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중요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물 아메리카 시간입니다. 노시창입니다. 이 시간에는 미국 영화와 드라마 무대의 여걸로 불리웠던 메이 웨스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메이 웨스트는 헐리우드의 여배우였습니다. 웨스트는 작가이며, 영화 제작자이기도 했고, 성공적인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성적인 매력과 그녀의 예술은 자유분방했고, 그녀의 사고방식은 자주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메이 웨스트는 폭소를 자아내는 우스갯소리를 잘해 미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메이 웨스트는 189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존 웨스트는 여러가지 직업을 전전하는 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마틸다였습니다. 마틸다는 딸을 연예인으로 만드는데 많은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메이는 이린 시절 지역의 연극단에 들어가 아역 배우가 됐습니다. 1907년 메이는 전국을 순회하는 보드빌 공연단에 소속돼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습니다. 보드빌은 코미디, 노래, 춤 등을 혼합한 쇼 프로그램으로 1900년대 초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메이 웨스트는 18살이 가까워지던 무렵부터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출연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이는 “헬로 파리”, “알라 브로드웨이” 등 여러 뮤지컬 쇼에 출연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15년 동안 메이는 브로드웨이와 보드빌에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었습니다.
1920년대 중반 메이 웨스트는 자신의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대본을 쓰고, 연기도 직접 했습니다. 메이는 이때부터 성을 주제로 한 코메디를 창작해 냈으며, 그것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메이를 어려움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메이의 첫 브로드웨이 드라마의 제목은 ‘SEX’였습니다.
이 작품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공연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뉴욕시 경찰이 그 드라마가 비도덕적이라며 메이를 일주일 이상 감옥에 가두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메이 웨스트는 이 사건이 자기를 전국적인 유명인으로 만들어 줄 것으로 알고 있었고 곧 그렇게 됐습니다. 감옥에 갔다 왔다고 해서 웨스트의 작품 제작이나 성을 주제로 한 내용으로 인한 논란을 잠재울 수는 없었습니다. 메이 웨스트는 오히려 감옥 생활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메이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을 살리는 요소들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메이 웨스트는 여러 종류의 극본을 썼습니다. 그녀의 유머는 성적인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내용은 항상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녀의 언어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지적이었습니다. 메이는 자신의 성적 요소를 과장되게 표현해 사람들을 웃겼습니다. 또 언제나 젊고 강한 여성의 역할을 자신이 맡았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자신이 가장 주된 역이어야 했습니다. 메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스타로 알고, 드라마의 총지휘자라는 것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녀의 희곡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로 “다이아몬드 릴”이 있었습니다. 웨이는 대본을 쓰면서 이 작품이 폭 넓은 층으로부터 인기를 끌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웨이는 뉴욕시의 보워리(Bowery) 라는 유명한 곳에서 이 작품을 공연했습니다.
관중들은 이 지역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메이는 이곳의 19세기를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메이는 그 시대 복장이 자신의 큰 키와 매력적인 체형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나이 든 관중들이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을 좋아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여성 관객들은 그녀의 화려한 의상을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젊은 층은 배우들의 동작과 섹시 스타일을 좋아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웨스트는 쌀롱에서 일하는 가수 릴 역을 자신이 맡았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가수 릴은 몸에 찰싹 달라붙고 빛이 나는 드레스를 입고 쌀롱 안을 돌아다녔습니다. 릴의 머리는 빛 나는 노랑머리로 출렁거렸습니다. 그녀는 커다란 모자를 쓰고 다이아몬드 보석을 끼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애인도 많았고, 접근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 작품은 큰 히트를 쳤습니다. 이 연극은 브로드웨이에서 무려 3백 회도 넘게 공연됐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릴은 메이 웨스트가 맡은 배역 중 가장 대표적인 존재였습니다. 그 역은 메이가 일생 동안 여러 차례 반복해 맡은 배역이 됐습니다. 다이애나 닐은 메이가 제작한 여러 작품에 그 자신이 역을 맡은 주인공이기도 했지만 그의 실제 삶도 그와 같았습니다.
1929년 미국에서 주식시장이 붕괴했을 때 메이 웨스트도 어려운 시기를 맞았습니다. 금심했던 경제공황 속에서 계속 문을 열수 있는 극장은 많지 않았습니다. 웨스트는 자기 작품의 주제를 놓고 벌어진 법적 싸움에도 말려들었습니다. 그의 최신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품도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930년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웨스트는 변화를 시도해야 했습니다.
1932년 메이 웨스트는 영화로 진출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헐리우드로 갔습니다. 그녀의 첫 출연 작품은 “Night After Night” ‘밤이면 밤마다’ 였습니다. 메이는 처음 자신이 맡은 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 출연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프로듀서는 메이에게 이야기를 수정해도 좋다고 허락했습니다. 메이는 그것을 특별한 유머와 기쁨이 있는 내용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영화 “She Done Him Wrong”에 출연했습니다. 이 영화는 성공한 연극 다이아몬드 릴을 각색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영화로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영화의 윤리성을 감독하는 헤이즈 오피스는 여러 편의 웨스트 작품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영화를 만들려면 작품의 제목과 출연 인물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메이 웨스트는 머리를 써서 성적인 표현들을 헤이즈 오피스가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직설적인 성적인 언어보다는 돌려서 뜻을 전하는 유머로 바꾸는 식입니다.
노-이 영화에서는 캐리 그랜트가 메이 웨스트의 사랑의 상대인 캡틴 커밍스의 역을 맡았습니다. 캐리 그랜트에게는 이 영화가 그의 초기 출연 작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랜트는 그후 헐리우드의 대 스타로 부상했습니다. 영화에서 캡틴 커밍스의 애인 레이디 로우의 역을 한 메이 웨스트가 한 대사는 유명한 말이 됐습니다. 레이디 로우가 캡틴 커밍스를 유혹하는 장면입니다.
LADY LOU: "You know, I always did like a man in a uniform. That one fits you grand. Why don't you come up sometime and see me…I'm home every evening."
CAPTAIN CUMMINGS: I'm busy every evening.
LADY LOU: "Busy? So what are you trying to do, insult me?"
CAPTAIN CUMMINGS: "Why no! Not at all. I'm just busy, that's all. You see, we're holding meetings in Jacobsen's Hall every evening. Anytime you have a moment to spare, I'd be glad to have you drop in. You're more than welcome."
LADY LOU: "I heard you. But you ain't kidding me any. You know, I've met your kind before. Why don't you come up sometime, huh?"
CAPTAIN CUMMINGS: "Well, I…"
LADY LOU: "Don't be afraid, I won't tell. Come up, I'll tell your fortune."
이 영화는 대성공이었습니다. "Why don't you come up and see me sometime" 시간되면 날 보러 와, 이 말은 미국 영화계 사상 가장 유명한 유행어가 됐습니다. 한때 메이 웨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보수를 많이 받는 연예인이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녀의 영화가 재정난으로 망해가려던 파라마운트 영화사를 살렸다고 말했습니다. 거의 전 세계의 영화 팬들은 왈가닥인 메이 웨스트를 사랑하거나 미워했습니다. 중간은 없었습니다.
메이 웨스트는 그 다음에 나온 영화 “나는 천사가 아니야 I'm No Angel"도 각본을 직접 쓰고 출연도 했습니다. 웨스트의 역은 써커스 스타였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주인공은 남자를 미치게 했습니다. 영화는 나오자마자 당시까지의 어떤 영화보다 많은 관객수를 모았고, 입장료 수입도 많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메이 웨스트가 부르는 주제가입니다.
(MUSIC: "I'm No Angel")
1930년대와 40년대, 메이 웨스트는 영화 제작을 거듭했고, 그러는 동안 문제도 많았습니다. 영화 비평가들은 이 시기가 메이 웨스트에게는 전성기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주로 앞서의 것들을 재탕한 것이 많았습니다. 영화 출연 요청이 있을 때면, 나이 많거나 연약한 여성의 역은 거절했습니다. 메이 웨스트는 그러면서도 연극 무대에 섰고, 책을 썼으며, 텔레비젼에도 출연했습니다.
나이 85세가 됐을 때 메이 웨스트는 "Sextette” 라는 뮤지컬 코메디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여기에서도 그녀는 남자들이 거부하지 못하는 섹시한 여인상을 연기했습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높이 치지 않았지만 또 다른 비평가들은 그녀가 영화 속에서 나이에 굴복하지 않는 정신을 보여준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메이 웨스트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택에서 87세로 타계했습니다.
메이 웨스트는 미국 영화와 드라마 역사에서 가장 이름 높고 진보적인 여배우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녀는 노랑머리와 예쁜 목소리, 날씬한 몸매로 새로운 스타일의 헐리우드 스타가 됐습니다. 그녀의 독립적이고 유머러스하며 섹시한 스타일은 오늘날에도 연기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헐리우드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 여배우 메이 웨스트를 소개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