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의 세상보기] “땅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청진농원 이옥실 씨

Your browser doesn’t support HTML5

한 철 농사를 성공적으로 짓기 위해 노력하는 농민들의 가장 큰 기쁨은 바로 열매를 수확할 때의 기쁨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 수확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히 땀 흘리는 탈북 농업인이 있습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과수 농원을 운영하는 탈북민 이옥실 씨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한 철 농사를 성공적으로 짓기 위해 노력하는 농민들의 가장 큰 기쁨은 바로 열매를 수확할 때의 기쁨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 수확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히 땀 흘리는 탈북 농업인이 있습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과수 농원을 운영하는 탈북민 이옥실 씨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이옥실 씨] “저는 항상 그래요. 모든 사람한테 ‘땅은 사람을 안 속인다.’고 내가 이 땅에 숨 쉬는 땅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들이면 그만한 걸 갖다준다. 이거지...”

지난 2007년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이옥실 씨. 이옥실 씨는 2012년 경북 영천시 고경면에서 과수 농사를 시작했고요. ‘땅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과수 농원을 운영한 지 이제 10년째가 되었습니다. ‘청진농원’의 대표로서 다양한 과일 농사를 짓고 있는데요. 이옥실 씨가 귀농하기 전에는 서울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녹취: 이옥실 씨] “원래는 서울에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신랑도 서울 사람이고 서울에서 셰프, 요리사 하는 사람인데 여기에서 너무 지치니까 저도 식당에서 설거지부터 했거든요. 그러다가 내가 농사 얼마나 잘 짓는지 가서 보자고 뻥(거짓말) 쳤거든요. 그때 당시는, 그래서 가서 결혼해서 지금 쌍둥이 딸 낳고 농사지으면서…”

남편을 설득한 이옥실 씨는 귀농을 결심한 뒤, 포도 농사를 짓기 위해 3천 평이나 되는 땅을 샀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공적이었던 첫 해 농사와는 달리 포도 농사가 쉽지 않다는 것을 금방 체감하게 됐다고 해요.

[녹취: 이옥실 씨] “근데 모든 사람이 가서 내려가자마자 이렇게 하려면 시행착오는 다 있죠. 저희도 없는 건 아니거든요. 뭣도 모르고 처음에 내려가서 포도밭을 3천 평을 샀어요. 그런데 첫해는 그래도 포도가 가격이 잘 나와서 ‘아, 이렇게 하면 되겠다.’ 했거든요. 근데 그다음 해부터 포도 가격이 5kg에 1만 원, 8천 원 하면 그 3천 평에서 나오는 그 많은 포도를 다 그 가격에 팔아야 하니까 그다음부터는, 대출을 더러 끼고 들어가잖아요. 그러니까 마이너스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사나 했는데 3년을 짓고 보니까 포도는 또 다른 과일하고 달라서 손이 많이 가요. 꽃 순을 따주고 올라가는 순을 걸러주고 손이 엄청나게 가거든요. 그리고 밭이 크다 보니까 여기에서 순을 따고 나가면 다시 또 따야 해요. 순이 또 자라서 이게 일이 끝이 없고 사람은 사람대로 녹고 안 되겠더라고요. 3년하고 마이너스 된 상태에서 그 밭을 팔려고 생각했거든요.”

3년 동안 포도 농사를 지었던 이옥실 씨는 과감하게 밭을 팔기로 하고요. 살구와 복숭아, 사과, 배처럼 조금은 더 단단한 품종의 과수 농사를 새롭게 짓기로 합니다.

[녹취: 이옥실 씨] “그 밭을 파니까 그나마 그 밭에서 떼어먹었죠. 평당 16만 원에 산 걸 팔 때는 평당 25만 원에 팔았으니까 그나마 마이너스 된 걸 거기서 보충했거든요. 그래서 그 밭을 팔아서 품종을 바꿔보자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살구, 복숭아, 자두 이런 과일로 품종을 바꿨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살구, 사과 이 품종은 봐요. 한 박스에 담으면 몇 개 안 담아도 10kg가 차잖아요. 포도는 송이 암만 많이 넣어도… 그건 택배하다가 터지면 그게 스트레스, 도무지 포도는 택배 보내지 말자고 해서 접었거든요. 그래서 품종을 바꾼 다음부터는 그다음에는 완전히 180도 달라지는 거라...”

그리고 택배 장사를 위주로 하는 이옥실 씨는 택배를 보내는 과정 중에 자꾸 상처가 나는 포도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 했다고도 전했는데요. 품종을 바꾼 뒤에는 손님들의 만족도도 더욱 높아졌다고 하고요. 아무래도 과일 장사이기 때문에 맛이 참 중요할 텐데, 이옥실 씨는 자기 입이 당도를 체크하는 저울이라며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녹취: 이옥실 씨] “그다음에는 내 입이 완전히 저울이라, 저울보다도 완전히 당도 체크하는 게... 이 과일이 나왔다고 하면 완전히 택배 보낼 때까지 놔두거든요. 그리고 이걸 먹어보고 이번엔 택배 보내도 된다고 하면 택배 주문 받지, 그전엔 절대로 안 보내요. 내가 먹어보고 내 입에 맛있다고 하면 보내고 내 입에 맛이 없으면 다른 사람도 맛없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이옥실 씨는 자신이 자부하는 맛을 내기 위해, 과일 본연의 예쁜 색을 얻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점이 있다고 합니다.

[녹취: 이옥실 씨] “이게 사과도 그렇고 사과 색깔을 내기 위해서 은박지를 다 펴줘야 하거든요. 나무 밑에다가 은박지를 펴 놓으면 햇빛에 반사돼서 색깔을 내주거든요. 그 노력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 은박지 펴려고 하면 허리 끊어지는 것처럼 아프고 한 해 농사 지나고 나면 그 은박지를 걷어야 하고 그렇거든요. 한 해 한 해 그러니까... 모든 과일은 다 오직 내 힘으로 그리고 그 밭에 그 대신 퇴비가 많이 들어가는 거죠. 거름이죠. 퇴비가 일반 퇴비가 아니고 소똥을 2년 동안 묵혀놔요. 2년 동안 밭에서 사서 그걸 뒤집어 놓고 뒤집어 놓고 해서 그걸 피거든요.”

특히 당도만큼은 자신 있다고 하는데요.

[녹취: 이옥실 씨] “사서 먹을 때 처음에는 가격을 들었을 때 ‘이 집은 왜 이렇게 비싼가요?’ 하면 ‘그러면 거기 가서 드세요.’ 그렇게 하고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코 세우나.’ 하고 한번 사서 먹어봐요. 본인이. 그러면 ‘아, 이게 자기가 사서 먹은 거하고 이게 완전히 다르다.’ 이걸 느끼거든요. 향도 그래, 싱싱하고 그분은 택배 받아서 먹거든요. 그러면 이게 다르구나! 그걸 알거든요. 저는 그래서 장담해요.”

한 철 농사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이옥실 씨는 누구보다 이른 아침을 맞이하고요. 부지런히 땅을 일구며 열매를 수확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합니다.

[녹취: 이옥실 씨] “과일이 달려서 딸 때, 열매가 달렸을 때 그 뿌듯함 올해 힘들게 일해서 이만한 과일이 나한테 와주는구나 그리고 저는 항상 그래요. 모든 사람한테 ‘땅은 사람을 안 속인다.’라고 그렇게 말해요. 내가 이 땅이랑 내 노력을 들인 것만큼 그 열매도 주고 당도도 올려주잖아요. 내가 이 땅에 숨 쉬는 땅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들이면 그만한 걸 갖다준다. 이거지...”

그러면서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손님을 만날 때면 없던 힘도 솟아난다고 말했고요. 참 고마운 분들이라며 이제는 자주 찾아주는 단골도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녹취: 이옥실 씨] “처음에는 후회도 했어요.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내가 서울에 그냥 붙어서 남의 밑에서 일하고 돈 벌고 이러면 되는데 뭐 때문에 이렇게 했을까 그런 후회도 할 때도 있죠. 근데 지금은 장담해요. 자부심을 가지고, 내가 어떤 때는 파는 걸 올리지 않잖아요. 그러면 내걸 먹었던 사람들은 이때쯤은 기억해두고 ‘사장님 지금 안 나와요?’ 하고 물어봐요. 그럼 ‘아직 좀 있어야 해요.’ ‘왜요? 밖에는 나왔는데’ 그럼 ‘그거 사서 드세요. 우린 그렇게 못 팔아요. ‘알았어요. 그럼 기다릴게요.’ 그래요. 그런 데서 자부심을 많이 가지죠. 나는 팔겠다고 맛도 없는 거 뜯어서 드세요. 이렇게는 안 해요. 오히려 사람들이 기다려주고 저한테 전화 오고 문자 오고 기다려 주거든요. 그분들이 고맙죠.”

그리고 이옥실 씨에게 또 고마운 분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경북 영천시의 동네 주민이라고 합니다. 이옥실 씨의 성향 자체가 먼저 다가가는 데에 스스럼없고 남들과 잘 지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동네 주민들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녹취: 이옥실 씨] “저는 제집에서 안 나오는 거라도 저는 다른 데서 북한 음식이라 하고 가지고 오고 뭐가 생기면 어르신들 챙겨서 주고 동네 분들 나눠주고 한번 드셔보시라고 그렇게 하면서 많이 가까워졌어요. 그러니까 시아버지, 시어머니 친구분들도 엄청나게 좋아하는 거예요. 지금도 안 보이면 그 댁은 어디 갔나 하고 그러죠. 모든 사람하고 잘 지내고 싶다, 이게 있으니까 억수로 편해요. 처음에는 잘 모르잖아요. 잘 모를 때는 그분들이 많이 도와줘요. 와서 이때는 이걸 쳐야 한다. 이때는 뭘 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그렇다면 이옥실 씨의 현재 꿈은 무엇일까요? 끝으로 들어봅니다.

[녹취: 이옥실 씨] “이게 농사는 내가 장담 못하잖아요. 기후가 날씨가 받쳐 줘야지, 내가 내년에는 1억을 벌겠다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욕심은 버리고 그냥 꾸준히 땅에 내 정성을 들이면 되니까 꾸준히 열심히 지금처럼 할 거예요.”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