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북한은 기본권 행사 위해 뇌물 바치는 사회"

지난 2017년 12월 북한 청진의 장마당. (자료사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최근 발표한 북한 보고서 ‘권리의 대가’는 생존을 위한 북한 주민들의 기본권 행사와 뇌물이 국제법에 어떻게 위배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국제법적 권리를 제대로 숙지해 정부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왜 북한 주민들은 지구촌 주민들이 일상에서 누리는 기본권 행사를 위해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쳐야 하는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지난 28일 발표한 보고서 ‘권리의 대가’가 강조하는 핵심 질문입니다.

덴마크 출신의 시나 폴슨 유엔인권 서울사무소장은 모든 북한인이 국제법이 보장하는 기본 권리를 제대로 알고 행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녹취: 폴슨 소장] “The rights that all people have to basic housing, adequate standard of living to have enough food…"

모든 인간이 기본적 수준의 거주 시설과 삶을 누리고 충분한 식사를 하며 좋은 환경에서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시나 폴슨 유엔인권 서울사무소장이 28일 서울에서 유엔의 최근 북한 인권 보고서에 관한 기자회견을 했다.

보고서는 인권의 핵심축으로서 주민의 경제권 행사가 왜 중요한지, 김씨 정권이 국민의 기본적 필요와 권리를 보장하는 데 실패한 원인을 국제법에 따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북한이 지난 1981년 가입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이행이 실패했다는 지적입니다.

이 규약은 국가가 적법한 생활 수준을 누릴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충족시킬 의무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이런 권리를 직접 제공할 의무는 없지만, 국민 상당수가 필수적인 식량이나 필수적인 기본 의료, 주거, 기초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인민 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은 우리 당과 국가의 제일가는 중대사”라고 강조했고 북한 헌법은 인민의 물질문화생활을 끊임없이 높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그러나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과 만연된 부정부패 등을 볼 때 이런 지도자의 약속과 헌법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게다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가입국은 식량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가 최대의 노력을 했다는 것을 여러 형태로 증명해야 하지만, 북한 정부는 그런 의무조차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보고서는 세계식량계획 등 북한 내 20년 이상 상주한 유엔 기구도 “유효하고 정확한 데이터 접근이 여전히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검증이 불가능하고 북한 내 독립적 시민단체나 언론도 없어 경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상행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직업 선택의 자유와 노동 권리의 보장, 이런 기본권을 위협하는 정부의 행위를 감시할 언론과 결사의 자유, 독립적이고 공정한 사법부 활동이 북한에 있었다면 장마당 등 비공식 분야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보고서는 그러나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은 법치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국민이 식량 확보를 위해 장사 등 모든 수단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국가가 존중하는 게 국제법 의무이지만, 북한 정부는 국민의 고통보다 정치적 권력과 사상을 먼저 계산에 넣어 필요한 개혁을 하지 않는 상황을 식량난의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국민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장사와 무역, 나라 안팎을 이동할 기본적 권리가 있지만, 북한 정부는 이를 규제할 뿐 아니라 위반자들을 처벌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당국자에게 뇌물을 줄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연됐다는 겁니다.

보고서는 이런 현실은 “모든 사람은 자국 내에서 이동과 거주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세계인권선언 제13조 1항과 모든 사람은 이동의 자유 및 거주의 자유 권리를 가진다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공민은 거주, 여행의 자유를 가진다”는 북한 헌법 75조를 모두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관리들이 장마당을 통해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는 주민들을 공권력으로 협박해 돈을 착취하는 행위들은 누구든 자의적으로 체포되거나 억류되지 않으며 법적 이유와 절차 없이 이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28일 성명에서 “식량권, 의료권, 거주권, 노동권, 이동의 자유는 보편적이며 양도 불가능한 권리이지만, 북한에서는 이런 권리의 향유 여부가 개개인이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유들 때문에 북한의 현재 기아 수준이 심각하다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악을 금치 못할 수치”이고 “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에서도 이 정도의 박탈을 경험하지 않는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바첼레트 대표는 아울러 “핵 문제에만 지속적인 초점을 맞춰 수백만 명의 주민이 겪는 심각한 인권 침해 상황에서 주의를 분산시키는 상황에 우려를 표한다”며 “시민적·정치적 권리뿐 아니라, 사회적·문화적·경제적 권리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