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탈북 난민 100명 시대 특집] 탈북자들의 미국 입국이 저조한 배경

미국 내 탈북 난민 1백 명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지난 2004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난민 지위를 받아 제3국에서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지난 9월 말 현재 93명으로 이르면 올해 안에 100명을 넘어설 전망입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는 탈북자 1백 명 시대를 맞아 지난 주부터 여덟 차례에 걸쳐 특집방송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덟 번째 마지막 순서로 김영권 기자와 함께 탈북 난민들의 미국 입국이 더딘 배경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문) 저희가 어제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미국 내 탈북 난민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전해드렸는데요. 북한인권법이 지난 2004년에 채택된 이래 이제 5년이 됐는데 지금까지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는 9월 말 현재 93명입니다. 규모가 너무 작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데,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답)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탈북자 억압정책과 유엔 등 국제기구에 대한 접촉 차단, 제 3국 정부와의 외교적 문제, 미국 정부의 까다로운 신원조회 절차 등을 들 수 있는데요. 오늘은 미국 자체 문제에 초점을 맞춰 살펴볼까 합니다. 올해 초 워싱턴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제가 제이 레프코위츠 전 북한인권 특사에게 탈북자 입국이 저조한 배경에 대해 물었는데요, 과거와 달리 솔직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레프코위츠 전 특사의 말을 들어보시죠.

레프코위츠 전 특사는 탈북자들의 미국 입국 문제는 부시 전 행정부 당국자들 사이에 자주 논쟁의 대상이 될 정도로 매우 어려운 사안이었다며,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는 행정부 내 관료주의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앞서 ‘솔직한 답변’ 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레프코위츠 전 특사의 지적이 특사 재임시절 했던 발언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레프코위츠 전 특사는 재임시절 행정부 내 관료주의 걸림돌은 모두 제거됐다며, 문제는 중국 등 제 3국 정부와의 협력 등 외교적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었습니다.

문) 그러니까 특사 직에서 물러난 뒤에 탈북자들의 미국 입국이 저조한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놨다는 얘기군요.

답) 그렇습니다. 레프코위츠 특사는 미국 정보당국과 국토안보부가 탈북자들의 신원조사에 지나치게 까다로운 규정을 적용해 탈북자들의 입국이 저조하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신매매된 여성들과 그들의 어린 자녀들은 구체적인 신원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조속히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런 열악한 처지에 놓인 탈북자들에게도 매우 까다로운 심사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레포코위츠 특사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미국의 안보에 정말 위협이 될 수 있냐고 반문하면서, 재임 당시 이런 조치에 대해 납득이 가지 않아 관리들과 여러 번 논쟁을 벌였다고 말했습니다.

문) 미국에 매년 수만 명의 난민이 입국하고, 특히 버마 난민들은 최근 들어 매년 1만 명이 넘게 미국에 정착하고 있는데, 탈북 난민들에게 이렇게 까다로운 심사를 적용하는 이유는 뭔가요?

답) 북한이 아직 미국과 수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안보 차원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신원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무부는 지난 2005년 발표한 ‘미국 망명을 희망하는 탈북자들의 상황과 이들에 대한 정책’ 보고서에서 국무부와 국토안보부가 탈북자 수용과 관련한 문제들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거나 적대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간첩, 또는 북한에서 주민들에게 인권 탄압을 가했던 용의자나 범죄자의 유무를 명확하게 가려내야 하는데 이를 확인하는 방법이 매우 제한돼 있어 어려움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레프코위츠 전 특사의 지적대로 심의 대상에 좀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텐데 관료주의에 막혀 아직 뚜렷한 진전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비판입니다.

문) 바꿔 말하면 이런 관료주의가 계속되는 한 탈북 난민들의 미국 입국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군요.

답) 그렇습니다. 레프코위츠 전 특사는 재임시절에도 부시 전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에 개입할 때만 탈북자들의 입국에 진전이 있었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는데요. 이를 해석하면 백악관이 움직이지 않는 한 앞으로도 탈북자 규모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문)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한 인권단체들이나 탈북자들의 불만도 계속 커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달에는 북한 인권단체들과 탈북자들이 국무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 정부가 탈북자 보호 등 북한인권법 조항을 성실하게 이행하라고 촉구하지 않았습니까?

답) 네, 워싱턴에 본부를 둔 북한자유연합 회원들과 미국에 정착한 탈북 난민 10여명이 기자회견을 가졌었는데요.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제 3국에서 미국행을 요청한 지 몇 개월이 지나도록 미국대사관과 인터뷰를 갖지 못했으며, 대사관 측의 자세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태국에서 입국한 탈북자들은 이민국 수용소에서 미국행을 신청한 뒤 2년 안팎의 긴 세월을 감옥과 같은 곳에서 기다려야 했다며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같은 날 미 의회를 방문해 관계자들에게 제 3국 내 탈북자 실태와 미국에 오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문) 마침 미국 상원이 산하 회계감사국에 조사를 지시해 현재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답) 그렇습니다.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과 샘 브라운백 공화당 의원의 요청에 따라 미 의회 산하 회계감사국(GAO)이 제 3국 내 탈북자 실태와 미국 입국이 저조한 배경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GAO 관계자들은 이미 미국 내 일부 탈북 난민들을 면담했으며 관련 부처 전현직 관계자들과 접촉하는 등 조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르면 내년 5월쯤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움직임이 행정부의 탈북자 정책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문) 이번에 뉴욕과 중서부 지역을 방문해 취재하면서 김 기자가 직접 만난 탈북 난민들의 의견은 어떻던가요?

답) 자신들을 받아준 미국 정부에 감사해 하면서도 미국에 오기 위해 제 3국에서 몇 년씩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탈북자 데보라 씨의 말을 들어보시죠.

“인권의 나라인데 그게 말로만 국한되고 우리가 들어온 것으로 세계적으로 진짜 인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보여주기 위한 식으로 몇 명 데려오자 이런 것 같아 참 아쉽네요.”

문) 그런데 미국 안보당국의 관료주의 뿐아니라 워싱턴의 전반적인 기류도 탈북자들의 미국 입국에 적극적인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유가 뭔가요?

답) 탈북자들에게 피난처가 딱히 없는 다른 나라 난민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혜택을 제공하는 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동안 다양한 배경의 미국 내 전현직 관리들, 전문가들과 탈북자 입국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는데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국으로 가는 게 탈북자들에게 훨씬 더 유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이 레프코위츠 전 북한인권 특사의 말을 다시 들어보시죠.

레프코위츠 전 특사는 미국이 많은 탈북자들에게 천국이 될 수 없다며 여러 실질적인 배경을 볼 때 한국이 훨씬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한국 정부도 탈북자들을 반기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레프코위츠 특사는 그러나 적어도 상징적 차원에서 지금보다는 탈북 난민을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난민 전문가인 국제 난민단체 ‘Refugee International’의 조엘 차니 회장대행 역시 과거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언어 등 문화적으로나 정부의 경제, 사회적 지원으로 볼 때 탈북자들은 한국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정착한 젊은 탈북 난민들은 지난 시간에 전해드린 대로 미국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고 현지인들로부터 다른 난민들에 비해 생활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탈북자들 역시 가능한 미국 정부가 더 많은 입국 기회를 제3국내 탈북자들에게 제공하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진행자: 김영권 기자와 함께 탈북 난민의 미국 입국이 저조한 배경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미국 내 탈북 난민 1백 명 시대를 앞두고 보내드린 특집방송, 오늘 8부를 끝으로 모두 마치겠습니다. 김영권 기자 수고했고요. 청취자 여러분 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