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자신의 아픔을 `책과 연설을 통해 치유'하는 탈북민 작가들을 소개하는 행사가 열립니다. 장양희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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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무릅쓰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들은 북한 내부, 그리고 탈북 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입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체제가 다른 곳에서 난생 처음 경험하는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 문화적 충격과 언어의 어려움, 대인관계, 생계 유지 등 정착에 몰두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아픔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고 탈북민들은 입을 모읍니다.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미국인이 설립한 단체 FSI(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가 탈북민들이 이런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여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일대일 무료 영어교육과 말하기 대회 등 탈북민 개개인의 수준과 처지에 맞는 교육을 통해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해 온 겁니다.
지난해부터 단체의 이름을 바꾸고 국제무대에서 자유발언대를 이끌어온 이 단체는 최근까지 탈북민들이 각자의 사연을 공개 발언하는 플랫폼을 마련해왔습니다.
그리고 올해 첫 행사로 상처와 아픔을 너머 더 큰 세상을 향한 첫 발걸음을 떼는 데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탈북민 작가 강연회:마음을 치유하다’를 마련했습니다.
올해 이 단체의 도움으로 자서전을 출간하게 된 한수진 씨는 지난 2011년 탈북해 같은 해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20대 여성 한수진 씨는 오랜 기간 가족에 대한 깊은 상처로 괴로워했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꺼내놓지 않았습니다.
케이시 라티그 FSI 대표는 행사 소개문에서 한수진 씨에 대해 “2005년 어머니가 북한에서 탈출하면서 혹독한 성장을 겪으며 뒤에 남겨졌다. 자유를 위해 탈출했지만 남한에서 어린 시절과 자신에 대한 만감이 뒤섞인 마음으로 특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마음이 치유된 그녀는 회고록 "자유를 향한 초록불"에서 자신의 여정을 공유했다”고 적었습니다.
2019년 이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된 한수진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한 가지 이유를 설명합니다.
[녹취:한수진] “책 쓰기 전에 과연 누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까.. 그래서 책 쓸 마음이 없었거든요. 사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어보시더니 책을 써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그랬어요. 제 이야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 거에요. 궁금해하지 않을거에요. 책을 쓰면서 오히려 잊고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힘들것 같아서.. 그런데 케이시 대표님이 그 책을 쓰면서 깨닫는 것이 있을 거라고..”
단체의 권유로 용기를 냈던 한수진 씨는 정착 10년만에 묻었던 아픔과 상처를 다시 써내려갔습니다.
집필을 마치고 강연까지 준비하면서 한수진 씨는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를 버린 어머니와 자신에게 혹독하게 대했던 이모에 대한 감사함이었습니다.
[녹취:한수진] “그 때는 감사한 줄 몰랐죠. 늘 힘들었고. 집안 모든 일을 내가 해야 됐고. 밭일, 애기 보는 일, 나무도 내가 해야 했고. 그 때는 힘들다고만 생각했지 감사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책을 다 쓰고 나니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그 이모가 없었다면 나는 여기에 있었을까요? 노숙자가 되어 혹시 얼어 죽진 않았을까....”
한의사인 50대 여성 한미화(가명) 씨는 오래 전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국제사회에 알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북한에서 설계사로 일했던 한미화 씨의 아버지는 1998년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탈출했지만 두 번 북송 당했습니다.
아버지는 두 번째 탈북에서 성공하자마다 며칠 동안 밤을 새워가며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원고에 적었고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의 나이였던 한미화 씨는 아직도 그 때 일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녹취:한미화] “어떻게 저렇게 매일같이 쏟아져 나올까 그 시간과 장소들, 그 때 모든 상황이 필름처럼 흘러가나 봐요 아버지는. 그대로 쓰는데 쉴새없이 펜을 놀리시더라고요. 머리 속에서 나오는대로 쓰시는데 제가 놀랬죠. 얼마나 그 고생이 가슴에 맺혔으면 저렇게 글이 나올까.. 한이 많이 맺히셨구나. 제가 그 때는 볼펜으로 직접 써서 복사를 했는데, 그 때 자세하게 다 알게 됐죠. 아버지가 설계원이다 보니까 모든 것을 수치로 정확하게 표현을 다 하셨어요…”
그러나 1999년 다시 북송돼 아내와 함께 고문을 받고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습니다.
2000년 북한 감옥에서 사망한 한 씨의 아버지 한원채 씨의 수기는 2002년 일본인 기자에 의해 일본어로 첫 출간됐고, 17년 만에 딸인 한 씨에 의해 2019년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이란 제목으로 한국사회에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FSI가 영어 번역본을 써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한 씨는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썼던 수기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폭로할 수 있다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녹취:한미화] “계속 울며 살았고 애를 키우면서 저도 모르게 운전하다가 울고 공부하다가도 울고 교실에서 수업하다도 울고 독서만 해도 공부하다가 책보다 맨날 펴거든요.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서서히 내 얼굴에 웃음이 이렇게 밝아지고 이런 느낌이 들어요. 영어권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 이런 나라가 있구나, 북한에서 현실로 일어나는 상황이구나라는 것을 알고 읽었으면 좋겠어요. 이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라는 걸.”
또 다른 연사로 나서는 엄모 씨는 ‘최강의 북한 군인’의 저자입니다.
회사원인 엄 씨는 10년간의 군대 복무 기간에 겪었던 인권 유린에 대한 내용을 기록했는데, 오랫동안 꺼내지 못했던 한 군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녹취:엄모 씨] “북한은 상수도가 잘 안 돼 있어서 중대에서 우물을 팠어요. 3일 동안 정말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15미터 20미터를 수직으로 팠는데, 그게 무너져 버린 거에요. 그런데 사실 왜 그게 나한테 큰 충격였냐면 그 우물을 파는 일을 제가 했어야 됐어요. 그런데 그 파기 바로 그 일을 시작하기 전날에 아버지가 갑자기 아픈 거예요. 많이 아파하셨고 전염병이 걸려서.. 그래서 그 군인이 대신 죽은 셈이죠. 그래서 그 얘기를 다시 하려니까 마음이 먹먹하고 많이 힘이 들었죠..”
북한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새 세상에서도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아픈 기억과 상처를 안고 살았던 탈북민 작가들은 자신의 책과 연설을 통해 국제사회가 북한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녹취: 엄모 씨]“그런 얘기를 계속한다 할지라도 마음 속에 어떤 어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그만큼 북한의 상황, 북한인들의 삶이란 게 그렇게 노예가 살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국제사회나 이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엄 씨는 북한의 선군정치에서 많은 언론은 미사일과 핵 등 북한의 무력 도발에만 관심을 쏟지만 그 아래 10만 군사들의 고통은 외면하고 있다며 자신의 이야기가 작은 변화를 만들기를 바랬습니다.
[녹취:엄 모 씨] “100번을 했을 때 적어도 100명은 북한의 이야기를 알 것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것들로 인해서 나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알렸다면 성취감을 갖고 있습니다.”
엄 씨는 그러면서 더 많은 탈북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알려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북한의 연좌제가 그들의 입을 막고 있지만 침묵한다면 그것이 또 다른 인권 침해라는 겁니다.
한수진 씨는 영어 회고록 ‘자유를 향한 초록불’ 출간과 첫 강연 행사를 계기로 더 적극적으로 많은 활동을 할 것임을 알리며, 탈북민들이 스스로에게 고통과 상처로부터 자유할 기회를 주기를 바랬습니다.
[녹취:한수진 씨]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더라고요 그냥 나 자신으로 살면 어떨까 싶어요. 내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면, 바라보는 사람의 몫이잖아요. 그냥 요즘은 더구나 대체로 이제는 놀라지 않더라고요. 북에서 왔다고 하면.. 잘왔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지.. 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면 어떨까. 있는 그 자체로가 아름다운 것인데 그리고 우리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이 있잖아요..저는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하고 싶어요.”
아들을 잘 키우면서 작은 음식점을 하나 차리는 것이 꿈이라는 한수진 씨.
[녹취: 한수진 씨] “2년 전만 해도 제가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런데 묵묵히 버텨온 자신에게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기다리니까 아름다운 시간이 오고, 기다리니까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또 견뎌내다 보니까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순간들이 많고.. 앞으로는 따뜻하게 한 아이의 엄마로서 또 여자로서 살아가길 바란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한수진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버림받지 않았고 언젠가 아름다운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탈북 작가들의 치유 여정을 책과 함께 소개하는 FSI 의 ‘탈북민 작가 강연회: 마음을 치유하다’는 비대면 행사로 19일 열립니다.
이번 행사에는 ‘김정일: 위대한 영도자’를 쓴 영국 작가 마이클 브린, 미국인 작가 톰 G. 파머 등 4 명의 작가가 패널로 참여합니다.
마이클 브린 작가는 이번 행사에 대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탈북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집필하는 데 집중하는 노력은 이런 점에서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같은 실수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VOA 장양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