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 뉴스] 재미 이산가족상봉 추진…미국 정부·의회도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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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A 이산가족 특별기획입니다. 오늘 두 번째 순서는 미국 내 이산가족 상봉 추진 운동을 주도한 선구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상편집: 조명수)

VOA 이산가족 특별기획입니다. 오늘 두 번째 순서는 미국 내 이산가족 상봉 추진 운동을 주도한 선구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상편집: 조명수)

1990년대 중반.

미국 중서부 시카고 근교 한인 밀집 지역 알바니 파크의 한 도서관에서 한인 이산가족의 존재를 알리며 정부를 상대로 상봉 캠페인을 펼치는 풀뿌리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이곳의 도서관장으로 부임했던 이차희 씨가 정부 기금을 받아 한국 관련 시청각 교재들을 대거 배치하자 많은 한인들이 몰렸고, 그중에 다수가 이산가족이었습니다.

이차희 / 재미 이산가족상봉 추진위원회 사무총장
“제가 도서관에서 본 노인들이 저의 손을 잡고 (상봉을 도와 달라고) 관장님만 믿습니다. 우시던 그 노인들이 생각났습니다. 아, 우리 아버지도 이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구나.”

이 씨는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들을 보면서 자신이 직접 미국 주류사회의 문을 두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차희 / 재미 이산가족상봉 추진위원회 사무총장
“우선 미국 주류사회와 일을 시작하려니까 이산가족의 숫자가 필요했습니다. 그 다큐먼트가(자료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산가족들 열다섯 명을 모아서... 각 주를 대강 한인 인구를 파악해서 저희들이 적어도 (이산가족이) 10만 명, 이건 상당히 보수적인 숫자였습니다.”

이 씨는 확보한 자료를 들고 자신들을 도와줄 정치인을 찾다가 2000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처음 도전한 공화당의 마크 커크 후보를 만났습니다.

커크 후보는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고, 당선 뒤 이산가족들을 워싱턴으로 초청해 2001년 국무부 청사에서 고위 관리들과의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그해 11월 하원, 그리고 이듬해 2월 상원에서 이산가족 상봉 결의안이 미국 의회 사상 처음으로 채택됐습니다.

그리고 2007년.

미국 하원에서 한인 이산가족들의 직접 상봉을 지지하는 의원들의 첫 모임인 미국 하원 한인 이산가족위원회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이어 미국 상·하원은 2008년 12월 이산가족상봉법안을 국방수권법안에 포함시켜 처음으로 채택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듬해 1월 이 법안에 서명을 했습니다.

1976년 미국에 정착한 94세의 최창준 재미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 남가주 회장은 이런 추진 과정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83년 한인을 위한 KBC TV를 설립한 뒤 한국 KBS의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본 뒤 이산가족 상봉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결심하고, 이후 어렵게 20여 명의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최창준 / 재미 이산가족상봉 추진위원회 남가주 회장
“그 당시만 하더라도 자기 가족이 영상으로 녹화돼 가지고 나가면 자기 가족이 혹시 이북에서 피해를 받지 않겠는가. 그런 것 때문에. 그렇고 ‘지금 만날 수도 없는데 그거 해야 뭘 하느냐’ 이런 면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최 회장은 또 미국 의회에 이산가족 상봉 결의안과 법안이 상정되자 2006년부터 지역 의원들에게 지지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고 민간단체의 샘소리 측과 영상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에 나섰습니다.

KBC-TV 이산가족 기자회견
“이렇게 미국 정부가 밀어주시고 그러면 만날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서 희망을 걸고 기다리겠습니다.”

이런 선구자들의 노력과 미국 의회의 지원으로 미북 이산가족 상봉은 2011년 거의 성사 단계까지 갔었습니다.

당시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평양과 뉴욕에서 각각 만난 뒤 미북 이산가족 상봉 시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하고 미국 적십자사를 통해 논의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양측간에 여러 이견으로 협상이 길어지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그해 12월에 사망하면서 모든 대화와 접촉은 중단됐습니다.

이후 킹 전 특사를 도와 미북 이산가족 상봉 협상에 관여했던 줄리 터너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지난해 취임했습니다.

터너 특사는 미북 이산가족 상봉이 자신의 5대 주요 목표 중 하나라고 밝히고 이차희 총장과 최창준 회장은 물론, LA, 시카고, 뉴욕 등을 방문해 거동이 불편한 이산가족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줄리 터너 /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이분들은 평생 이산의 아픔을 겪으며 오랫동안 많은 것을 견뎌왔습니다. 미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상봉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절실함을 진정으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해리스폴이 지난해 1월 미국 성인 2천 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미국인의 66%가 미주 한인 이산가족과 북한 내 가족과의 상봉을 위한 미북 협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