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아서] 이효주 (2) '쉽지 않았던 한국에서의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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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는 약 3만 4천 명에 달하는 탈북민이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북한에서 탈출했는데요. VOA가 이들의 사연을 들어보는 특별 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자유를 찾아서’ 아코디언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탈북민 이효주 씨의 두 번째 이야기, 동예원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어린 두 딸의 손을 잡고 두만강을 건넌 이효주 씨. 먼저 탈북한 시댁의 도움으로 중국에서 태국까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갈 수 있었는데요. 갑작스러운 탈북이었기 때문에 이효주 씨는 초기 한국에서의 정착 생활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녹취: 이효주 씨] “애들 때문에 왔는데 완전 너무 다른 체제죠. 다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런 세상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으니까, 중국에서 조금 살았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저한테는 한 개도 없는 거죠. 모든 게 다 생소하고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보니까 애들 때문에 왔는데 애들 교육이 제일 걱정이잖아요. 학교 문화도, 담임 선생님한테 찾아가는 게 북한에서는 진짜 열성 학부모고, 이런 거잖아요. 근데 여기는 찾아갔는데 선생님 표정이 되게 이상했고, 왜 오나? 이런 느낌? 그래서 이상하네,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북한에서 교사였던 이효주 씨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직접 학교에 찾아갔지만, 북한과는 다른 한국 문화에 당황했다고 하고요. 다행히 아이들은 하나원에서부터 더 빨리 한국에 적응했다고 합니다.

[녹취: 이효주 씨] “하나원이라는 데 있잖아요. 애들을 이렇게 케어 해주는데 하나원 내에 있는 그 학교에서 우리 딸들이 선생님을 가깝게 이모처럼 대하는 거 보고, 제가 우리 딸들한테 혼냈거든요. 어디 세상에 감히 선생님께 그렇게 매달리고 징징거리고… 근데 애들은 진짜 빨리 학교에서 한 석 달 있었잖아요. 100% 말도 한국말 오리지널 애들처럼 하고, 그래서 좀 당황했죠.”

빨리 적응한 아이들과는 다르게 이효주 씨는 다른 문화와 언어의 벽에 어려움을 느꼈죠.

[녹취: 이효주 씨] “학교도 가정통신문부터 말도 읽히지 않고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다 힘들었죠. 저는 그냥 모르는 부류에 속했죠. 교사였잖아요. 한류 영상물이라 보면 애들 지적하고 혹시 잘못 걸리면 진짜 잡혀가는 것도 있고 일단 내부적으로 딱지가 붙으면 정말 좋은 데 못 가요. 그러니까 우리 소조는, 학급 담임들은 쭉 6년 동안 고정 담임 연임제거든요. 근데 방과 후 우리 소조는 매해 학생들이 졸업하잖아요. 그러면 진짜 그런 게 되게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음악 하는 애들은 또 그런 데 민감하잖아요. 그래서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까, 또 저는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는 스타일이라 어떻게 보면 여기 와서 보니까, 내가 정말 답답하네, 이거 최근에 더 느끼고 있어요.”

2011년, 그녀가 처음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은 음식점 서빙 일이었는데요.

[녹취: 이효주 씨] “처음에는 감자탕집이었어요. 식당 서빙을 했었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그런 일 못 해봤거든요. 저 한국에 와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봤고 저는 얘기하는데, 저쪽(북한)에서 현란하게 잘 살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그런대로 그냥 먹고 살 만했고 또 딸자식 다섯 중에서 부모님이 저 아코디언 가르쳐 주면서 저한테 모든 사랑을 거의 진짜 다 받고 자랐거든요. 그래서 양동이 같은 걸 지면 안 된다고, 저는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 한 3학년까지는 4층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때 물이 안 나와서 물을 길어 올리는데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언니들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나는 물을 안 긷게 했거든요. 손이 굳어진다고 그다음 또 2층으로 내려왔는데 그 2층까지도 저는 안 긷게 했거든요. 아무튼 이렇게 고생을 못 해봤는데 감자탕집이 웬 말이에요.”

북한에서 17년 동안 교직 생활만 해온 이효주 씨. 식당에서 손님을 대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죠.

[녹취: 이효주 씨] “들어갔는데 세상에, 학교에서 계속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학부모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러면서 인사만 받았는데 서빙이라는 게, 나는 세상에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표정도 안 되고 아마 내가 ‘왜 이런 표정을 지어야지?’ 이런 거 있잖아요. 그 사장님이 고생했을 거야. 한 달 반 정도 했나? 아무튼 너무 힘들었어요. 말하는 것도 힘들고 웃는 것도 힘들고 웃음이 우선 안 나왔고요. 웃을 줄 몰랐어요.”

그렇게 한국에서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 이효주 씨. 이후 하나원 동기였던 한 언니의 권유로 예술단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어떤 일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코디언 강사 탈북민 이효주 씨의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