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2021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미국 내 탈북민들은 한 해를 보내면서 감사함과 새로운 한 해를 맞는 남다른 소감을 나누고 있습니다. 미국 내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장양희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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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탈북해 같은 해 한국에 도착하고 2015년 미국에 유학온 30대 탈북민 김두현 씨에게 2021년은 너무나 특별합니다.
[녹취: 김두현] “2021년 올 한해 저희 가족에게 저와 지은이에게 인생에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그런 한 해이죠. 저도 그렇고 지연이도 그렇고 대학을 졸업했잖아요. 저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성취한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올해처럼 그렇게 큰 성취감을 느꼈던 그런 순간이 많지 않았어요. 제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미국에 와도 그동안 너무 힘들었었거든요. 시작하고 나서 애들이 생겼고 또 그 애들을 보면서 어느 한 사람 공부하는 것을 서포트 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같이 공부를 했으니까. 그 기간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희가 끝나고도 얘기를 했었는데 이게 사실 불가능한 거예요…”
미 서부 유타주에 거주하며 탈북민 아내인 김지연 씨와 함께 아이를 돌보며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다는 김두현 씨.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북한에 계신 부모와 가족을 위한 지원도 거른 적 없었습니다.
[녹취: 김두현] "저희도 먹고 살기 힘들고 또 대학 등록금 내기 힘들었는데, 북한에 계신 부모님들한테도 돈을 보내드려야 되는 그런 상황인 거죠. 보통 어떻습니까. 애들이 공부하다가 학비가 떨어지면 부모님한테 전화를 해서 학비 모의고사 어떻게 좀 줘라 이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보통은. 저희는 그 반대로 저희가 그 학비도 내야 되고 부모님도 부양을 해야 되는 그런 상황이잖아요.”
김두현 씨는 북한에서 살 때도 이 정도로 몸과 마음이 고생해 본 적은 없었을만큼 힘들었지만 무사히 지나갔다는 것이 감격스럽다고 말합니다.
[녹취: 김두현] “그냥 지금 하지 않으면 못한다. 그런 고집을 부려서 지금 오늘까지 왔고 끝내야 졸업을 했거든요. 북한에서도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살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 기간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걸 드디어 끝냈고 두 사람 다 성적도 좋고 대학을 졸업할 수 있어서 저희가 너무 감사했고 너무 고마웠고 그동안 주위를 도와주신 분들에게 너무 고마웠고..”
30대 탈북민 부부인 김두현 씨와 김지연 씨는 각각 정치학과 회계학을 전공했습니다.
한국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왔던 공부였지만, 두 아이의 부모로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 수업을 따라가며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서 마친 학업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 다른 이유는 응원과 지원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 씨는 가족 모두 성탄절을 앞두고 고마운 분들에게 카드를 쓰며 여느 때와 다른 여유있는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2008년 난민으로 미국에 정착한 30대 탈북민 조진혜 씨는 4년 만에 타주에서의 생활을 접고 워싱턴 디씨로 돌아왔습니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한지도 벌써 4년, 그동안 대학가와 교회 등에서 북한 인권 강의를 이어왔다는 조 씨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선교사가 됐습니다.
2년 전 선교사 파송을 받은 조 씨는 미주 지역 선교사에서 지역을 확대해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선교사가 된 것이 올해 의미가 깊습니다.
[녹취: 조진혜] ”저는 이제 생명의 빚을 진 자죠. 부족한 저의 가족을 중국에서 북한에서 살려주셔서 미국까지 데려오신 윤요한 목사님 할아버지가 작년 6월에 은퇴를 하셨어요. 그래서 할아버지 뒤를 이어서 탈북자로서 선교사 사명을 가지고, 북한이 열리면 다시 그 나라에 가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최종 목표고요..”
연말을 앞두고 조지아 주에 남은 어머니와 동생을 찾아 볼 계획이라는 조진혜 씨는 미국에 난민으로 온 지 10년이 넘었다며 소감을 나눕니다.
[녹취: 조진혜] ”스물 한 살에 미국 땅에 왔거든요, 지금은 서른 넷이에요. 나이가 이렇게 많이 먹었나... 신기하기도 하고. 디씨로 이사와서 여기저기 다니고 지나가도 이런 걸 보고 터가 닦였다라는 말을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십 몇 년을 알고 지내던 분들이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시더라고요. 감사한 시간을 보냈어요. 문득문득 미국 처음와서 일하고 먹고사느라 고생했던 시간과 장소를 보면서 이제는 옛날을 추억할 수 있게 된 거죠. 그게 참 기분 좋고 감사하더라고요.”
지난 11월 말 미 서부에 정착한 20대 탈북민 청년은 태국 난민수용소에서 1년 10개월 기다림 끝에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2019년 탈북한 이 청년은 VOA에 “미국의 연말 풍경을 보면서 너무 감격스럽고 미국 땅에 도착한 것이 꿈만 같고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며, 미국에서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살고 싶고 이를 위해 새해에는 캘리포니아에서 공부를 시작해 보고 싶다고 계획을 말했습니다.
서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평양 요리사 출신 탈북민 박명남 씨는 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녹취: 박명남] ”어제 애 생일이라 문자가 왔는데, 키워줘서 고맙다고. 그 말 들으니까, 모든 게 내려가고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잘 크니까 고맙더라고요. 전공은 경제학이니까, (직장)면접하는 모양이에요.”
미국에 정착한 지 20년이 된다는 박명남 씨는 올해 특별한 송년행사에 다녀왔다고 말했습니다.
미 서부에서 탈북자를 지원하고 있는 한인 변호사의 초청으로 오랜만에 탈북민들을 만나 회포를 풀었습니다.
[녹취: 박명남] ”흩어져 살고. 밥먹고 살기 힘드니까. 이런 자리 마련해주니까.. 만나는 거죠. 당연하죠. 그 때나 만나야 뭘하고 어떻게 지냈는지 애들은 어떻게 컸는지.. 이야기 나노면 . 뭐 친척이 있어요~ 형제가 있어요 뭐 반갑죠 만나면 다들..”
지난 18일 재미탈북자지원단체는 연례 탈북민 송년의 밤을 열어 10여명의 탈북민들이 함께 안부를 묻고 새해 소망을 빌었습니다.
이 날 초대된 탈북민들은 한 목소리로 올해 모임이 지금까지 행사 중 가장 특별하고 고마웠다고 소감을 밝힙니다.
행사를 마련한 한인 변호사 로베르토 홍 씨가 그간 암 투병으로 쇠약해진 상황에서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녹취: 박명남] ”그 분이 10년이 넘었죠, 매해 연말이면 식사 자리도 만들고, 사비를 털어서 꼭 1년에 한 두번 씩은 디즈니랜드, 여러 군데 데리고 다니면서, 애들이랑 데리고 가려면 보통이 아닌데.. 무슨 일 있으면.. 매해 그랬어요.”
갑작스러운 투병 소식에 놀랐고 이런 상황에서도 탈북민들을 챙기는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녹취: 박명남] ”금년도 갑자기 종합검진을 해보다가 (암을 발견하고) 수술하셨더라고요. 금년도 같은 경우는 진짜 안 그래도 되는데, 악조건 속에서도 경제도 안 좋지 코로나도 있고. 몸도 안 좋은데 탈북자들이 미안하고 감동 많이 받는 거죠.”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민 제임스 리 씨도 행사에 초대받고 온정을 느끼며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녹취: 제임스 리] “사람 아주 수수하고요, 옷차림 신경 하나도 안 쓰고 10년 전 산 차 툴툴툴 끌고 다니고, 바지도 잠옷 바지 같은 거 입고.. 그런 사람인데, 자기 말로는 치료 다 끝나서 나았데요. 그 상황에서도 북한 사람들 보고 싶어서, 올해 열 몇 명만 불렀어요. 불러가지고 기념품들 선물 사가지고 왔더라고요. 와…정말 눈물 나더라고요. 9개월 동안 일 못했데요. 일도 못하고. 우리 보고 싶다고 돈 들여 식당 예약하고, 왔다고 100 달러 200 달러 집어주지.”
자기 몸 돌보지 않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변호사의 암 투병 소식에 마음이 아프고 한결 같은 관심와 애정에 감동을 받았다는 겁니다.
로베르토 홍 변호사는 지난해 VOA의 TV프로그램 ‘나의 아메리카 2편’의 ‘나누면 채워지는 것들’에 출연해 한인사회와 탈북민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탈북민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녹취: 로베르토 홍] “특히 탈북민들이 고생이 너무 많아서. 기쁨, 행복을 좀 줘야죠. 그들을 도와준 게 가치가 있었냐고 물어요. 전 이렇게 생각하죠. 내가 내 인생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게 탈북자들을 도운 것이다. 나한테 돌아온 이익이 없잖아요.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도왔잖아요.”
직장상해 전문 변호사인 홍 씨는 2007년부터 민간단체를 이끌며 북한 인권 문제를 알리고 탈북민 망명 문제, 탈북민 사업 강연 등 다양한 지원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탈북민들은 이런 관심과 사랑에 감사를 느낄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아프게 느껴집니다. 북한에 둔 가족과 나누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미안함과 그리움이 더 깊어진다는 박명남 씨.
[녹취: 박명남] “또 (북한에 있는)형들이랑 다 나이가.. 다 70대가 넘고 하니까.. 난 날이 추워지면, 그럴 때마다 북한에서 추웠던 생각이 나서.. 나 때문에 추방돼서 산골에 사는데, 아, 거긴 얼마나 추울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발, 북한 사람도 제발 사람처럼 사는 날이.. 한 해 한 해 지나면, 100년이 될 거같아요. 인간처럼 살았으면 좋겠어요. 항상 그거 밖에 없어요. 북한같은 나라는 없다는 거 빨리 알아서, 사람답게 살고, 제발 지금껏 산 거 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아프지 말고, 죽지 말아야 좋은 세상을 볼 거니까, 다들 잘 지내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한 해를 보낸 상황에서 불경기를 타지 않는 전기기술자로 어려움이 없었다는 제임스 리 씨는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가 희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제임스 리] ”북한에 남은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북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가다가, 나중에라도 (북한이) 열리게 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살고 있고요. 아이들 와이프도 열심히 살아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브로커와 연락이 닿지 않아 북한에 계신 어머니와 형의 안부를 묻지 못해 답답하다는 제임스 리 씨는 가족과 북한 주민들이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자신의 마음의 빚을 갚을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VOA 뉴스 장양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