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언론, 북한 성폭력 실태 보고서 크게 보도…“북한판 ‘미투’”

탈북민 출신 북한인권운동가 이소연 씨가 북한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에 관해 설명했다. © 2018 Human Rights Watch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북한의 성폭력 실상을 고발한 휴먼라이츠워치의 보고서를 일제히 소개하면서, 열악한 인권 상황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북한과의 핵 협상 국면에서 인권이 사각지대로 밀렸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AP 통신은 31일 휴먼라이츠워치의 최근 보고서를 상세히 소개하며, 미국과 한국이 북한과 핵 협상에 집중하는 동안 최악의 북한 인권 상황은 무시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북한 인권을 고발하는 이런 외부 보고서가 처음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사회주의 천국'으로 선전하는 북한 정권은 이같은 외부 비판을 정권 붕괴를 꾀하는 '적대 행위'라며 "발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미국과 한국이 핵 협상에서 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할 계획이 없으므로, 북한이 인권 개선을 위해 주요 조처를 취할 가능성도 작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 통일연구원의 조한범 박사를 인용해, "인권 문제는 당장 다뤄야 할 사안이지만,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다"면서 "북한과의 외교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최소한 북한 상황이 더욱 악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도 이번 보고서가 미국과 한국이 대북 외교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과 한국 정부는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인권 문제로 각을 세우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보고서는 이런 인권 유린을 김정은 정권의 최고위층과 직접 연결 짓지 않았지만, 주요 가해자인 하급 관리에 대한 통제가 없음을 시사한다고 해석했습니다.

USA 투데이도 남북, 미-북 대화가 평화협정과 비핵화에 중점을 두면서, 이들 정부가 세계를 향해 웃음과 친근한 모습을 연출하는 김정은에게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노력이 진전되고 있지만, 북한 내부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또 "외부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이 이런 북한에 공장을 세우려 하겠느냐"며, 인권 문제가 경제 협력 등 다른 분야의 진전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휴먼라이츠워치 관계자의 말을 소개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보고서를 '북한판 미투(#MeToo)'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어 이 보고서가 지난 2014년 성폭력 등 북한의 조직적인 인권 유린을 고발했던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내용을 재확인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케네스 로스 휴먼라이츠워치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해, "북한 여성들도 법적 보호를 받을 방법이 있다면 '미투'라고 말하겠지만, 김정은 독재 하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CNN은 이 보고서의 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하며, 자신들이 인터뷰한 북한 여군 출신의 탈북자 증언을 소개했습니다.

이 탈북자는 북한군 내에서 피해자가 소수일 경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고, 높은 계급일수록 처벌받을 가능성은 작아진다고 말했습니다. 또 피해 여성도 단지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불명예 제대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과 한국, 미국 간의 '해빙 무대'에 김정은 위원장의 최측근인 김여정, 리설주, 현송월 등 일부 여성이 '조연'으로 종종 등장하지만, 무대 뒤 많은 여성은 성폭력에 시달리는 '암울한 현실'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편 영국 '로이터 통신'은 스위스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가 자신들에게 보낸 성명에서, 이번 보고서를 "진부한 소설"이라며 반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한국에서 활동하는 인권단체와 탈북자 관련 단체들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시작하면서, 활동 기금 마련이 어려워졌고, 북한에 대한 비판을 삼가라는 압박을 받는다고 토로한다고 전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