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에서 '북한 강제 실종: 사라진 사람들' 전시회가 열렸는데요. 이 전시회에서 의상과 서예 작품을 선보인 탈북민이 있었습니다. 현재 홍익대학교 섬유미술 패션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1학년 김현정 학생인데요.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탈북대학생 김현정 씨'의 이야기 전해 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의상 작품 설명음] “의상에 보시면 허리 쪽에 밧줄을 동여맸는데 이것은 우리 어머니가 중국에서 북송당할 당시에 끌려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밧줄을 동여맸고....”
탈북대학생 김현정 씨가 ‘북한 강제 실종: 사라진 사람들’ 전시회에 선보인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상 작품의 이름은 ‘엄마의 행방’인데요. 더 자세한 얘기 들어봅니다.
[녹취: 김현정 씨] “철사들을 이용해서 철조망처럼 연상했거든요. 이것은 한반도를 가로막고 있는 38선을 상상하면서 접목했어요. 의상에, 그래서 철사 하면 찔리면 아프고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의 가슴 아프고, 찔리면 아프고 약간 그런 마음을 담아서 의상에 접목했고 자유의 빛이 없는 북한 땅에 그 사람들의 마음도 표현하려고 어두운 원단을 사용했어요. 소재는 약간 데님도 비슷한데 가방 소재로 많이 쓰고 있어요. 두껍기 때문에 방수 재질도 있고 그래서 북한 하면 어둡고 발 들여놓기 힘들고 그런 나라잖아요. 그래서 두껍고 어둡고 침침하고 이런 원단을 사용했어요.”
어둡고 두꺼운 원단에 밧줄과 철사로 포인트를 줬고요. 팔과 치마 밑단에는 글자가 쓰여있습니다.
[녹취: 김현정 씨] “글자가 있는데 보시면 민족 통일, 밑에 자유 이렇게 쓰여 있는데 제가 예술가이긴 하지만, 또 예술가들이 예술로서 다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거를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서 글귀로 제가 다 보여주지 못하니까 그 사람들의 마음을 전해서 담아보려고 이렇게 했고 여기 또 찢어진 거를 이렇게 바늘로 기워서 만든 것도 있는데 이건 북한 사람들의 가난하고 슬프고 아픈 그런 마음 그것도 같이 연상해서 접목했습니다.”
김현정 씨는 현재 홍익대학교 1학년으로 누구보다 바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기말시험에 전시회 준비까지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그녀는 활력이 넘쳐 보였고요. 북한에서부터 미술을 참 좋아했다고 합니다.
[녹취: 김현정 씨] “기말 준비 때문에 기말 작품도 만들어야 하고 전시 작품도 만들어야 해서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한 5살, 6살 그때부터 이제 북한은 그 콘크리트 바닥이 별로 없단 말이에요. 땅바닥이 흙이니까 제가 앉기만 하면 그림을 그렸대요. 그래서 저희 아버지께서 너는 그림을 좋아하는구나, 하셔서 그때부터 좀 크면 그림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셔서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너무 행복했죠. 그리고 제가 재능이 있다고 해야 하나? 타고났다는 말을 좀 들어서 그림을 너무 좋아했었어요. 북한에서는 조선화, 한국에서는 한국화라고 하는데 약간 수채화랑 비슷한 거, 조선화랑 유화, 소묘 이렇게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중학교 시절부터 미술을 배워온 김현정 씨. 당연히 대학교 진학도 미술 쪽으로 생각했지만, 북한에서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녹취: 김현정 씨] “졸업할 때 나는 미술대학에 갈 거다. 그때 실력으로 평양미술대학에 갈 수 있는 조건이었는데 북한에서 미대에서는 탑인 평양미술대학에 가고 싶었죠. 근데 실력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북한에서는, 경제적인 것도 뒷받침돼야 하니까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만약에 대학에 갔으면, 우리 집은 너무나도 가난한 삶을 유지해야 할 것 같았고 그래서 꿈을 포기하고 학교를 졸업해서 직장에서도 설계사 같은 거 좀 하다가, 집에서 그림 그리고 중국에 수출하는 그림을 그렸었어요. 근데 그 그림을 그리다가 탈북하게 된 거죠. 근데 그것도 제가 탈북하겠다 해서 한 게 아니라, 제 뜻과는 상관없이 탈북하게 돼서 저의 꿈은 이룰 수 없었죠. 북한에서도.”
김현정 씨는 2019년 한국에 정착해, 그해 12월 하나원을 수료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탈북에 초기 정착이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녹취: 김현정 씨] “달라진 저의 삶에, 제가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서 엄마랑 같이 탈북하다가 엄마가 사고로 다시 넘어가셔서 그걸 받아들이는 시간이 꽤 길었었어요. 그래서 바로 홍익대에 가지 못하고 조금 공부하고 있다가 다시 꿈을 찾기 위해서 입시 준비를 했었어요. 그림 그리고 책도 좀 읽고 홍익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선배들한테도 많이 물어보고 그렇게 해서 면접 봤는데 그때 실제 실기로 보더라고요. 그래서 실기 그림을 그렸는데 어떻게 합격했더라고요. 저는 그냥 제 방식대로 한국 입시를 모르고 제가 그리던 대로 살려서 그렸던 것 같아요. 근데 받아주셨어요. 학교에서 감사하게도, 북한에서도 미술을 전공했다고 하니까 그걸 좀 높게 봐주신 것 같아요.”
북한에서부터 인정받았던 미술 실력을 홍익대학교에서도 알아봐 준 건데요. 김현정 씨는 우선 전공을 선택하기에 앞서서도 많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녹취: 김현정 씨] “저도 순수 회화과, 순수 미술하는 쪽으로 가고 싶었는데 근데 되게 배고픈 직업이다, 북한에서는 그림 그려서 팔면 중국에 수출하면 그래도 돈을 좀 많이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제가 금방 한국에 나와서 놀러 다니면서 월미도 이런 데 가면 사람들이 앉아서 막 그림 그리잖아요. 근데 그분들은 되게 실력도 괜찮은데, 길거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그려주고 돈을 받잖아요. 그게 너무 저는 같은 미술가로서 너무 배고픈 직업인 것 같다, 미술이 쉬운 것도 아닌데…. 그래서 그걸 한참 고민했었어요. 순수 회화과로 갈까? 아니면 다른 디자인 쪽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어렸을 때부터 되게 패션을 좋아했었거든요.”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북한에서는 이룰 수 없었기에 김현정 씨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됩니다.
[녹취: 김현정 씨] “보위부 이런 데 많이 잡혀가기도 했었고, 옷을 약간 북한은 되게 경직되고 정직한 옷 입어야 하고 주름 쫙 세워서 입어야 하고 그런데 저는 그런 패션이 너무 싫어서, 제가 리폼해서 입고 옷을 뜯어서 손바늘로 이렇게 거의 다 그렇게 입었거든요. 그래서 어머니가 옷을 그만 뜯으라고… 밖에 나가기만 하면 단속되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꾸미는 거 되게 좋아하고 이러다 보니까 디자인 쪽을 많이 생각해 보다가 패션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패션 디자인과, 그냥 패션이 아니라 또 홍익대는 섬유미술 패션디자인과 이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섬유도 공부할 수 있고 미술, 패션 이렇게 세 가지 공부할 수 있어서 지원하게 됐죠.”
그리고 벌써 1학년의 마무리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학교에 다니고 있는 그 소감은 어떨까요?
[녹취: 김현정 씨] “참 어려운 것 같아요. 홍익대가 워낙 손꼽히는 애들이 많이 오잖아요. 실력 있는 애들이 많이 오고 미적으로 감각이 좋은 애들이 다 모이는 곳이니까 북한에서 촌스럽게 자라던 애가, 갑자기 남한에 와서 이렇게 너무 넓은 걸 보고 많은걸, 새로운 걸 보니까 처음에는 이런 애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이렇게 멋있는 애들과 훌륭한 애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과 친구들 보면 정말 미적 감각이 말로 할 수 없이 정말 뛰어나거든요. 그래서 엄청 열심히 했어요. 열심히 했는데도 뭔가 잘 안 되는 것 같고 그래도 계속 색감 공부도 많이 하고 옷 되게 많이 찾아보고 매칭하는 거 많이 찾아보고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저도 미적으로 조금 성장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성적이 제가 기대했던 것만큼은 나오지 않았는데 그래도 장학금을 탈 수 있을 정도는 나와서 열심히 하다 보면 성장할 수 있구나, 목표를 이루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더 넓은 세상에서 자기 꿈을 펼치기 위해 현재 더 노력하는 것이 있다고 전했고요. 북한에 가 이루고 싶은 소망도 얘기했습니다.
[녹취: 김현정 씨] “졸업하면 어디 쪽으로 취업할까? 근데 지금 목표는 한 3학년쯤에 교환학생으로 가고 싶어서 영어도 공부하고 있고 교환학생 갔다가 졸업하면 해외 대학원도 가고 싶고 해외 쪽에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가고 싶은 데가 너무 많은데 그리고 또 개성공단 아시잖아요. 언젠가는 다시 설 거로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북한과 남한의 중심인 개성에, 개성공단이 있잖아요. 그래서 뭔가 저도 그 가운데서 역할을 잘 해내지 않을까? 통일을 준비할 때,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게 생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되게 많은 분야가 막 떠오르는데 아직 1학년이니까 좀 더 고민해 보고 할 것 같아요.”
더불어 김현정 씨는 탈북민으로서, 탈북 예술가로서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에 힘을 더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녹취: 김현정 씨]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북한 사람으로서 북한을 더 많이 알리고, 예술로서도 전달하고 싶고, 대학생 통일 동아리, 통일 관련돼서 활동 분야가 되게 많잖아요. 그런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더 합치고 싶고,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