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까레이 출신 여성 미국이민 성공기, 장안의 화제

(진행자) 이번에는 미국 내 문화계 소식을 전해 드리는 ‘문화의 향기’ 시간입니다. 부지영 기자 함께 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또 어떤 소식일까 궁금한데요?

(기자) 일전에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도 보도해 드렸습니다만 러시아를 비롯해 소련 붕괴 이후 결성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에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죠?

(진행자) 네, 러시아에만 1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등 이들 지역내 한인 수가 수 십만 명에 달한다고 들었습니다. 한인들이 이 지역에 이주하기 시작한 건 19세기말 조선시대 농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에 정착하면서부터죠?

(기자)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절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연해주로 망명해 활동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스탈린이 소수민족 분리정책을 단행하면서 연해주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송 됐잖아요?

(진행자) 그렇죠. 당시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한인은 16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빈 손으로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팽개쳐졌지만 좌절하지 않고 강인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집단농장을 일궈냈다고 들었습니다.

(기자) 구 소련 당시 소수민족들 가운데 한인들이 가장 잘 살았다고 하는데요. 현지에서는 이들 한인들을 고려족, 또는 고려사람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진행자) 러시아 말로는 까레이스키, 보통 줄여서 까레이라고 하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까레이 출신 여성의 미국이민 성공기가 미국 사회에서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한국계 러시아인 4세인 스베틀라나 김 씨인데요. 1991년 단돈 1달러만 들고 미국으로 건너와 화장품 판매사원, 주식중개인을 거쳐 지금은 당당한 전업작가가 됐습니다. 스베틀라나 김 씨는 이 같이 미국에서 성공하기까지 과정과 사랑하는 할머니 백옥에 관한 추억을 담아 회고록을 펴냈는데요. 제목이 ‘화이트 펄 앤드 아이 (White Pearl and I)’, ‘백옥과 나’입니다. ‘정치적 난민의 회고록’이란 부제가 달려 있는데요. 오늘 이 스베틀라나 김 씨의 회고록에 관해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행자) 함께 들어볼까요?

소련 붕괴 당시인 1991년 12월, 23살 대학생이던 스베틀라나 김 씨는 레닌그라드의 빵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스베틀라나 김 씨//
“겨우 빵 한 덩이를 사려고 사흘째 빵집 앞에 줄 서 있었어요. 그런데 멋진 벤츠 자동차가 앞에 와서 서더니 어떤 사람이 창문을 내리고 소리치는 거에요. 그 사람을 본 순간 웃음이 나왔어요. 고등학교 동창인 블라디미르였거든요. 블라디미르는 암시장에서 국제선 항공표를 거래하는 암표상이었는데, 1주일 뒤에 미국으로 떠나는 표가 있다고 했어요. 돈도 없었으면서 무조건 제가 사겠다고 했죠. 어떻게든 이 기회를 잡아야겠다 싶어서요.”

크리스마스를 앞둔 혼잡한 뉴욕 공항에 도착한 스베틀라나 김 씨는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그 곳에서 홀로 미아가 된 느낌이었다고 하는데요. 도움을 줄 것으로 믿었던 친구가 캐나다로 이사 갔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항에서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이 서부로 갈 수 있는 버스 표를 선뜻 끊어주는 등 여러 사람들의 친절과 도움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게 되고요. 청소와 아이 돌보기 등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은 끝에 화장품 판매사원으로 취직하게 됩니다.

화장품 판매사원에서 주식중개인으로, 여성 기업인으로 줄기차게 도전하며 변신을 거듭해온 스베틀라나 김 씨…… 최근 ‘백옥과 나’란 제목의 회고록을 내면서 전업작가로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스베틀라나 김 씨//
“미국에 혼자 와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올 때 돈도 1달러 밖에 없었고, 영어도 전혀 못했으니까요. 그 동안 제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책을 써보라는 권유를 많이 했는데요. 이전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하다가 2년 전에 용기를 내서 일을 그만 두고, 하루 14시간씩 매달려서 글을 썼는데, 그 결과로 이번에 책이 나오게 됐습니다.”

스베틀라나 김 씨의 회고록 ‘백옥과 나’는 김 씨가 미국에서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이루기까지의 과정과 할머니 백옥에 관한 얘기가 서로 교차하면서 펼쳐집니다.

//스베틀라나 김 씨//
“할머니는 26살 때 일본 북쪽에 있던 사할린 섬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해야 했어요. 1937년 조지프 스탈린에 의해 거의 20만 명의 한인들이 강제이주를 당했죠. 하지만 미국인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더군요. 그래서 알리고 싶었어요.”

스베틀라나 김 씨는 인생에서 도전을 겪을 때마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견뎠다고 하는데요. 할머니를 생각하면 분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베틀라나 김 씨//
“할머니는 늘 제게 용감해야 한다, 또 삶에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어요. 하지만 할머니가 제게 주신 가장 중요한 선물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관계를 소중히 하라는 거였어요. 제게 그런 기술이 없었다면 아마 미국에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왔다고 생각해 보세요. 법규도 다르고, 관습도 다르고, 모든 게 다 다르잖아요?”

스베틀라나 김 씨는 공산국가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나온 탈북자들의 경우, 문화적 차이 때문에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좌절하지 말고, 늘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스베틀라나 김 씨//
“새로운 일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스베틀라나 김 씨는 현재 두 번째 저서를 집필 중인데요. 김 씨의 회고록 ‘백옥과 나’는 조만간 헐리우드에서 영화로도 제작될 전망입니다.

(진행자) 부지영 기자, 잘 들었습니다. 러시아 연해주에 가면 ‘까레이’라고 불리는 고려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조선족, 또 북한 노동자들과 남한 유학생, 관광객들까지 모두 볼 수 있다고 하던데요. 미국에서도 여러 부류의 한인들을 볼 수가 있죠?

(기자) 그렇죠. 방금 미국에 도착한 유학생이나 이민 1세대에서부터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2세나3세가 있고요. 또 대부분 불법이긴 합니다만 조선족도 있고,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도 거의 1백 명에 달하는 실정이니까요. 다양성이 특징인 나라 미국답게 미국 내 한인들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진행자) 이번에는 새 영화 소개 순서입니다. 줄리아 차일드하면 미국에서 전설적인 가장 유명한 요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어느 정도냐 하면 이 곳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안 미국역사박물관에 줄리아 차일드의 부엌이 그대로 재현돼 있을 정도입니다. 미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와 요리하기를 좋아해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를 그대로 따라서 해 보는 뉴욕 여성 줄리……. 이 두 사람의 삶과 요리에 대한 사랑을 그린 영화가 나왔는데요. ‘줄리와 줄리아’란 제목의 영화입니다. 벌써부터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 같죠? ‘줄리와 줄리아’, 어떤 영화인지 김현진 기자, 소개해 주시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프랑스 파리……. 외교관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서 살게 된 미국 여성 줄리아 차일드는 무슨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궁리합니다.

줄리아는 요리학교에 다니기로 결심하는데요. 이 날의 결심은 줄리아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 계기가 됩니다. 매일 매일 맛있는 음식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요. 최초의 영문 프랑스 요리책인 ‘프랑스 요리 완전정복’을 쓰게 되는데요. 이 요리책이 인기를 끌면서 텔레비전 요리강좌까지 맡게 됩니다.

줄리아 차일드가 사망하기 2년 전인 2002년 뉴욕…… 지겨운 직장생활의 탈출구를 찾던 줄리 파월은 인터넷 상에 자신만의 온라인 공간, 즉 블로그를 새로 만들어 매일 일기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에 나와있는 5백24가지 요리를1년 365일 동안에 해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것인데요. 매일 요리를 하고 그 경험을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기로 한 것입니다.

무모하게만 생각됐던 이 계획 덕분에 줄리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영화 ‘줄리와 줄리아’는 뉴욕 여성 줄리와 프랑스 요리 전문가인 줄리아 차일드의 삶을 서로 교차시키며 보여주는데요. 좌중을 휘어잡는 쾌활한 성격의 줄리아 차일드는 연기파 배우 메릴 스트립 씨가 맡았습니다.

스트립 씨는 줄리아 차일드를 그대로 흉내 낼 것이 아니라 한 두 가지만 따라 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줄리아 차일드를 연기했다는 겁니다. 동시에 줄리아 차일드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즐길 줄 알았던 어머니 생각도 많이 했다고 하는데요. 이상적인 어머니와 이상적인 줄리아 차일드를 합친 사람을 연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답답한 인생에서 탈출하기 위해 요리 대 작전에 들어가는 뉴욕 여성 줄리 파월 역은 에이미 애담스 씨가 맡았는데요. 애담스 씨는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인생의 상관관계에 관해 많은 걸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애담스 씨는 요리의 명상적인 면을 배우게 됐다며, 그저 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를 위해 요리를 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는 거죠.

영화 ‘줄리와 줄리아’는 극작가이자 감독인 노라 에프론 씨가 극본을 쓰고 직접 연출을 맡았는데요. 에프론 씨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의 극본을 쓰기도 했습니다. 에프론 씨는 줄리 파월의 책 ‘줄리와 줄리아’와 줄리아 차일드의 회고록 ‘프랑스에서 나의 삶’, 이 두 권의 책을 각색해 이번 영화 극본을 완성했습니다.

영화 ‘줄리와 줄리아’에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돕고 사랑하는 두 남자가 등장하는데요. 줄리아 차일드의 남편 폴 차일드 역은 스탠리 투치 씨가, 줄리의 남편 에릭 파월 역은 크리스 메나 씨가 맡았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요리는 모두 뉴욕의 일류 요리사 콜린 플린 씨의 감독 아래 만들어졌고요. 영화 음악은 프랑스 작곡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씨가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