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세련된 패션과 창의적인 만화 등을 통해 북한에 ‘자유’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북한의 변화 추세에 맞춰 다양한 콘텐츠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일방적 정보 전달보다 효과적이라는 설명입니다. 한국에서 패션 업체 대표와 웹툰 작가로 활동하며 ‘정보 캠페인’을 전개하는 탈북민 2명을 김영권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한국에서 패션 회사 ‘아이스토리’를 운영하는 강지현 대표와 웹툰 작가 최성국 씨는 최근 워싱턴을 방문해 새로운 유형의 대북 정보 유입 활동을 미 정부와 의회, 민간 전문가들에게 소개했습니다.
탈북민인 강 대표와 최 작가는 한국의 ‘국민통일방송’을 통해 한국에서 펼치는 패션 사업과 북한 주민들의 상황을 풍자한 만화 등을 영상으로 제작해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VOA에 북한 주민들의 변화 추세에 맞는 콘텐츠 제작과 그들의 사고에 직접 변화를 줄 수 있는 정보 유입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에서 ‘파리의 연인’ 등 한국 드라마를 통해 외부 세계에 눈을 뜬 뒤 탈북해 2010년 한국에 입국한 강 대표는 “북한 내 패션에 대한 선입견을 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지현 대표] “밥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언제 패션에 관심을 갖겠냐?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패션은 굉장히 겉으로 보이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사람의 생활 수준과 상관없이 제일 먼저 보이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관심이 없어도 누구나 보게 되어 있단 말이죠.”
30대 중반의 강 대표는 북한에는 잘 사는 집 자녀들과 가수 등 연예인을 중심으로 패션에 영향을 미치는 ‘북한판 소셜 인플루언서’들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들이 한류에 영향받아 입는 ‘남한 스타일’의 옷은 드라마보다 훨씬 전파력이 빠르고 외부 문화에 대한 호기심도 더 강하게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녹취: 강지현 대표] “인권 인권 얘기하지만 패션이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많이 바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사실 이게 유행이라고 해서 입었어요. 근데 이게 남한 스타일이야, 중국 스타일이야, 그럼 아, 중국에선 이렇게 입는구나. 또 부유층 자녀들이 드라마 같은 것을 보고 그 옷을 따라 입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옷을 사람들이 따라 입는 거죠. 본의 아니게 인풀루언서가 되는 거죠. 그래서 패션은 사실 굉장히 강력한 무기이지 않을까?”
강 씨는 “다른 나라의 문화, 특히 선진 문화, 북한 말로 자본주의, 부르주와 사상에 물들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패션”이라며 그 때문에 북한 당국이 단속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유엔 보고서와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최근 몇 년 동안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제정 등을 통해 외부 정보 차단은 물론 여성들의 옷차림과 머리 모양, 남한식 말투까지 단속해 처벌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녹취: 강지현] “정말 안타깝죠. 옷을 입는 게 무슨 그렇게 큰 죄라고 감옥까지 가야 하는지. 그냥 옷이잖아요. 이걸 갖고 처벌하는 거 보면 정말 그 사람들도 옷이 주는 영향을 알기는 아는 것 같습니다.”
옛 공산권 국가인 루마니아에서 자란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앞서 VOA에 이러한 북한 정권의 패션 단속은 냉전체제 때 청바지를 단속했던 동유럽 공산 정부를 떠오르게 한다고 지적했었습니다.
특히 “냉전 시대에 서방의 청바지는 동유럽 독재국가 젊은이들에게 자유의 상징과도 같았다”며 당국이 억누를수록 자유에 대한 동경은 더욱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웹툰 작가로 활동하는 최성국 씨는 ‘녕리한(영리한) 너구리’ 등 북한의 대표적인 만화영화를 각색해 USB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평양 4·26 만화영화촬영소에서 근무했던 최 작가는 만화가 친숙하면서도 안전하고 전달력이 강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최성국 작가] “일단 안전해요. 북한 주민들이 뭘 하고 싶어도 왜 못하냐 하면 잡아 죽이고 총살하니까. 근데 만화다 하면 이거저거 가볍거든요. 잡혀도 좀 안전하다. 또 국민 캐릭터를 활용하니까 아, 너구리가 등장하니까 이건 국가에서 만든 줄 알았다…”
최 작가는 또 북한 정권을 직접 비판하는 내용은 주민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친숙한 만화 주인공 등을 통해 일상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품게 하는 내용, 한국 내 탈북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두 여자의 이야기’란 만화는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없는 두 북한 여성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면서 개인과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녹취: 최성국 작가] “북한 주민들이 아, 이게 우리나라 시스템에서는, 우리 정치하에서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구나. 이런 것들을 북한 주민들이 보면서 조금 더 깨닫게 되고 다시 보게 되고. 그리고 자기들끼리 토론을 해요. 이랬다저랬다 야 이랬어 그냥 본 얘기를 말하는데, 인간의 속성이랄까? 스스로 평가를 한단 말이에요.”
최 작가는 또 북한에서 오직 상부의 지시로 김씨 집안을 선전하는 만화영화만을 제작하다가 “한국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리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비롯한 3만 5천여 명에 달하는 탈북민들의 달라진 삶을 만화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그대로 보여줄 때 가장 영향이 클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최 작가는 특히 한국에서 활동하는 웹툰 작가로서 자신의 수입과 삶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북한 주민들을 각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성국 작가] “직접적으로 너네 체제가 나빠가 아니라 야, 이거 참 한심하구나. 정부가 나쁘구나. 이런 납득이 가게. 근데 그게 사실이니까. 팩트니까요.”
인터넷의 ‘웹’과 만화를 뜻하는 ‘카툰’의 합성어인 웹툰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며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 중 하나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 2021년 웹툰 산업 매출액 규모는 1조 5천600억 원, 미화로 11억 4천만 달러에 달합니다.
특히 1년 내내 연재한 웹툰 작가의 경우 연평균 수익은 1억 1천 870만원, 미화로 8만 7천 달러가 넘습니다.
최 작가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만화의 파급력은 상당하다”며 그 중요성을 정부와 단체들이 인식하고 더 많은 예산 지원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성국 작가] “좀 더 잘 만들고 싶거든요. 좀 더 풍부하게. 그러자면 인력도 많이 써야 하고. 특히 시나리오 부문에서 인력이 보강되어서 좀 더 전문적으로 잘 만들고 싶거든요. 이런 것은 사실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하고요.”
탈북민의 이야기를 패션에 담아 판매하는 강지현 대표의 웹사이트(https://istory.ooo) 에 가면 젊은이들이 많이 입는 세련된 옷들이 미화 55달러 안팎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강 대표는 북한 주민들도 장사 등 사업에 관심이 많다며 “세계 경제 10대 강국인 한국에서 펼치는 탈북민의 사업과 도전이 주민들에게 시사하는 영향도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지현 대표] “결국 내부에서 본인들이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분들이 많이 깨어 있어야 하겠죠. 분명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보지만 이러한 기본적 자유를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잖아요. 먹고 싶은 것 먹고 입고 싶은 것 입고 말하고 싶은 것 말하는 이러한 기본적 자유 권리를 그 사람들이 안다면 충분히 변화할 것이라고 봅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