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발생한지 4주가 지났습니다. 북한 당국은 사태가 진정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 당국은 5월말을 기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5월에 하루 40만명까지 치솟던 북한의 신규 발열 환자 수는 6월 8일 5만 4천여명으로 떨어졌습니다. 북한의 하루 발열 환자 규모가 5만명대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또 누적 발열 환자는 425만3천여명에 달하지만 사망자는 총 71명입니다. 북한은 4일부터는 아예 사망자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없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확진자가 425만명인데 사망자가 71명이면 치명률은 0.002%에 불과합니다.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이 안됐고 의료시설이 열악한 북한의 여건을 감안할 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망자가 나왔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에서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백신 미접종자의 치명률은 0.6%입니다. 따라서 북한의 의료 수준 등을 감안할때 북한의 치명률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높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서울대병원 오명돈 교수는 세미나에서 북한의 사망자 수는 최소 3만4천여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오명돈 교수입니다.
[녹취: 오명돈 교수] ”이 데이터를 적용해 북한 오미크론 유행으로 인한 사망자를 추정하면 3만4천540명이 나옵니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 사태의 실상을 공개 않는데다 감염 환자와 사망자 숫자까지 정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영 조선중앙방송 TV를 유심히 관찰하면 북한 당국이 감추려는 코로나 사태의 몇몇 단면을 엿볼 수있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어린이 사망자가 많다는 겁니다.
지난 5월18일 북한 TV는 코로나 사망자의 연령별 분포를 보도했습니다. 이를 보면 이날 사망자가 56명인데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아홉명 사망했습니다. 전체 사망자 중 어린이 사망률이 16%에 이릅니다.
같은 시기 한국의 경우 10세 미만의 아동이 코로나에 감염돼 사망한 경우는 0.09%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북한 어린이는 영양 부족 등으로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코로나에 감염됐을 경우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탈북민들은 말합니다.
함경남도 함흥에 살다가 2001년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민 박광일 씨입니다.
[녹취: 탈북민 박광일씨] “바이러스를 막을 수있는 면역력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 어린이들은 면역력이 굉장히 취약합니다. 왜냐면 영양공급이 잘 안되기 때문에 코로나에 취약합니다.”
북한 군대에서도 코로나로 인해 군인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조선중앙방송이 5월 24일 방영한 프로그램을 보면 국가비상방역사령부 류영철 국장이 나와서 코로나 현황을 발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류영철 국장이 들고 있는 문서를 보면 당시 누적 사망자 42명을 직업별로 분류한 통계가 적혀있습니다. 이를 보면, 어린이 6명, 학생 5명, 군인 1명, 노동자와 사무원 9명, 부양 21명으로 표시돼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5월 24일 군인 1명이 사망했으면 집단생활을 하는 군의 특성상 군부대를 중심으로 코로나가 빠른 속도로 확산됐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이 5월 12일 처음으로 코로나 발생 사실을 인정한 이후 군부대는 코로나 확산의 유력한 진원지로 꼽혀왔습니다.
4월 평양에서는 군중들이 대거 모인 가운데 태양절과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렸습니다. 당시 2만명 이상의 군인이 참가했는데 사진을 보면 아무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열병식 과정에서 확진자가 군인들과 밀접 접촉하면서 1차 감염이 이뤄졌을 수있습니다. 이어 행사를 마친 군인들이 부대로 복귀해 2차, 3차 감염이 발생하면서 집단 감염으로 확산됐을 수 있습니다. 다시 탈북민 박광일 씨입니다.
[녹취: 탈북민 박광일씨]”코로나 환자가 1명 발생하면 군인들은 집단 생활을 하니까 굉장히 많은 환자가 감염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북한 TV를 보면 평양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 있는 ‘신의주은하타올공장’ 관계자는 6월 4일 조선중앙방송에 나와 “지난달 12일부터 공장 종업원 수의 40%에 해당하는 발열환자가 발생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12일은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북한 내 코로나 발생을 처음 인정한 날입니다. 이 때 이미 신의주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한 사실이 공장 관계자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코로나 환자 중 약물 오남용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북한 TV를 보면 의사가 나와 마구잡이로 약품을 쓰지 말라고 경고하는 내용이 자주 나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이 약 저 약 망탕 쓰면 짧은 기간에 여러번 쓰면 병 경과가 더 나빠지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는 약품이 부족하다는 신호라고 탈북자들을 말합니다. 가족이나 친인척이 코로나에 감염됐는데 약품을 구할 수 없자 장마당에서 검증이 안된 약이나 유사 약품을 사서 복용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이렇듯 북한TV를 보면 코로나 사태는 북한 당국의 말대로 진정되는 것이 아니라 확진자와 환자 그리고 사망자가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최근 국회 보고를 통해 “북한의 코로나 상황이 5월말 또는 6월초를 기해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북한 주민 1천만명 가량이 확진자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가 식량난과 겹쳐 북한의 사회,정치적 문제가 될 수있다고 말합니다.
북한은 5월 12일 코로나 발생을 시인하고 평양과 주요 도시를 봉쇄했습니다.
당초 북한은 중국을 본받아 코로나 환자가 1명도 없는 ‘제로 코로나’ (Zero-COVID)’를 하려고 했습니다. 모든 도시와 길거리를 봉쇄하고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가려내 격리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북한은 5월 29일 봉쇄를 풀었습니다.
그 이유는 ‘식량’ 때문이었습니다. 주민들이 이렇게 집에 갇혀 있으면 당국이 가가호호 방문해 식량을 배급해 줘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식량을 공급할 수없어 통제를 풀 수밖에 없었다고 한국의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지적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북한 내부에서 들려오는 얘기는 코로나보다 굶어죽게 생겼다, 코로나 환자보다 굶어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거든요. 결국 단 하루밖에 식량 구입할 시간을 주지 않고 두 달간 이동 통제를 결정했기 때문에 민심이 상당히 위험한 수준까지 흐르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방역 성공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강요된 이동 통제 완화라는 이 성격이 더 강한 것 같네요.”
평양 등 도시의 봉쇄 조치는 풀렸지만 식량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북한 전문 매체인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지난 4월1일 kg당 5천50원이었던 쌀값은 5월27일 5천700원으로 올라습니다. 한달새 12% 이상 오른 겁니다.
또 4월1일 2천400원이었던 옥수수(강냉이)가격도 2천900원으로 올랐습니다.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메릴랜드대 교수는 코로나 사태로 장마당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것같다며 기근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Now market is not operating well, you can see indication famine in place…”
이렇듯 코로나 사태는 식량난과 결합돼 점차 복합적인 위기로 커지고 있습니다. 북한 수뇌부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코로나 사태를 극복할 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