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북한주민들, 식량난 이후 당국에 대한 인식 달라져’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절 북한주민들의 일상을 다룬 책이 최근 미국에서 출판됐습니다. ‘세상에 부럼 없어라’라는 제목의 이 책은 식량난을 겪는 함경북도 청진 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생생히 전하고 있는데요. 이 책을 쓴 바바라 데믹 기자를 최원기 기자가 인터뷰 했습니다.

문) 바바라 데믹 기자님 안녕하십니까. 최근 북한에 대한 책을 출판하셨는데요, 먼저 자기 자신을 좀 소개해 주시죠.

답) “네, 저는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신문의 베이징 특파원으로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01년부터 6년 간 서울에서 근무하면서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2008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등 지금까지 평양을 세 차례 방문했고, 그밖에도 금강산과 개성, 그리고 연변 등 북-중 접경지대를 여러 차례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

문) 이번에 펴낸 책 제목이 영어로 `NOTHING TO ENVY’ 한국말로 번역하면 ’세상에 부럼 없어라’인데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시죠.

답) “북한주민들의 진정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어 이 책을 썼습니다. 미국인들에게 ‘북한’ 하면 떠오르는 영상은 ‘아리랑’ 같은 집단체조나 김일성 광장에서 총을 메고 행진하는 장면 같은 것인데요. 저는 그런 정형화된 북한의 모습 말고, 그 사회에서 주민들이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다 인간적인 측면을 전하고 싶어 이 책을 썼습니다.”

문) 이 책을 통해 북한에서도 특히 청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을 조망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답) “네, 청진은 함경도에 있는 항구로 북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데요. 제 책은 청진에 살고 있는 대학생, 유치원 선생님, 의사 등 6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청진이라는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일반인들을 5년 간 지속적으로 인터뷰 함으로써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 북한의 식량난이 언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할까요?

답) “북한의 식량난은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그 때부터 배급이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배급이 지속적으로 줄더니 90년대 들어서 청진에 식량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문)식량 배급 중단이 일반 주민들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놨습니까?

답) “제 책에 등장하는 ‘미란’이라는 여자는 청진에서 유치원 선생님을 하던 사람인데요. 1995년에 식량 배급이 중단되자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음식을 더 이상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유치원생들이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도시락을 못 싸오는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도시락에서 밥을 한 숟가락씩 덜어서 도시락을 못 싸오는 어린이에게 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는 이나마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면 도시락을 못 싸오는 어린이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문)식량난을 견디다 못해 중국으로 탈출하는 주민도 생겼죠?

답) “네, 제 책에는 청진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중국으로 탈북한 여성의 얘기가 나오는데요. 이 사람은 김일성과 당에 충성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자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갔는데요. 이 사람은 중국 땅에 넘어와 한 민가의 마당에서 우연히 ‘개밥’을 보게 됩니다. 쌀밥에 고기가 좀 들어 있는 개밥이었는데요. 이를 본 북한 의사는 ‘중국의 개가 북한의 의사보다 잘 먹는다’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문)식량난을 겪는 과정에서 ‘착한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말도 나돌았다고요?

답) “그 얘기는 송 씨라는 성을 가진 여자가 해준 얘기인데요. 그 여자는 원래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김일성, 김정일에 충성을 다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90년대 식량난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노동당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굶어 죽기 딱 좋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당은 ‘장마당에 가지 말고, 직장을 착실히 다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직장을 아무리 다녀도 배급이 안 나오니까, 고지식하게 당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굶어 죽는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북한에서는 ‘1등 머저리는 직장 나가는 사람’이라는 말이 퍼졌다고 합니다.

문) 식량난을 겪는 북한사회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말 같은데요. 식량난을 겪으면서 노동당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인식에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저는 식량난을 계기로 노동당을 보는 북한주민들의 시각이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함경도 쪽에서 북한 당국의 화폐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이것 역시 주민들의 달라진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북한 당국이 워낙 강압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주민들이 대놓고 저항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문)북한에 식량난이 발생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요. 상황이 개선됐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최악의 상황은 지났지만 식량 부족 사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끝으로, 북한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답) “북한주민이 미국 기자와 인터뷰 하는 것을 북한 당국이 싫어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모두 김일성-김정일에 충성 하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식량난 와중에 이런저런 이유로 중국으로 탈출할 사람들이죠. 따라서 북한 당국이 이 방송을 듣고 그들의 친인척에게 어떤 불이익을 주거나 박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