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권재판소 “러시아 실종 북한 유학생 북송시 처형 위험…유럽인권협약 위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인권재판소(ECHR).

러시아에서 실종된 북한 유학생이 북송될 경우 고문이나 처형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고 유럽인권재판소가 지적했습니다. 이 유학생을 북한 관리들에게 넘긴 러시아 당국이 유럽인권협약을 위반했다고 판결했습니다. 안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19일 러시아가 자국에서 실종된 북한 유학생 S.K.를 북한 당국에 넘긴 사건과 관련해 유럽인권협약 2조 생명권과 3조 고문 금지, 5조 1항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위반했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습니다.

재판소는 특히 러시아 당국이 S.K.를 북한 관리들에게 넘김으로써 그가 고문이나 처형의 실질적인 위험에 처하게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소 보도자료] “In today’s Chamber judgment in the case the 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 held, unanimously, that there had been: In respect of S.K., a violation of Article 2 (right to life) and Article 3 (prohibition of torture) of the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and a violation of Article 5 § 1 (right to liberty and security).”

재판소에 따르면 북한 국적자 S.K.는 2019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연방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1년 후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망명을 신청하기로 결심한 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S.K.와 그의 지인은 북한 관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S.K.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한 비정부 기구인 인권연구소(IHR∙Institute for Human Rights)는 S.K.가 2020년 9월 10일 러시아 극동 지역 아티욤(Artyom)에서 경찰에 체포돼 러시아 연방 보안요원을 통해 북한 영사 직원에게 인계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소는 사형이나 고문,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을 받을 실질적인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그 사람을 그 나라로 추방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S.K.는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망명 신청에 대한 보복으로 처형이나 고문을 당할 위험이 매우 높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이런 상황은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의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며, 러시아 당국은 S.K.를 송환할 때 그가 직면할 위험을 조사하기 위해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IHR은 북한 당국이 S.K.를 북한으로 돌려보냈거나 영사관에 연락이 두절된 채로 억류했을 수 있고, 아니면 살해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재판소는 S.K.가 고문 또는 처형의 실질적인 위험에 처해 있고 러시아 당국이 북한 관리들에게 그를 인계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유럽인권협약 2조와 3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재판소 보도자료] “The Court reiterated that where there were substantial grounds to believe that an individual would face a real risk of capital punishment, torture, or inhuman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 in the destination country, the Contracting State had an obligation not to expel that person. S.K. faced an extremely high risk of the death penalty – commonly applied to returnees – and of torture – in reprisal for applying for asylum – if returned to the DPRK. This situation was confirmed by reports by reputable international organisations and was not disputed by the Government. No meaningful steps were taken by the Russian authorities to examine the risks for S.K. if returned. IHR submitted in that connection that as S.K. was missing, North Korean officials must have either returned him to North Korea, kept him incommunicado in the consulate or had him murdered. As S.K. would be at real risk of torture or death, and the Russian authorities were accountable for his transfer to the DPRK officials, there had been a violation of Articles 2 and 3 of the Convention.”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인권재판소(ECHR) 건물.

한편 재판소는 이날 러시아 영해에서 불법적으로 고기잡이를 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북한 국적자 K.J.와 C.C.가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도 판결했습니다.

재판소에 따르면 두 사람은 러시아 영해에서 불법 조업을 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019년 4월 각각 2년과 2년 1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20년 1월 석방된 K.J.는 북한으로 추방될 때까지 구금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최대 2년의 구금 기간이 지난 후 석방됐습니다.

C.C.는 2022년 2월 석방됐습니다.

K.J.와 C.C.는 각각 2022년 7월과 9월 러시아를 떠나 한국으로 출국했고 이후 서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재판소는 이들이 2022년부터 서울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처형 또는 학대를 당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 부분은 기각했습니다.

다만 재판소는 러시아 당국이 추방 보류 중인 K.J.의 구금을 검토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특히 시간이 지났음에도 추방이 현실적인지 여부를 평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해당 구금은 유럽인권협약 5조 1항(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과 5조 4항(구금의 적법성을 법원이 신속하게 결정할 권리)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소 보도자료] “As regards K.J.’s complaint, the Court observed that the Russian authorities took no steps to review his detention pending expulsion, in particular failing to assess whether expulsion had remained realistic, despite the passage of time. That detention had therefore exceeded what was reasonably required, in violation of Article 5 § 1. The Court had already found that foreign nationals who had been detained in Russia pending their expulsion were not able to have the reasons and lawfulness of their detention reviewed by the national courts. It could see no reason that that did not apply in this case, and so found a violation of Article 5 § 4.”

재판소는 러시아 당국은 S.K.에게 3만 유로(미화 약 3만 2천 500달러)을, K.J.에게 1만2천300 유로(미화 약 1만3천 300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는 유럽인권협약에 근거해 1959년 설립된 국제법원입니다.

러시아는 지난 1998년 유럽인권협약을 비준, 이 재판소의 판결에 따를 의무가 있었지만 지난 2022년 9월 당사국 지위를 상실했습니다.

재판소는 그러나 “러시아가 유럽인권협약 당사국 지위를 상실한 날인 2022년 9월 16일 이전에 협약 위반 혐의의 원인이 된 사실이 발생했으므로 이 사건을 처리할 관할권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재판소 보도자료] “The Court established that it had jurisdiction to deal with the case as the facts giving rise to the alleged violations of the Convention had taken place before 16 September 2022, the date on which Russia ceased to be a Party to the European Convention.”

VOA 뉴스 안준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