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중요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물 아메리카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 이디스 워튼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느 비평가는 이디스 워튼을 스스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self-made man이라 불렀습니다. 이디스 자신도 그런 표현을 좋아했습니다. 다른 비평가들은 그녀를 뉴욕이 만들어 낸 인물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러나 이디스 워튼이 뉴욕에 대해 썼을 때의 그곳은 후대의 사람들이 살던 때와는 너무나 다른 세계였습니다.
이디스 워튼은 1862년 뉴욕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의 뉴욕은 여러 개의 도시로 형성돼 있었습니다. 어떤 뉴욕은 생존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을 할 필요가 없이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또 다른 뉴욕이 있었습니다. 이디스 워튼은 부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올바른 부유층 뉴욕과 부당한 부유층 뉴욕이 있었습니다. 부자들 중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스스로 돈을 번 새로운 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디스의 가문은 옛날 재산을 가진 올바른 부자 집안이었습니다. 그런 집안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 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 살아갈 아이디어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디스 워튼은 그런 집안 출신인데 스스로를 창조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디스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는 학교가 아니라 개인 교사를 통해 공부했습니다. 이디스 집안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건 자신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경제적 기회에 어떤 큰 변화가 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바로 이디스가 앞으로의 인생에서 모두 부딪혀야 했던 것들이었습니다.
그 시대 여성들이 흔히 하던 대로 이디스 워튼도 소설을 썼습니다. 미국에서는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자 엄청난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농업이 주 산업이었던 나라가 공업국이 됐습니다. 기업가들과 노동자들이 갈수록 정치적, 경제적 힘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디스 워튼은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그런 변화를 볼수 있었습니다. 이디스는 그런 변화를 거부했습니다. 그녀에게는 구 아메리카가 신 아메리카의 희생자로 느껴졌습니다. 이디스는 돈의 새로운 가치가 가정의 오랜 가치를 밀어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885년 이디스는 에드워드 워튼과 결혼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28년 동안 같이 살면서도 사랑의 감정은 없었습니다. 1913년 이디스는 결혼생활을 끝내려고 했습니다. 한 문학 비평가는 이디스가 오랫동안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은 그녀가 가정이라는 통념과 전통 때문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어떤 분석가는 이디스 워튼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런 사회적 계층 사람들이 너무 재미가 없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었다고 보았습니다. 다른 분석가는 남편이 병이 들자 이디스 자신이 무언가 할 일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디스 워튼은 어릴 적부터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그에게 사회적 신분의 제한을 벗어나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글 쓰는 일은 이디스가 한 여러 가지 일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이디스는 다른 일도 잘했습니다. 디자인도 잘했고 정원 조성도 잘했습니다. 자신이 사는 집도 스스로 설계했습니다.
이디스는 국제적인 사회생활을 해보았고, 많은 양의 서적도 수집했습니다. 그녀는 일생 중 여러 분야에 걸쳐 50권의 책도 출판했습니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디스 워튼이 자신의 사회 계층에 관한 글을 썼어야 했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스스로를 바꾸어야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지적인 사고만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교육과 전통이 그걸 불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디스 워튼의 소설 주제는 정직하지 못한 세계에서의 순수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됐습니다. 이디스가 소설에 자신의 이야기를 반영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시까지 숨겨져 있던 순수한 감정들을 진솔하게 이야기 할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디스 워튼은 또한 악의 세계를 느낀 초기의 미국 여성 작가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워튼은 “삶이란, 죽음을 빼놓고는, 가장 슬픈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워튼은 소설 쓰기 말고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워튼은 건축가이자 실내장식 전문가인 옥덴 카드먼(Ogden Codman)과 함께 ‘가옥의 장식(The Decoration of Houses)’이라는 책도 펴냈습니다. 이 책은 대단히 성공적인 데코레이션 안내서였습니다. 또한 거의 동시에 워튼의 시와 소설이 스크리브너스 잡지(Scribner's Magazine)에 의해 출판되기 시작했습니다.
1899년에는 단편집 The Greater Inclination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즉각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워튼이 런던에 갔을 때 어느 서점에 그 책이 있었습니다. 워튼의 얼굴을 알리가 없는 책방 주인은 작가에게 책을 보여주며, “지금 이곳 런던에서는 모든 사람이 이 책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그녀의 첫 장편 ‘사랑의 결단(The Valley of Decision)’이 나왔습니다. 또 3년 후에는 ‘기쁨의 집(The House of Mirth)’이 출판됐습니다. 이 책은 출판된 지 열흘 만에 10만 부를 돌파할 만큼 크게 인기를 모은 그녀의 첫 장편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상류사회의 위치를 유지하고 싶으나 돈이 없는 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워튼의 여러 소설이 그렇듯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그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극복하려고 싸운 것도 아닌 다른 힘에 의해 패배를 당한 희생자였 습니다.
워튼 최고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같은 아이디어가 주제가 됐습니다. 뉴욕의 오랜 가문들은 신흥 부호 가문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시대였습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그들보다 훨씬 강한 사회적 힘과 희망 없는 투쟁을 해야만 했습니다. 또 자기들과는 다른 행동과 도덕률을 가진 자들과 겨루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워튼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인 “이썬 프롬“ (Ethan Frome)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911년에 나온 이 소설은 다른 작품과 달리 배경을 미 동북부 지방 매사츄세츠의 한 농장에 두고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얽매어 살다 결국 그 전통 때문에 파멸 당하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사회의 희생자였습니다.
1913년 워튼의 결혼은 파탄을 맞았습니다. 그녀가 역시 좋은 평판을 받은 소설 The Custom of the Country를 출판한 것도 그해였습니다. 이 소설은 19세기말, 한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새로운 부가 미치는 영향을 묘사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1913년 이후 이디스 워튼의 작품은 그전 작품만 못하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녀가 글을 제대로 쓰려면 결혼 생활이 고통스러워야 했던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녀의 뛰어난 작품들은 대부분 엄청난 개인적 위기를 겪고 있을 때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결혼 생활이 끝난 후 그녀의 글은 전처럼 날카로운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1920년 워튼은 “순수의 시대” (The Age of Innocence)를 내놓았습니다. 많은 문학 비평가들은 이 소설이야말로 그녀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구체제와 역동적인 신체제의 대립으로 갈등을 겪는 뉴욕의 사회적 구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젊은 남녀들은 개인의 감정을 억압하는 세계에서 욕망에 충실한 행복과 사회적 의무를 놓고 갈등하며 몰락해갑니다. 정신으로 시대를 앞서갔으나 현실과 타협한 사람, 사회의 요구에서 벗어난 현실을 살았으나 완벽히 자유롭지 못했던 사람, 규범과 울타리 안에 안주하고 다른 삶을 꿈꾸지도 않았던 사람 등 뚜렷하게 대비되는 인물들이 펼치는 삼각관계의 로맨스가 펼쳐집니다. 워튼은 이 소설로 미국 최고 작가의 명예인 퓰리처 상을 받았습니다.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를 ‘역대 최고의 명저 100’선으로 꼽았고, 모던라이브러리는 ‘20세기 100대 영문학’으로 선정했습니다. 1913년에는 순수의 시대가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그녀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디스 워튼은 생애 마지막 시기를 예술가, 사상가, 외교과관들과 많은 교류를 하며 지냈습니다. 그 중에는 작가인 헨리 제임스도 있었습니다. 워튼은 제임스를 작가이자 남성으로 좋아했습니다. 워튼은 자신의 차에 제임스를 태우고 자주 단거리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 제임스는 출판사가 자신의 장편 단편 소설들을 모두 출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워튼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출판사는 제임스의 작품집으로는 손해를 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자 워튼은 출판사에 편지를 써 자신이 몰래 비용을 댈 테니 제임스의 책을 출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930년 American National Institute of Arts and Letters, 미국 예술문학 연구소는 워튼에게 영예의 금메달을 수여했습니다. 여성으로서는 첫 수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 이디스 워튼은 자신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 뒤돌아 보기라는 의미의 “A Backward Glance”를 썼습니다.
이디스 워튼은 1937년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프랑스의 한 저택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향년 75세였습니다. 인물 아메리카 이 시간에는 미국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작가 이디스 워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