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무대로 한 뮤지컬 '요덕 스토리'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했던 정성산 감독이 통일에 대한 염원을 주제로 한 새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탈북자 출신인 정 감독은 그동안 부정적으로 묘사됐던 북한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통일의 주역이 될 한국 젊은이들이 북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새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는데요.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 남자와 남한 여자의 사랑을 그린 뮤지컬 ‘위대한 쇼’가 오는 3월 17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첫 상연됩니다.
‘위대한 쇼’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요덕 스토리'를 만든 탈북자 출신 정성산 감독의 후속작품으로, 북한에 부는 한류 바람을 소재로 만들었습니다.
정 감독은 "4년 전 남한의 동영상이 조총련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 당 간부들이 보고 숙청을 당한 일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북한에 부는 한국 문화 열풍을 통해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상징적인 사건을 재미있게 재구성했다”고 말했습니다.
”몇 년 전에 한국의 에로 비디오가 북한에 들어가 당 간부들이 다 돌려보고, 유통시킨 당사자가 숙청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문화가 들어갔을 때 북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고 또 나중에 통일이 됐을 때 남북한이 같은 문화를 가지고 공유할 수 있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북한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은 전작인 ‘요덕 스토리’와 같지만 작품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요덕 스토리'가 북한 수용소를 통해 인권 문제를 고발한 무거운 내용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북한 장교와 남한 여가수의 사랑을 밝고 경쾌하게 담았습니다.
지난 1995년 탈북한 정 감독은 “흔히 ‘북한’하면 떠올리는 ‘인권 탄압’이나 ‘식량난’ 같은 어두운 주제에서 벗어나 좀 더 밝고 희망적인 얘기를 하고 싶었다”며 “요덕 스토리와 달리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국민들이 북한에 대해 칙칙하고 어둡고 비현실적인 국가라는, 다시 말해 긍정적인 생각을 잘 하지 않습니다. 북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고민을 하다 북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성과 인간미, 의리 등을 춤과 노래로 밝고 멋스럽게 보여줌으로써 통일에 대한 상상을 하게 하려고 만들게 됐습니다.”
정 감독은 “특히 통일시대의 주역이 될 한국의 20,30대 젊은이들이 북한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요덕 스토리를 공연하며 느꼈다”며 “이번 작품은 한국의 청년들이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위대한 쇼’는 남한 여가수가 찍은 음악 동영상이 북한 당 간부들 사이에 퍼지는 상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를 우연히 접한 주인공인 북한 장교가 동영상을 유포시킨 혐의로 체포됩니다.
주인공을 심문하게 된 그의 친구는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남한 여가수를 북한으로 납치해오고 주인공과 남한 여가수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정 감독은 북한에 부는 한류 움직임에 대해 “중국을 통해 들여온 한국의 영화나 음악이 북한주민들에게 많이 유통되고 있다”며 “이 역시 훗날 남북한이 하나가 됐을 때 문화적 차이를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위대한 쇼’에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남한에서 유명한 가수와 영화배우들이 출연합니다.
경기도 고양시의 후원과 자비를 털어 제작비를 마련했다는 정 감독은 “탈북자 1천 명과 실향민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관람하게 할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 인권단체와 해외로부터의 지원은 받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감독은 이와 함께 "요덕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가 유럽에서 개봉되면서 영국의 한 인권단체로부터 공연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현재 협의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2006년에 선보여 지금까지 모두 2백여 차례 공연한 ‘요덕 스토리’는 북한의 요덕 정치범 수용소를 배경으로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미국의 제이 레프코위츠 대북 인권특사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 등을 비롯해 전세계 25만 명이 공연을 봤습니다.
정 감독은 “북한을 무조건 변화시키려고만 하지 말고 한국 국민부터 북한에 대한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북한에 대한 희망과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만드는 것은 우리 탈북자의 몫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북한에 대한 희망을 주고 한국 국민 스스로가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입니다. 실제 이는 서독 정부는 통일 10년 전부터 동독에 대한 문화를 이끌어 내 서독 젊은이들에게 통일에 대한 희망을 줬습니다. 현재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 제가 나서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쇼’는 고양시에서 오는 5월3일까지 공연된 뒤 6월부터 연말까지 서울과 부산 등 전국 15개 지역에서 순회공연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