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평양 독일문화원 원장

지난 2004년 평양에 개설됐던 ‘독일 과학기술도서 보급실’이 5년 만에 문을 닫습니다. 이로써 북한 유일의 서방 문화원 시설이 폐쇄되는 것인데요. 최원기 기자가 최근 평양을 다녀온 서울의 독일문화원 라이문트 뵈르데만 원장을 인터뷰했습니다.

문) 라이문트 뵈르데만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원장님은 서울에 있는 독일문화원 원장이면서 북한과의 문화 교류도 담당하고 계신다고요?

답) 네, 그렇습니다. 저는 1년 전에 서울에 있는 독일문화원 원장으로 부임했는데요. 저의 1차적 임무는 독일과 한국과의 문화 교류지만 독일과 북한 간의 문화 교류 업무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문) 그런데 독일 정부가 지난 2004년 평양에 개설한 독일문화원 열람실을 폐쇄하기로 했다고요?

답) 네, 독일 정부는 지난 9월 북한의 ‘조선-독일 우호협회’ 측에 평양의 ‘독일 과학기술도서 보급실’ 운영에 관한 협약을 종료한다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이 열람실 문제는 지난 1989년 독일이 통일 되기 전에 북한과 동독 관계 시절 시작된 것인데요. 2004년에 독일문화원이 북한과의 어려운 협상 끝에 평양 시내 천리마회관에 ‘독일 과학기술도서 보급실’을 개설하기로 했었습니다. 현재 이 열람실은 아직 폐쇄된 것은 아니지만 ‘폐쇄 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 열람실이 문을 닫으면 북한 내 유일한 서방 문화원 시설이 폐쇄되는 것인데요. 왜 폐쇄하려는 것인지 그 이유를 좀 설명해 주시죠.

답) 한 마디로 이 열람실이 설립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초 독일은 북한주민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이 시설을 자유롭게 방문해 책과 신문을 읽으면서 서방의 문화와 정보를 접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지난 5년 간 기대와 달리 북한주민들은 이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문)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답) 저는 지난 해 평양에 처음 갔었는데요. 당시 북한 측 인사들에게 ‘독일 열람실에 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측은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계속 요구하니까, 가보게 했는데요. 현장에 가보니 이미 열람실 문이 닫혀 있는 상태였고, 사람들이 사용했던 흔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동안 잘 운영되고 있는 열람실을 폐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용이 중단된 시설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문) 열람실이 활용 안 된 것은 평양 당국이 외부세계의 정보와 문화가 북한에 유입될 것을 꺼려했기 때문인가요?

답)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독일은 이 열람실에 각종 신문과 잡지, 그리고 도서를 비치했습니다. 그러나 열람실 개설 직후 북한 당국이 우리가 비치한 신문을 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또 북한 당국은 특정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독일의 유명 잡지인 슈피겔 기자 등 언론인들의 시설 방문을 가로 막기도 했습니다.

문) 그래도 지난 5년 간 이 열람실을 이용한 북한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요.

답) 북측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 해에 6백 여명이 이 시설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우리가 직접 파악한 것은 아닙니다. 또 우리가 듣기로는 지난 5년 간 북한의 대학과 전문가들이 이 시설에서 의학 또는 감자 농사에 관한 자료를 대출해 갔다고 듣고 있습니다.

문) 한가지 궁금한 것은 이렇게 서방의 문화적 침투를 꺼리는 북한 당국이 왜 5년 전에는 독일 열람실 개설을 허용했을까 하는 것인데요?

답) 제가 짐작하기로는, 북한 당국은 외부에 개방 의지를 보여주는 한편 주민들에게 독일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구라는 점을 선전하기 위해 열람실을 개설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문)큰 기대를 갖고 개설했던 ‘독일 과학기술도서 보급실’이 문을 닫게 돼 실망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해서 독일과 북한과의 문화 교류가 끝난 것은 아니겠죠?

답)독일은 북한과 문화 교류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방침입니다. 제가 지난 주 평양을 다녀왔는데요. 저는 북측 관계자들에게 북한 학생을 독일로 초청하는 장학사업과 독일어 연수, 그리고 영화 교류를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또 북한이 열람실을 다시 열 생각이 있다면 독일은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문)지난 주에 평양을 다녀왔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평양에서 누구를 만났습니까?

답)평양에 나흘간 머무는 동안 ‘조선-독일 우호협회’ 측 인사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열람실 폐쇄가 실망스럽지만 양국 간 문화 교류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북한의 식량 사정이 나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만, 저는 평양에 머무는 동안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