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일본과의 접촉을 거부한 배경에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에 따른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일 정상회담이 절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는 일본 총리를 상대로 강공을 펴고 있다는 겁니다. 안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27일 “최근 김여정의 발언을 보면 북한과 일본 두 나라의 입장 차이는 좁힐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북한의 대일 접촉 거부와 관련한 VOA 서면 질의에 이같이 답하면서 “김여정의 발언은 북한은 일본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기시다 총리는 납북자 문제를 다루지 않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김정은은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재개할 의사나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 “Based on Kim Yo Jong's recent remarks, it would seem that the gap between those two positions was unbridgeable. Kishida could not possibly agree to a summit with Kim Jong Un that did not address this matter. And Kim Jong Un had no intention (or need) to reopen discussion of this matter, and did not do so.”
일본인 납치 문제를 논의하고 진전을 이루려면 북한의 동의가 필수인데, 북한은 이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양국 간 입장 차를 좁힐 수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26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발표한 담화에서 “일본 측과의 그 어떤 접촉도, 교섭도 외면하고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부부장은 일본인 납치 문제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변함 없는 입장을 문제 삼으면서 북일 정상회담은 자신들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북한은 (정치적 입지가) 약해진 일본 지도자를 이용해 도쿄와 워싱턴, 도쿄와 서울 사이에 균열을 일으키고, 대화 재개를 계기로 일본이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보상’이 무엇인지 탐색할 기회를 엿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노력의 실패를 한탄하지 않는다고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진단했습니다.
북한이 외교적,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겁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모스크바와의 관계는 견고하고, 석유를 포함한 러시아의 원조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중국은 평양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포함해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북한을 계속 지원할 것임을 명백히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두 나라가 북한을 옹호하고 보호할 준비가 돼 있으니, 북한은 자만심과 자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요즘 북한은 절박한 상황이나 궁지에 몰렸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겁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 “The DPRK is not lamenting the failure of this effort. (중략) The DPRK believes that it is in good diplomatic and strategic shape. Ties with Moscow are solid and Russian aid, including oil, is flowing. Beijing is working hard to maintain its influence in Pyongyang, and China has made clear that, like Russia, it will continue to support the DPRK in all possible ways, including at the UN Security Council. With two permanent members of the UN Security Council now prepared to defend and protect it, North Korea is feeling cocky and confident. (중략) These days, Pyongyang does not feel cornered or desperate.”
제임스 프르지스텁 허드슨연구소 일본 석좌는 이날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2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상회담에 관한 북한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북한은 납치 문제는 이미 해결된 문제이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일본의 우려는 주권에 대한 간섭이라고 주장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이 일관되게 유지해온 이런 입장을 유지한다면 북일 정상회담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김여정은 지난 2월 15일 발표한 담화에서 일본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문제삼지 않고 일본인 납치 문제를 양국 관계 전망의 ‘장애물’로 놓지 않는다면 기시다 총리가 평양을 방문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담화문을 발표했었습니다.
프르지스텁 석좌는 “북한이 계속해서 납치 문제는 해결된 문제라고 보고 그런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기시다 총리는 북한 정권과 어떤 종류의 정상 회담이나 어떤 종류의 경제적 지원에도 관여하기가 극도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로서는 정상회담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녹취: 프르지스텁 석좌] “They continue to assess that this is settled business and unless they move from that position, it'll be extremely difficult for Kishida to engage in any kind of summit meeting to engage in any kind of economic support for the North Korean regime. (중략) I think the summit is a very, very distant prospect at this point.”
북한이 정치적 위기에 내몰린 기시다 총리가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을지 보려고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 대사 대리는 이날 “평양은 기시다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매우 약화된 상태로, 그와 내각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김여정은 26일 발표한 담화에서 “사상 최저 수준의 지지율을 의식하고 있는 일본 총리의 정략적인 타산에 북일 관계가 이용 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랩슨 전 대사 대리는 “북한은 납북자와 비핵화, 제재 등 주요 사안에서 기시다 총리가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강공’을 펼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북한의 주요 목표는 (미한일) 세 동맹국∙파트너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랩슨 전 대사 대리] “Pyongyang recognizes Kishida’s very weakened political state (he and his cabinet’s polling numbers are near rock bottom) and is playing ‘hardball’ with him just to see how far he might go in compromising on key positions (eg., abductees, denuclearization, sanctions). Their primary objective here is to sow division between the 3 allies/partners. I don’t believe the regime is seriously interested in a summit, but if Kishida gives enough it’s possible they might do it. So the question then becomes how badly does Kishida need/want this…especially for the abductee issue? I don’t think he will compromise to that degree, so a summit very unlikely to happen. But stay tuned, you never know.”
랩슨 전 대사 대리는 “북한이 정상회담에 진지하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면서도 “기시다 총리가 충분한 것을 제공한다면 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렇다면 문제는 기시다 총리가 얼마나 절실히, 특히 납북자 문제를 위해 정상회담을 필요로 하고, 원하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지만 기시다 총리가 그 정도까지 타협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그래서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혹시 모르니 상황을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태평양 사령관을 역임한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 대사는 이날 VOA에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해리스 전 대사는 “어떤 대화라도 아예 대화를 않는 것보다는 낫다”면서도 “이상은 현실에 의해 절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과 어떤 식으로든 대화를 하는 것이 낫지만,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만 좇으면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해리스 전 대사] “Anything is possible regarding having a summit. Any dialogue is better than no dialogue. But idealism must be tempered by realism.”
현재로서는 북한이 일본과의 정상회담이나 접촉에 응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북한이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와 세네갈 주재 미국 대사 등을 역임한 제임스 줌월트 미국 사사카와 평화재단 CEO는 이날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태도가 바뀌기 전까지는 북한과 일본 사이에 진지한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진단했습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는 북한의 사정이 과거보다 호전됐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줌월트 CEO는 “북한이 러시아와 활발히 경제 교류를 하고 있고, 중국이 유엔에서 북한을 옹호하려는 의지가 더 강해졌기 때문에 북한의 상황은 확실히 이전보다 나아졌다”면서 “북한의 외교 상황이 3~4년 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줌월트 CEO] “I think the situation for North Korea certainly looks better than it did previously, because North Korea is engaged in robust economic exchanges with Russia, and China is less willing, or I should say more willing to defend North Korea at United Nations. So I agree, the diplomatic situation for North Korea is stronger than it was, say, three or four years ago.”
줌월트 CEO는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유엔 제재 해제를 원하고 있다고 확신한다”며 “그것은 여전히 미국과 일본이 갖고 있는 하나의 수단이지만 현재 북한은 그 주제에 대해 대화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줌월트 CEO] “I'm sure in North Korea still desires the lifting of UN sanctions. That's still a tool that the United States and Japan has, but at this moment, North Korea is not willing to engage in talks about that topic. So we have to be patient, I think. (중략) There are things that North Korea needs from the world, so I'm still hopeful that ultimately North Korea will agree to enter into talks because it desires to see a lifting of UN sanctions.”
줌월트 CEO는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다”며 “따라서 북한이 유엔 제재 해제를 원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대화에 응할 것으로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안준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