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크리에이터로 활동한 한 탈북 청년이 있습니다. 그래서 탈북민 유튜버 중에서도 1세대로 불리는 분인데요. 최근에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유튜브 크리에이터 탈북민 장명진 씨의 얘기 전해 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유튜브 현장음]
탈북민 장명진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북한남자 탱고>에서 ‘탈북자가 먹어보는 북한 음식’이라는 영상입니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어복쟁반 가게에 찾아가 직접 그 맛을 보는데요. 먼저 크리에이터 활동에 관한 자세한 얘기부터 들어봅니다. 탈북민 장명진 씨입니다.
[녹취: 장명진 씨] "저는 유튜브 채널 조그맣게 운영하고 있고요. 채널명은 <북한 남자 탱고>로 탈북민 중에서는 시조새죠. 제가 요즘 살쪄서 얼굴이 아쉽긴 한데 예전에는 대학교 후배가 제 얼굴 이미지가 볼 탱탱한 고양이 닮았다고 해서 ‘탱고’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몇 년 찍다 보니까, 처음에는 구독자를 위해서 좀 더 자극적인 방송 그런 여러 콘텐츠를 해봤는데 아무래도 계속하다 보니까 제가 좋아하고 편안한 거를 찍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먹방이나 일상, 남들 다 하는 그런 평범한 걸 찍고 편집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편안한 모습으로, 장명진이라는 사람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소소한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녹취: 장명진 씨] "처음에는, 제가 고향에 있을 때도 학교에 다니고 한국에서도 일반 학교 다녔거든요. 그래서 북한에도 수능 있는지 그리고 북한에도 중요한 과목이 뭔지 이렇게 진짜 궁금한 걸 올리다가, 궁금한 거 몇 개 떨어지니까 사람들이 결국 저를 궁금해하더라고요. 이제는 저도 30대 중반이잖아요. 제가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살아가는 모습, 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저도 고향에서 엄청나게 오래 살지 않아서 진짜 저도 북한을 모르잖아요. 그래서 저도 보고 배워서 알려드리고 해서 저는 구독자들이랑 소통하는 게 굉장히 재밌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장명진 씨는 1998년에 탈북해 이제 한국에 정착한 지 26년 차가 됐습니다. 이제는 한국에서 산 세월이 더 길어진 만큼 자기 고향은 서울시 양천구라고 말한다고 하는데요.
[녹취: 장명진 씨] "처음에 왔을 때는 좀 느꼈죠. 외래어도 많고 제 말투 때문에 차별도 당하고 음식도 예를 들어 제육볶음 같은 경우는 딱 봤을 때 되게 맵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되게 달고 해서 그런 크고 작은 어려운 점이 있었는데 결국은 사람 사는 것이 다 똑같고 제일 중요한 거는 저희가 같은 문화권이고 같은 언어를 쓰잖아요. 저는 몇 년 지나니까 솔직히 어디 가서 북한에서 왔다고 해서 한국이 다르다 아니면 이거 너무 낯선데 이런 게 거의 없었거든요. 저는 어디 가서 지금 물어보면 그냥 저는 목동 사람이라고 하거든요. 고향 어디세요? 하면 양천구 목동 살아요. 말투가 좀 이상한데? 하면 부모님이 경상도예요. 이렇게 넘어가거든요. 그래서 제가 지금 쭉 살면서 느끼는 거는 다른 게 없다,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명진 씨를 소개하는 수식어는 이 밖에도 다양합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뿐만 아니라 탈북 래퍼, 그리고 이제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요?
[녹취: 장명진 씨] "작년부터 시작했는데 스탠드업 코미디라고 요즘 만담꾼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실 되게 유명한 프로그램 나갔었는데 제가 음악에 관심 있어서 래퍼로 꿈이 있다고 나갔는데 거기서 결국은 개그맨으로 편집이 끝났거든요. 그래서 저를 북한 개그맨으로 아는 분들이 좀 계시는데, 이제 KBS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프로그램) 그걸 했었어요. 섭외되면서 뭔가 무대에서 마이크 하나로 관객이랑 호흡하고 또 제 이야기로 유머러스하게 전달하는 게 너무 짜릿한 경험인 거죠. 그때 그 무대 한 경험이 너무 좋아서 그때부터 막연하게 꿈을 꿨어요. 그런데 작년에 우연히 스탠드업 코미디 하는 동생이 형도 서면 좋겠다, 그런 기회가 생겨서 그때부터 대본 쓰고 연습해서 작년 가을부터 섰어요. 그래서 몇 개월 됐죠.”
그렇게 장명진 씨는 본격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는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첫 무대 관객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녹취: 장명진 씨] "첫 무대는 굉장히 임팩트가 있었던 게 소개를 호스트가 저보고 북한에서 왔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뭔가 언제 왔다, 이런 걸 빼고 북한에서 왔다니까, 관객들은 북한에서 어제 왔나? 봤는데 생각보다 제가 좀 통통하니까 잘 먹고 잘살았구나, 뭔가 그런 시선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북한에서 왔다는 걸로 되게 웃어주더라고요. 반응도 좋았고 해서 첫 무대는 굉장히 유쾌하고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던 게 생각나요. 제가 올라가서 안녕하십니까? 탈북민 누굽니다. 하니까 일단 안 믿는 거예요. 제 외모 보고, 그래서 이렇게 얘기하다가 북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요? 했는데 북한 대통령 얘기를 바로 하는 거예요. 그거는 예상했는데 갑자기 한국 전 대통령 이름이 나오면서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거예요. '네? 그 단어 맞아요?' 아예 예상하지도 못한 단어가 나와서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모두 6번 무대에 올랐고요. 장명진 씨는 뭐든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녹취: 장명진 씨] "올해는 딱 한 번 무대 했었거든요. 그래서 3월부터 다시 올라갈 예정입니다. 꾸준히 해야 합니다. 꾸준히 해야지 왜냐하면 무대에 또 한 2~3개월 안 섰다가 서니까 좀 어색하잖아요. 그래서 웬만하면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서서 관객의 반응도 보고 싶고 결국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건 제가 느끼기에는 사회 이슈를 가지고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거기서 또 많이 배우고 있거든요. 요즘 이게 유행하는구나, 요즘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이 있구나 그래서 많이 배우고 거기서 또 즉흥으로 대본을 짜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홀로 무대에 서서 마이크 하나만 들고 말로써 관객을 웃겨야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 장명진 씨는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녹취: 장명진 씨] "일단 화두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관객들이 바로 피드백, 호흡이 오잖아요. 영상 같은 경우는 올라가고 댓글 보고 알 수 있는데, 제가 예를 들어 휴지통, 창문 하면 바로 눈빛이나 반응이 오잖아요. 근데 최근에 이슈 되는 재미있고 민감한 주제를 딱 던졌을 때 바로 반응이 오거든요. 그걸 어떻게 풀어가느냐? 그래서 제가 봤을 때는 그 주제, 단어 하나가 필살기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 장명진 씨가 사람들 앞에 나서고 웃음을 주기까지 큰 계기가 됐던 무대가 있다고 합니다.
[녹취: 장명진 씨] "원래 좀 조용하고 수줍어 하는 성격이었는데 그게 한 번 깨진 경험이 있어요. 부끄러움이 많았었는데, 한 번 큰 무대 한번 섰었거든요. 되게 유명한 무대, 두만강에 한번 서 보니까 그보다 더 큰 무대는 없어서 그게 저한테는 가장 큰 임팩트 있는 무대가 아닌가....”
그래서 북한에서는 자신이 한국에서 래퍼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할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녹취: 장명진 씨] "전혀 상상 못 했죠. 왜냐하면 저희 아버지도 고향에 있을 때 평범한 군인이셨고 어머니 또한 평범한 사람이어서 예술가 집안도 아니라서 처음 한국 왔을 때는, 자기 꿈에, 자기 미래에 뭐 하고 싶은지 쓰잖아요. 중고등학교 때 저는 늘 쓴 게 회사원이었어요. 평범한 삶, 회사원. 개인적으로 느끼는 거는 대한민국 살면서 평범함이 굉장히 어려운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평범함이 비범이라고 그러잖아요. 늘 살면서 느끼는 거는 지금도 제일 큰 꿈이 평범하게 결혼하고 평범하게 애 낳고, 남들 사는 것만큼 사는 게 제일 힘들지 않나? 왜냐하면 아직 장가 못 갔거든요. 올해는 가야 하는데 아무튼 그래서 평범함이 제일 어렵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장명진 씨는 대본을 쓰고 카메라를 켭니다.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인데요.
[녹취: 장명진 씨] "돈을 많이 벌고 엄청난 명예를 가지고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요.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일 하잖아, 네가 좋아하는 무대에 서잖아, 그걸로 제가 에너지를 받거든요. 그래서 저한테는 지금은 70점 주고 싶습니다. 더 유명해져서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페이를 받으면서 ‘탈북민 1호 스탠드업 코미디언’ 이런 호칭이 있으면 너무 좋겠죠. 그런 수식어를 얻기 위해서 지금도 아까도 대본 쓰다 나왔고요. 계속 무대에 서고 싶어요. 건강 관리도 잘하고, 계속 무대에 서는 게 가장 큰 목표가 아닐지 생각합니다.”
더불어 탈북민은 어둡고 우울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는 장명진 씨는 자신의 활동으로 더 많은 사람이 웃을 수 있길 바랐습니다.
[녹취: 장명진 씨] "저도 그렇고 제 가족도 그렇고 제 친구, 제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더 나아가서 절 보는 동영상이 됐든 무대를 보는 사람이 더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웃고 사는 게 가장 최고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남이 웃으면 저도 즐겁고 또 제가 웃으면 또 앞에 있는 분들 즐거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웃음 주고 저도 웃음 받고 그런 삶 살고 싶어요.”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