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측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에 지원한 쌀의 일부가 북한군부대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까지 북한군 부대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된 쌀 마대는 10여 차례에 걸쳐 4백여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지원된 쌀이 북한의 군량미로 전용된 사실을 한국 정부가 알고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 서울 VOA의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남측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에 지원한 쌀 중 일부가, 북한군 최전방 부대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남측의 국방부 관계자는 오늘 “2006년 말부터 최근까지, 강원도 인제 지역의 북한군 최전방 부대에서, 적십자 마크가 찍힌 쌀 마대가 트럭에서 하역되고, 일부는 북한의 쌀 마대와 함께 쌓여 있는 모습이 포착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습니다.
군 당국은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쌀 마대가 군 부대 내에서 하역되거나 야적돼 있는 장면을 고성능 카메라로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토대로 군 당국은 남측이 지원한 쌀이 북한군 식량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북한군 부대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된 쌀 마대는 10여 차례에 걸쳐 4백여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 당국은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고도 장관급회담이나 군사회담 등을 통해 단 한 차례도 북측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 남북 관계를 의식해 중대사안을 숨겨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 당국자는 “쌀 지원 문제는 기본적으로 통일부 소관인 만큼, 국방부가 나서서 언급할 입장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관계자: 세부적인 사항들은 군사정보 사항이므로, 우리 국방부가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해해달라..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에 쌀 지원하는 문제는 통일부 소관이므로 여기서 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또 다른 군 당국자는 “대북 식량 지원 문제는 군 당국에서 논의될 사안이 아니므로 군사회담에서 의제로 올리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쌀 유출 사실을 포착한 후, 통일부 등 유관부처에 관련 사실을 알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국방부로부터 대북 지원 식량의 전용 문제에 대해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시인한 뒤, “이를 막기 위해, 지난 해 20 차례에 걸쳐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등 현장방문 횟수를 늘려 감시를 강화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통일부 관계자: ”연락을 받은 적은 있고, 대북 정보활동을 통해서 얻은 정보인데 그걸 가지고 북한에 직접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우리 정보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고, 식량차관 합의를 할 때 이런 부분을 제기하면서 모니터링 횟수를 계속 늘려왔던 겁니다. 저희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니터링 횟수를 대폭 늘리는 거죠. 작년의 경우, 20군데를 방문했습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해 총 네 차례에 걸쳐 동해안 세 곳과 서해안 두 곳의 식량배급소를 방문해 분배 과정을 참관하는 한편, 관리책임자와 주민들을 인터뷰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분배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상주인원을 늘리는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 남북간 회담 때 지속적으로 제기할 방침”이라며, “그러나 북한에 상주하며 쌀의 최종 도착지까지 확인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통일부 관계자: “물론 특혜적인 성격이 있기는 하지만, 차관은 한계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 성격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상당히 좋은 조건의 특혜지원이죠. 그러면 당연히 받는 쪽에서는 도의적인 측면에서 남북관계의 특수한 상황도 감안해서 그런 상황이 없었으면 바람직했는데…앞으로는 훨씬 더 강화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고는 지원이 불가능하겠죠.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국제기구처럼 상주인원이 체류하면서 상시 현장접근을 할 수 있는, 그리고 자유롭게 인터뷰할 수 있는 수준을 생각하고 있죠. 쉽지는 않을 겁니다.”
남측이 1995년부터 지난 해까지 북측에 지원한 식량은 쌀 2백66만t과 옥수수 20만t 입니다.
금액으로 치면 약 1조원이 넘는 액숩니다. 북핵 실험이 불거졌던 2006년을 제외하곤 2002년 이후 차관형식으로 매년 40만t에서 50만t 가량의 쌀을 지원해왔습니다.
올해도 쌀 50만t 지원에, 남북 협력기금 1천9백74억원이 책정된 상태입니다.
지난 해 4월 22일 남북경협추진위원회에서 채택한 ‘식량차관 제공에 관한 합의서’에 따르면 “남측은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쌀 40만t을 차관방식으로 북측에 제공한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합의문에는 “양측은 쌀 수송시기 보장과 분배현장 방문 등 식량제공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적극 협력한다”고만 돼 있을 뿐, 용도에 대한 언급이 없어, 군량미 전용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 동안 대북 지원 식량의 군량미 사용 의혹은 탈북자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탈북자 연합단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가 지난해 12월 탈북자 2백50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4%가 “남한에서 지원한 쌀이 군부대에 우선적으로 간다”고 답했습니다.
북한 공군 대위출신 탈북자인 박명호 씨는 “군 재직 당시, 대북 지원 쌀을 직접 부대로 운송했다”며 “최근 들어 남측의 감시가 심해져, 남한 쌀이 북한에 도착하면 군인들이 사복으로 갈아입고 부대로 운송한다”고 말했습니다.
박명호 씨: “전 함경남도 함흥시 흥남항에서 쌀이 군부대로 들어가는 것을 여러 번 확인했는데요, 쌀이 흥남항에 오면 군부대는 할당량을 받아 군 차량 번호를 민간 차량번호로 바꾸고, 군인들에게 사복을 입혀서 항으로 쌀을 접수받으러 오라고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옵니다. 행정방위책임자인 저는 직접 가지 않고, 제 부하들에게 쌀 받으라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대 후에 3차례에 걸쳐 갔습니다. 민간 차량은 1백대 중에 한 두 대 있습니다. 그것도 군급 도급 단위에서 온 지방단 중권기관이지요, 안정부라든가, 일반 민간차량은 오질 못해요. “
인민군 장교 출신인 또 다른 탈북자는 “대북 지원식량의 90%는 부대와 전쟁 비축미 저장창고인 ‘2호 창고’로 수송되고, 나머지는 당 정 기관 이나 근로자 배급소로 간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북측에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식량 배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식량 배분과 지원 규모를 연계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박헌옥 북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당초 남한이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한 쌀을,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대북 지원 취지에서 벗어난다”며 “북한이 선군 정치와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일련의 조치로 군량미를 확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박헌옥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이것은 북한이 선군정치라고 해서 군대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하기 때문에 남쪽에서 제공하는 쌀을 군대에 주는 것이고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하는 등으로 남쪽에서 비난과 반대가 있을 걸 알면서도 군량미로 이뤄져 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남쪽에서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은 안보적인 위협을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북한 군대를 위한 군량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북한주민에게 인도적인 차원에서 제공하는 명분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쌀을 구입해 제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 맞도록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고, 분배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쌀을 지원하기 곤란하다는 점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 연구위원은 그러나 “상주인원을 늘리는 방안은 주민통제를 우선시하는 북측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며 “차기 정부에선 분배의 투명성이 갖춰져야 쌀 지원이 순조롭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