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달력의 유래와 역사 (1)

안녕하세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시간의 부지영입니다. 얼마 전에 평양출판사가 발행한 새해 달력 사진을 인터넷에서 봤습니다. ‘새해를 축하합니다’란 한글 문구와 함께, “Happy New Year”라고 영문으로 쓰여 있던데요. 푸른 하늘 아래 눈 덮인 백두산 사진이 한 가운데 실려 있고요. 그 아래 주체 99, 그리고 괄호 안에 2010이라고 붉은 글씨로 써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새 북한 달력에 따르면, 내년에는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치는 날이 많아서요. 쉬는 날이 올해보다 나흘이나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틀을 쉬는 1월 1일 신정은 금요일이기 때문에 일요일까지 사흘을 연이어서 쉴 수 있지만요. 정월 대보름인 2월 28일은 일요일과 겹친다고 하는데요. 새해 음력 설날은 2월 14일로 일요일이고요. 이틀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2월 16일은 화요일, 고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은 목요일입니다.

이렇게 새해 새 달력을 받아 들면 중요한 공휴일이나 가족들의 생일이 무슨 요일인지 한번쯤 살펴보게 되는데요. 우리 모두 달력의 요일과 날짜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여기에 얽매여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달력의 날짜는 인간이 정해놓은 규칙일 뿐입니다. 인간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달력을 만들었고, 언제부터 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궁금한 생각도 드실 텐데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오늘 시간에는 달력의 유래와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며칠 뒤면2009년 한 해도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12월 31일 밤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장에는 수만 인파가 모여서 새해 초읽기 행사를 구경할 테고요. 한국인들은 서울 종각에서 울려 퍼질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 소원을 빌 것입니다. 또 북한 주민들은 고 김일성 주석의 동상을 참배하며 새해 첫날을 보내게 될 텐데요. 이처럼 문화와 풍습은 다르지만 새해를 맞는 희망과 기쁨은 다 같지않나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고대하며 기다리는 새해 1월 1일은 음력으로 계산하면 11월 17일에 불과합니다. 음력으로 새해가 오려면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데요. 10년 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들떠서 맞이했던 밀레니엄 (millennium), 즉 새 천 년도 다른 달력으로 계산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1999년 12월 31일 23시 59초에서 다음 1초로 넘어가는 순간, 60억 인류는 새 천 년의 도래를 축하하며 환호했다. 그러나 2000년은 북한 주체력으로는 89년, 단기로는 4333년이었다. 또한 프랑스 혁명 달력으로 208년, 페르시아 달력으로 1378년, 회교 달력으로 1420년이었고, 고대 로마 달력으로는 2753년, 고대 이집트 달력으로 계산하면 6236년이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어제와 오늘, 내일의 날짜는 약 4백 년 전에 제정된 그레고리우스 달력에 따른 것입니다. 새해2010년이란 그레고리우스 달력의 기준에 맞춘 것일 뿐, 다른 달력으로 계산하면 전혀 다른 숫자가 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수없이 많은 달력을 만들어 사용해 왔는데요. 인간은 왜 달력을 필요로 했고, 언제부터 달력을 사용했을까요?

//학키 교수//
“달력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됐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미국 북아이오아 대학교 지구과학과 교수인 토마스 학키 박사는 미국 천문학협회 소속 역사천문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데요. 학키 교수는 이미 수만 년 전에 인간이 달력을 만들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를 뒷받침해주는 증거들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학키 교수//
“가장 오래된 달력이라고 추정되는 것은 동물 뼈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저 뼈를 긁은 자국일 뿐인데요. 사용한 도구라든가 자국이 새겨진 방법은 다 달라요. 그래서 한꺼번에 동시에 새긴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죠. 인류학자들이 발견한 이 뼈의 자국이 왜 달력으로 생각될까 궁금하실 텐데요. 그 이유는 뼈에 새겨진 자국이 날짜 수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짜를 센 달력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두 달 동안 달의 운행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동물의 뼈 조각은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에서 발견됐습니다. 안양대학교 이정모 교수입니다.

//이정모 교수//
“이것은 약 2만5천년 전에 만들어진 것인데요. 이 동물 뼈에는 달의 모습의 변화가 69개의 점으로 새겨져 있는데, 학자들은 이것을 두 달 동안의 달의 운행을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죠.”

그렇다면 선사시대 동굴에 살던 사람들이 이렇게 시간의 변화를 뼈에 새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대부분의 동물은 자신이 지각하는 공간을 지배하려고 한다. 짐승들은 소변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또 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한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시간이란 또 다른 공간을 지각한다. 그러므로 달력은 시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 욕구에서 나온 것이고, 인간과 자연 간의 지속적인 소통의 결과다.”

인간은 자연현상이나 하늘의 현상에 기초해 하루와 한 달, 한 해를 정했습니다. ‘달력과 권력’이란 책을 쓴 안양대학교 이정모 교수는 아무나 달력을 만들 수는 없었다고 설명하는데요. 천문현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에 제사장들이나 무당들이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 달력은 결정적인 권력요소였고요.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의 위력이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이 먼저 태음력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하늘의 현상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달의 변화였기 때문입니다.

//이정모 교수//
“달력을 만들 때 기준을 뭐로 삼아야 했을까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계절의 변화입니다. 그런데요. 계절의 변화는 매우 느리잖아요. 1년은 너무 길어서 어떤 기준으로 삼기가 힘들죠. 또 적도 지방 같은 곳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요. 따라서 단순히 계절의 변화로만은 달력을 만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달력을 만들려면 아무래도 천문현상이 필요했겠죠. 이때 가장 쉬운 것은 달의 모양의 변화입니다. 달을 기준으로 하는 달력을 태음력이라고 하는데요. 태음력은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이미 석기시대에도 존재했고, 바빌로니아와 로마 등 고대 왕국에서는 태음력을 선호했습니다. 왜냐하면 태음력으로 1년은 354일로 보거든요. 태양력보다 열 하루나 짧기 때문에 3년마다 한 달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태음력은 단점도 많았다고, 북아이오아 대학교 토마스 학키 교수는 설명합니다.

//학키 교수//
“전통적으로 한 달이 시작되는 시기는 초승달이 뜨는 시기인데요. 하지만 초승달을 관찰하기가 쉽지 않죠. 해가 진 직후에나 볼 수 있는 현상이고, 또 해가 지고 초승달이 뜨는 각도가 일정하지 않고요. 위치에 따라 초승달을 볼 수 있는 날이 다른 것도 문제였죠. 기후가 다르거나 지구의 위도나 경도가 다른 곳에 살고 있으면, 서로 다른 날 초승달을 보게 되거든요.”

이같이 태음력을 사용한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이집트인들은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태양력을 사용했습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바빌로니아에서는 태양력도 사용했다. 태양력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사용한 곳은 이집트였다. 이집트인들의 태양력은 나일강이 범람할 때 한 해가 시작된다. 이집트인들에게 한 해는 강이 넘치는 ‘범람’, 종자를 뿌리는 ‘파종, 곡식을 거두는 ‘추수’의 세 계절로 구성돼 있었다.”

네, 이집트인들의 한 해는4계절이 아니라, 범람과 파종, 추수의 3 계절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의 1년은 360일이었는데요. 이집트인들은1년 365일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마지막 5일은 축전기간으로 정하고 놀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집트 달력의 문제점은 윤년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안양대학교 이정모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이정모 교수//
“그런데요. 이집트 달력에는 윤년이 없었습니다. 4년마다 하루씩 빼먹게 되는 거죠. 1년은 4년마다 한번씩 366일이 되잖아요. 그런데 이집트 달력은 매년 365일이었던 거에요. 윤년을 계산하지 않으니까 점차 나일강의 범람하는 계절이 달력에서 보이는 새해와 멀어지게 됐죠. 달력이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1440년이나 지나야, 다시 달력이 맞게 됐습니다. 즉 달력의 기능이 사라진 것이죠. 달력의 기능이 사라졌다는 것은 지배층의 권력이 약화된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결국 기원전 3세기경에 외래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3세 시대가 돼서야 달력에 윤년을 도입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문화권에 따라서 사람들은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태양력을 사용하기도 했고요. 달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 두 가지를 보완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로마 달력에서 발전한 것입니다.

//이정모 교수//
“고대 로마 최초의 달력은 도시국가 로마를 건설한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로물루스 달력이라고 하죠. 당시 달력은 과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이었습니다. 1년의 길이가 지금의 마치(March)부터 디셈버(December)까지 10개월이고 304일이었어요. 농한기인 지금의 11월과 12월은 달력에 표시가 되지 않았죠. 이 후엔 기원전 8세기가 돼서야 누마 폼필리우스가 달력을 개혁하여 누마 달력을 만들었는데요. 그러면서 11월과 12월이 생겼는데, 이 때 11월은 재뉴어리 (January)였고 12월은 페브러리 (February)였습니다.”

네, 로마의 2대왕인 누마 폼필리우스는 1년을 10달에서 12달로 늘렸습니다. 누마 달력에 따르면 평년은 355일, 윤년은 382일이었는데요. 이처럼 1년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떤 해는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했고, 관리들의 임기도 들쑥날쑥 했기 때문인데요. 기원전 48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권력을 잡으면서, 달력 재정비를 단행하게 됩니다. 이집트의 태양력을 도입한 이 율리우스 달력은 그 후 1천5백여 년 동안이나 유럽 사회에서 사용됩니다.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새해를 맞이하며 달력의 유래와 역사를 살펴봤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율리우스 달력의 도입과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우스 달력이 나오게 된 배경에 관해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도 기대해 주시고요. 저는 여기서 물러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