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만년 히트곡 크리스마스의 가수, 빙 크로스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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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크리스마스철이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부드럽게 마음속에 스며드는 노래가 있습니다. 빙 크로스비(Bing Crosby)가 부른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입니다.
가수일 뿐 아니라 인기 있는 방송인,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은 배우이기도 한 빙 크로스비는 1903년 5월 3일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가정의 7남매 중 넷째였습니다. 집안이 가난해 빙은 소년 시절 공장에서 일도 하고, 벌목장에서 나무도 자르는 등 힘든 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축음기가 생겼습니다. 유성기라고도 부르는 이 기계는 당시로서는 환상적인 존재였습니다. 빙은 그 축음기로 당시 유명한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완전히 음악에 빠져들었습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갔지만 빙은 법에는 관심이 없고 아예 악단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고 드럼도 쳤습니다. 빙은 연예인으로 성공하려면 그 중심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 로스엔젤레스, LA로 갔습니다. 빙은 여기서 ‘리듬보이스 (The Rhythm Boys)’라는 트리오를 만들어 음악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빙은 그의 형 에버레트 크로스비를 매니저로 삼고 활동을 했습니다. 어느 날 에버레트는 빙이 부른 노래를 뉴욕의 CBS에 보내 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는지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CBS는 그의 목소리에 호감을 갖고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겼습니다.
빙의 라디오 프로는 큰 성공을 거두어 청취자 수가 많을 때는 5천만 명까지 달했고 거의 30년이나 계속됐습니다. 빙 크로스비는 1935년에는 또 하나의 공중파 방송인 NBC 방송과 계약을 체결하고 1940년대까지 ‘크래프트뮤직홀(Kraft Music Hall)’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1932년에서 1934년 사이 빙은 데카레코드를 통해 여러 히트곡을 발표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1월의 6월(June in January)’이라는 노래는 젊은 시절 최고의 히트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빙 크로스비는 종교적인 노래도 여러 곡 취입했습니다. 빙의 히트곡 중 하나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 Holy Night)’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이 노래는 1천만 장 이상이 판매되는 인기를 끌었습니다.
1930년대에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빙과 ‘리듬 보이스’를 ‘재즈의 왕(King Of Jazz)’이라는 영화에 출연시키면서 크로스비의 영화 인생도 시작됐습니다. 크로스비는 모두 79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대부분이 음악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뮤지컬 코미디였습니다. 당시 미국 최고의 코미디언 봅 호프, 여배우 도로시 라모어(Dorothy Lamour)와 출연한 ‘길 (Road)’이라는 시리즈 물은 특히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싱가포르로 가는 길’, ‘홍콩으로 가는 길’ 등 연재로 나온 이들 영화는 여러 나라의 사람과 문화를 배경으로 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크로스비는 1930년대 중반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10대 배우 중 한 명으로 올라섰습니다.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1940년대는 빙 크로스비에게는 생애 최고의 전성기였습니다. 전선에 나가 있는 미군 장병들에게는 빙 크로스비가 사기를 올려주는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드디어 1942년에 개봉된 영화 ‘홀리데이인(Holiday Inn)’에서 주제가인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가 등장했습니다. 이 영화는 조용히 시골로 내려가 조그마한 호텔을 경영하려고 하는 남자 주인공과 화려한 할리우드로 진출하려는 여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음반이 발매되자 즉각 인기 순위 1위로 올라섰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20년 동안 매년 크리스마스철이 다가오면 재발매를 했고 몇 차례 더 녹음해가면서 계속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각 분야의 세계 진기록을 수록하는 기네스북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노래가 들어간 음반은 세계적으로 1억 장 이상이 팔렸고, 싱글 음반으로는 5천만 장 이상이 팔린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빙 크로스비는 1944년 개봉된 뮤지컬 코미디 ‘나의 길을 가련다(Going My Way)’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가톨릭 신부로 나온 크로스비가 노동자들이 주로 다니는 뉴욕의 한 성당으로 부임해 주변 환경과 성당 내의 문제점들을 극복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그 외에도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원작상, 각색상, 주제가상 등 7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습니다. 주제가상은 크로스비가 성가대와 함께 부른 ‘Swinging on a Star’였습니다.
크로스비가 부른 노래 중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곡은 ‘White Christmas’와 ‘Swinging on a Star’를 포함해 네 곡이나 됩니다.
빙 크로스비는 일생 무려 2천 곡에 가까운 노래를 녹음했고 싱글 히트곡으로 꼽히는 것만 해도 300곡이 넘습니다. 그의 전성기 시절에는 지구상에서 빙 크로스비의 노래가 흘러나가지 않는 시간은 단 일초도 없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습니다.
빙 크로스비는 영화에서도 입장권 판매 기록이 10억7천700만 매 이상으로, 클락 게이블, 존 웨인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가 되면서 그의 노래 취입이나 영화 출연은 뜸해졌습니다. 이때는 출연도 주로 텔레비전이었습니다. 건강도 차츰 나빠졌고 1974년에는 폐종양 제거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인기 있고 많은 돈도 벌었지만 가정생활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49세 때는 부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혼한 크로스비는 두 부인한테서 일곱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픔도 있었습니다. 골프를 무척 좋아했던 빙 크로스비는 1977년 10월 14일 스페인에서 골프를 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나이 74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