들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조만간 캠프 그리브스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