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두 번째로 달에 발을 디딘 우주인, 버즈 올드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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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7월은 미국의 달 착륙 성공 50주년이 되는 달입니다. 미국에서는 인류 최초로 달에 사람의 발자국을 찍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1969년 7월 20일,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은 닐 암스트롱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달에 내린 또 한 사람은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입니다. 이 시간에는 착륙선 이글을 조종해 달 여행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또 한 사람, 버즈 올드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69년 7월 16일, 미국 남부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에서 아폴로 11호가 달을 향해 발사됐습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발사된 아폴로 11호에는 세 명의 우주인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선장 닐 암스트롱, 사령선 컬럼비아호(Columbia)의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달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었습니다.
강력한 로켓에 실려 지구를 떠난 컬럼비아호는 얼마 후 달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이어 버즈 올드린과 닐 암스트롱은 착륙선 이글(Eagle)로 옮겨 탔습니다. 이제부터 올드린은 이글을 조종합니다.
7월 20일, 올드린이 조종하는 이글은 컬럼비아에서 분리되고 착륙 절차에 들어갑니다. 이글이 달 표면으로 내려가는 동안 올드린은 암스트롱에게 계속 항해 데이터를 알려줍니다. 올드린은 달 표면에 가까워지면서 예정된 착륙 지점에 커다란 구덩이, 즉 분화구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에 내린다면 착륙선은 넘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컴퓨터로 된 시스템을 무시하고 직접 수동으로 조종을 하면서 안전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새로운 곳을 찾고 나니 착륙용 연료는 겨우 25초 분량밖에 남지 않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습니다.
7월 20일 세계 표준시 20시 17분 40초. 착륙선 이글은 달 표면 고요의 기지에 무사히 내려앉았습니다. 얼마 후 이글의 문이 열리고 암스트롱이 달에 내렸습니다. 달에 내린 암스트롱은 이 작은 발걸음이 인류의 거대한 도약이라며 감격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로부터 19분 후 올드린도 달에 내렸습니다. 올드린은 “아름답다”를 연발했습니다. 두 사람은 달에 성조기를 꽂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달의 표본을 모았습니다. 이날 올드린과 암스트롱의 모습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상 최다인 6억5천만 명이 이 경이로운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보았습니다.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두 사람에게 성공적인 착륙에 축하를 보냈습니다.
임무를 마친 올드린은 착륙선이 안전하게 이륙할 수 있는지 점검했습니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올드린이 먼저 이글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올드린은 맨 처음 달에서 이륙한 사람이라는 기록도 남기게 됐죠.
이글이 달에 착륙했다 떠날 때까지의 시간은 약 21시간. 이들은 무게가 약 20kg에 이르는 달나라 돌도 가지고 옵니다. 이륙한 이글은 달 궤도를 돌던 컬럼비아호에 다시 연결되고 두 사람은 콜린스와 함께 지구로 향합니다. 7월 24일 세 우주인을 태운 컬럼비아호는 태평양상에 떨어졌습니다. 이어 헬리콥터로 인양돼 항공모함 호넷호로 옮겨졌습니다. 세 우주인의 성공적인 달 착륙 임무에는 총 195시간 18분 35초가 걸렸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버즈 올드린은 1930년 1월 20일, 미국 동부 뉴저지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매리온 문 여사는 군목의 딸이었습니다. 아버지 에드윈 유진 올드린 시니어는 미 육군 항공대 조종사로 1차 대전에 참전했고 전역 후에는 큰 석유회사의 간부를 역임했습니다.
버즈 올드린의 정식 이름은 에드윈 유진 올드린 주니어(Edwin Eugene Aldrin Jr.)입니다. 버즈라는 이름은, 어렸을 적 바로 위 누나가 남동생 브라더(brother)를 버저(Buzzer)라고 하니까, 가족들도 그렇게 따라 한 것이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버즈 올드린은 고등학교를 1년 일찍 졸업하고 미 육군 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에 들어갔습니다. 사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올드린은 전체 3등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는 공군에 들어가 F86 세이버 제트기 조종사가 됐습니다.
올드린은 한국전에도 참전했습니다. 한국전에서는 66회 출격하는 동안 두 대의 미그 15기를 격추해 비행 십자훈장을 받았습니다. 이어 독일로 가서 F100 항공기를 조종하던 그는 매사추세츠 공대(MIT)에 들어가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올드린은 유인 궤도 랑데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랑데부란 두 우주선이 궤도상에서 서로 가까이 접근해 속도 차이를 ‘제로’, 0으로 조정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이는 우주선 도킹에 필수적인 과정으로, 올드린의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버즈 올드린은 1963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인으로 선발됐습니다. 우주인들 중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은 올드린이 처음이어서 사람들을 그를 랑데부 박사로 불렀습니다. 버즈 올드린은 무중력 상태에서의 비행과 우주 유영 등에 대비한 훈련을 위해 수중에서 훈련하는 방법도 개발했습니다. 제미니 12호 궤도 비행에서 올드린은 처음으로 우주 유영을 했습니다. 제미니는 미국 우주 탐사 계획의 하나로 우주인 훈련을 주 목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1969년 7월의 기적 같은 달 여행은 그러한 많은 과정이 이뤄낸 결과였습니다. 그 후 올드린은 평화 시 미국인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받았습니다. 또 45일 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친선 방문하는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올드린은 23개국에서 각종 훈장과 메달을 받았습니다.
지난 2011년 미국 연방 의회는 올드린과 함께 4명의 우주인에게 의회 금메달을 수여했습니다. 올드린과 다른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은 할리우드의 명성의 거리에도 헌정됐습니다.
항공우주국과 공군에서 대령으로 은퇴한 뒤에도 올드린은 미국의 선도적인 우주 탐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화성 왕복이 가능한 궤도를 도는 우주선 ‘올드린 화성 싸이클러’를 만드는 계획도 수립했습니다.
올드린 박사는 우주정거장 모델, 재사용 로켓, 여러 사람의 우주여행을 위한 우주선 모델 등으로 정부의 특허도 갖고 있습니다.
올드린 박사는 여러 권의 저서도 냈습니다. 자서전, 다큐멘터리, 어린이용 과학 이야기, 소설 등 다양한 책들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2009년 달 착륙 40주년에 펴낸 자서전 ‘거대한 황야(Magnificent Desolation)’는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즉 가장 많이 팔린 책에 올랐습니다.
올드린 박사는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우주 탐사에 큰 진전이 없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달 착륙선을 조종하고 그곳에 발자국을 남긴 버즈 올드린. 89세의 노병은 젊은 세대와 과학계는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우주 탐사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오늘도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