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한반도 서해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남한측 해안으로 표류했던 북한 주민 22명이 북한에 귀환 조치된 뒤 모두 처형됐다는 풍문이 전해지면서 남한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남한 당국의 귀환 절차가 일사천리로 이뤄진 점도 석연치 않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습니다. 서울 VOA 김환용기자를 전화로 연결해 자세한 소식을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처형설이 나돌고 있는 북한 주민 22명이 이에 앞서 어떻게 남한으로 오게 된 건지부터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자> 네 한국의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설 다음날인 지난 8일 새벽 황해도 강령군에 거주하는 마흔다섯살 로 모씨 일가 친척과 이웃 등 북한 주민 22명이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표류하다가 남측 해군에 의해 발견돼 구조됐습니다.
국정원이 밝힌 이들 진술에 따르면 강령군 등암리 수산사업소, 협동농장 등지에서 노무자로 근무하고 있는 이들 중 부자, 부부, 형제, 자매, 숙질 등 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모두 6세대 13명이고 이들의 이웃이 9명이었습니다. 남자는 8명, 여자 14명이었으며 15-17세 학생도 3명 포함돼 있었습니다.
국정원은 이들이 굴 채취로 돈벌이를 하기 위해 설인 7일 오전 7시30분 동력선이 예인하는 고무보트 2척에 나눠 타고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인근 모래섬으로 출항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오후 2시 30분쯤 귀항하던 중 보트를 예인하던 동력선이, 엔진고장으로 침수중인 다른 선박을 구조하러 간 사이 조류에 휩쓸려 표류했다는 것입니다.
<앵커> 남한 조사 당국은 이들이 귀순의사 없는 단순 표류자라고 결론 짓고 다시 북송했다고 하지만 여러 정황상 미심쩍은 부분들이 지적되고 있다구요?
<기자>네, 국정원과 군 당국, 해경으로 구성된 남한 정부측 합동심문조는 이들을 인천항으로 옮긴 뒤 조사를 했으나 북한 주민들은 “가족들이 있는 북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진술한 것으로 국정원측은 밝혔습니다. 대공용의점과 귀순여부 등을 확인하는 조사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단순 조난으로 결론을 내리고 8일 오후 6시 30분 판문점을 통해 북송했습니다.
의혹은 정부가 사건 초기 이들의 표류사실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거졌습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최근 해상에서 남하한 북한 주민들에 대해선 현장 조사를 통해 대공 혐의점, 귀순의사 유무 등을 확인한 뒤 문제가 없으면 돌려보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 일가 친척과 이웃 등 22명이나 되는 적지 않은 인원이 함께 배에 타고 있었다는 점 ,다른 날도 아닌 설날에 어로작업에 나선 점, 어린 학생들이 포함된 점 등 때문에 단순 표류에 대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지난 2006년 황해도 옹진군에서 목선을 타고 귀순한 박명호씨는 일부 의혹에 대해선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설 명절이 되고 하지만 주민들이 먹을 것이 없으니까 초소 군인에게 뇌물을 주고 그런 작정을 할 순 있습니다. 초소 군인 한두명과 내통한 상태에선”
<기자>박씨는 하지만 북한 해상 선박단속 초소에는 가족단위로는 바다에 투입할 수 없는 규정이 있으며 이는 탈북을 방지하기 위한 북한 당국의 조치라고 설명해 의문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앵커>국정원을 비롯한 남한 조사 당국의 이번 조사과정에 대한 의문점들도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고 하던데 어떤 내용입니까?
<기자>네 합동심문에 참석한 관계자는 “조사 당시 보트에 노와 굴 잡는 기구만 있었을 뿐 귀순을 대비한 준비물 등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며 단순 표류 임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국정원이 과연 이들 주민들을 상대로 귀순 여부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해상에서 남한측에 의해 발견된 시각이 8일 새벽이고 판문점을 통해 돌아간 시점은 같은날 오후 6시 30분이어서 이동시간과 식사시간 등을 제외하면 조사시간이 불과 8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22명에 대한 조사시간이라고 하기엔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표류자 가운데 일부가 설사 귀순의사를 밝히고 싶어도 북송될 경우 후환이 두려워 자기 의사표현이 쉽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박명호씨 입니다.
“나는 여기서 받아주기만 하면 여기서 살겠다 이런 말 하기가 쉽지 않아요, 왜 지금까지 북송된 사람이 많기 때문에 또 그 선전을 많이 들어왔고 자기 이런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북송만 되면 죽는 것이거든요”
<기자>이 때문에 이번에 남하했던 22명 가운데 일부 귀순의사가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도 이들에 대한 조사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됐다면 진의를 파악치 못한 채 북송해버린 셈이 됐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국정원의 조사방식이 공개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국정원은 기밀 유지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앵커>그런데 이들이 북송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의 일부 언론에서 이들의 처형설을 보도하지 않았습니까? 남한 당국이 곤혹스러운 상황이겠는데요.
<기자>네 그렇습니다. 연합뉴스는 17일 정통한 대북소식통의 말을 빌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황해남도 보위부가 귀환한 주민 22명을 지난주 초 곧바로 비공개 처형했다는 소문이 황해남도 주민들 사이에 퍼졌다”고 전했습니다.
단순표류냐, 귀순이냐의 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처형설이 보도되자 국정원 등 관련 정부기관들이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측은 “북송 주민들의 처형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으며 북한 체제의 특성상 솔직히 확인하기도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처벌 가능성과 관련해선 해상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굴 채취에 나선 점 혹은 탈북기도 혐의를 받은 때문이라는 등의 여러 설들만 무성한 상탭니다.
서울에서 미국의 소리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