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의 세상보기] 탈북민 이지혜 작가 특별전시 ‘철책 넘어 지상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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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지상락원’이라고 불러야 했던 곳을 떠나, 자신의 진정한 지상락원을 찾아가는 작가의 여정을 담은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북한 평안남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탈북민 이지혜 씨의 작품이 선보여지고 있는 건데요.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열리는 탈북민 이지혜 작가의 전시 ‘철책 넘어 지상락원’ 현장으로 안내해 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관람객이 ‘철책 넘어 지상락원’ 전시 작품 가운데 ‘인민의 소원’을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 하늘에서 핫팩 비가 내리고 한집에 굴뚝이 여러 개가 있는 것이 인상적인데요.
남북통합문화센터 박근희 연구원은 ‘인민의 소원’이라는 작품을 보고 탈북민 이지혜 작가를 섭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녹취: 박근희 연구원] "우연히 작가님의 포트폴리오에서 ‘인민의 소원’이라는 연작을 보고 굉장히 감명받았는데요. 작가님의 특징이라고 한다고 하면 어떻게 보면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인데 그것을 굉장히 밝은 색채 그리고 화사한 색채로 담아내어서 이런 충돌이라고 할까요? 무거운 주제와 밝은 표현법 이런 충돌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요. 이런 것들이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전시된다면 관람객분들도 편안하게 보시는 동시에 하지만 이것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하고 인상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섭외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특별 전시의 주제는 ‘철책 넘어 지상락원’입니다. 이 전시에서 지상락원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녹취: 박근희 연구원] "남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하는 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북한 당국은 본인들이 사회주의 지상락원이라는 말을 많이 쓰죠. 그래서 이 지상락원이라는 표현 자체가 북한 당국이 많이 쓰는 표현인데요. 이분이 살아간 그 현실은 지상락원이 사실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북한에서 스스로 칭하는 이 지상락원이 어떤 곳인지를 파헤치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지상락원을 철책을 넘어서 찾으러 나온 이지혜 작가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시 작품은 같은 주제를 가진 것과 유사한 주제로 보이는 작품들을 묶어 구성했고요. 크게 4개의 소주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녹취: 박근희 연구원] "우선 ‘북한 주민의 고통과 소망’이라는 전시 주제이고요. 보시면 ‘인민의 소원’이라는 작품을 포함해서 (북한) 주민들의 일반적인 소망이 무엇인지를 담고 있는 거죠. 사실 이런 옥수수 비가 내리는 건 옥수수와 같은 식량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인 동시에 그런 게 하늘에서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담고 있잖아요. 그래서 ‘(북한 주민의) 고통과 소망’의 섹션으로 구성했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분단의 아픔’이라는 소주제로 분단으로 인해 생긴 고통을 다룬 작품들이 선보여지고 있고요. 이어 그녀의 한국 정착기를 다룬 작품들이 걸려 있습니다.

[녹취: 박근희 연구원] "‘남한 정착기’ 작품들은 사실 지상락원을 찾아서 탈북하긴 했지만, 이곳도 사실 쉽지 않잖아요. 전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또 삶의 터전을 꾸려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정착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들 그리고 혼란스러웠던 것들도 함께 담아보자고 해서 이렇게 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라는 소주제가 있는데요. 북한 주민들이 록(rock)을 한다든지 재기발랄한 모습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이 나중에 통일 대한민국에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모습의 작품을 주로 담았습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기존 작품과 함께 전시를 준비하며 그린 신작까지 모두 20점이 선보여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 작가는 작품 가운데 ‘인민의 소원’이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는데요.

[녹취: 이지혜 작가] "제가 어릴 때 북한에는 사실 흙 도로잖아요. 근데 그냥 흙 도로가 아니에요. 다져지지 않아서 비 오거나 장마철 이럴 때 자전거 바퀴 굴러가도 다 이렇게 묻고, 걸어가도 빠지고 그러거든요. 장마철에 바퀴가 굴러가지 않다 보니까 장사를 못 나가요. 북한에서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을 식량밖에 못 사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장마철 같은 경우 장사 못 나가면 굶어요. 가족이, 그래서 어린 마음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창문 밖 내다보면서 저 비가 먹을 거였으면 좋겠다. 옥수수가 툭툭 떨어졌으면 좋겠다. 근데 엄마나 아빠나 하늘에서 돈이나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 이런 농담 하잖아요. 그렇게 상상했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시골에 어쩌다 한 번씩 가보면 가을철 지났는데도 막 옥수수 이렇게 다 달려서 썩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 거 보면서 그런 것들이 북한에 비처럼 쏟아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바람으로 옥수수 작품 처음에 그리게 됐고…”

그다음부터 자신의 소망과 북한 주민의 소망을 담은 작품 ‘인민의 소원’을 시리즈로 제작했습니다.

[녹취: 이지혜 작가] "아이스크림도 진짜 사 먹기 힘들거든요. 여기 오니까 막 천 원짜리 그냥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는 환경인데 북한에서 반 친구들이 한 40명 정도 됐었거든요. 근데 그 여름에 더울 때 아이스크림 사 먹는 친구들이 한두 명밖에 안 돼요. 그러면 이렇게 한 명 주변에 쫙 이렇게 삥 둘러서 ‘나 한 빨 만, 나 한 빨 만’ 막 친구들이 그래요. 한입만인데 북한에서 그게 사투리가 한 빨 만… 그런 것들 생각나서 그려봤고…”

그래서 이 작품에는 하늘에서 옥수수 비가 내리고 아이스크림과 알약, 핫 팩이 떨어집니다. 북한의 인권 상황을 이 작가만의 재기발랄한 표현으로 그려낸 건데요. 요즘 또 하나 그리고 있는 작품이 있다고 합니다.

[녹취: 이지혜 작가] "저희 형제가 많았어요. 그래서 동생들 보면 아기 때 계속 우는 거예요. 근데 여기 와서 보니까 그럴 때 쪽쪽이 물려주니까 바로 빨다가 자는 거예요. 근데 북한에 쪽쪽이도 없거든요. 그래서 그것도 이렇게 쪽쪽이 비 지금 그리고 있는데 진짜 여러 가지로 사소한 것들 여기서는 진짜 별치(별다르지) 않고 그렇게 별로 소중한 것 같지 않은데 북한에서는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귀하고 그런 것들이 많아서 그걸 시리즈 작품으로 하면 너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해서 진짜 제 평생소원 이렇게 했었는데 이게 또 거기(북한)에 사는 분들도 소원이 있거든요.”

더불어 박근희 연구원은 이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 가운데 ‘자유’라는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녹취: 박근희 연구원] "이쪽 벽면에 게시된 작품들은 다 동물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봤을 때는 동물을 되게 귀여운 배경에 밝은 색채에 그려두셨네, 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지금 이 ‘자유’라는 작품도 고양이 한 마리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잖아요. 사실 그림만 봤을 때는 굉장히 하늘도 예쁘고 고양이도 귀엽고 이런 작품인데요. 보면 벽면이 다 찢어져 있어요. 벽면을 고양이가 할퀸 형태를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이 고양이가 굉장히 아름다워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들로 치장하지만, 자유를 갈망하면서 사실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작가님의 대표적인 특징이, 밝은 색채를 쓰면서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가오게 했다는 것에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동물 시리즈도 작가님께 의미가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작품에 담긴 마음이 관객에게 진실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다가가길 기대한다고 말했고요. 이 작가 또한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고 그대로 느끼길 바랐습니다.

[녹취: 이지혜 작가] "제가 얘기를 안 해도 다른 분들이 너무 잘 봐주셔서 그냥 있는 그대로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 약간 탈북민이다, 이렇게 하면 소수의 분이 다르게 보려고 하는데 저도 여기 와서 보니까 그냥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다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이 있는 것 같아요.”

끝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북한 주민의 어려움, 꿈과 소망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는 관객의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녹취: 양민화 씨] "어렴풋이 북한은 살기 어렵고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림으로 묘사해 놓은 걸 보니까 좀 가슴 아프다, 자유가 없는 게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진짜 별거 아니잖아요. 옥수수, 아이스크림 뭐 이런 게 하늘에서 떨어졌으면 좋겠다. 추워서 핫 팩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런 것들을 묘사하는 것들이 정말 우리한텐 별거 아닌 물건들이 어떻게 보면 소원이라는 그림으로 묘사된 게 와닿았습니다. 단순히 북한에 대한 전시보다 좀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요.”

[녹취: 나상욱 씨] "사실 좀 충격을 받았어요. 특히 이 그림이 많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탈북하신 다음에 여기 사시는데 하루 종일 자유로우니까 그냥 앉아 있었대요. 근데 아무도 자기를 건드리지 않고 자기가 이 자유를 누린다는 게 너무 불편하고 낯설었다는 그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거기에는 모든 것이 통제되고 감시되니까 그래서 이분들이 와서 느꼈던 그 자유가 상상이 안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계기를 통해서 진짜 북한 실상을 좀 더 알아보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나도 뭘 좀 해야 하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