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명분으로 사용됐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의혹  갈수록 증폭  - 2004-02-11

미국과 영국은 각각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했다는 전쟁 전 정보 판단에 대해 독자적인 조사에 착수할 계획입니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이라크가 그같은 무기를 보유했다는 주장을 전쟁에 돌입하는 가장 중요한 명분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미국의 전 이라크 무기사찰단장은 그같은 무기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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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라크 국민들은 대량 살상 무기의 증거가 없는 것은 미국이 왜 이라크를 침공했는가에 관련해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의혹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바그다드의 상인인 투르키 알-자부리 씨는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했다며 이라크 점령의 이유로 내세웠던 부쉬 대통령을 만나, 지금 그 증거는 무엇이며 또한 대량 살상 무기를 발견했느냐고 묻고 싶다면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이유는 점령과 식민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수 년동안 화학 무기 개발을 담당했던 이라크 과학자 칼레드 프란시스 씨는 보다 냉정한 태도를 취했지만, 결론은 같았습니다. 프란시스 씨는 모든 것들이 과장됐다고 지적하면서,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전쟁의 이유를 원했고, 대량살상무기 보유 주장이 바로 그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사담 후세인이 보유한 무기들이 세계 안보에 즉각적인 위협을 제기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엔 무기사찰단은 2002년 이라크로 복귀했지만,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직후부터 활동한 미국 무기 사찰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달 데이빗 케이 미국 사찰단장이 사임했고, 그 후 케이 전 단장은 미국 상원 군사 위원회 증언을 통해, 이라크 무기 위협에 관한 전쟁 전 정보는 잘못된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케이 전 단장은 자신의 생각으로는 우리 모두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었던 것으로 판명됐다고 말하면서, 그 점이 가장 혼란스럽다고 덧붙였습니다. 데이빗 케이 전 단장의 그같은 결론은 워싱턴과 런던의 정치계와 정보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바그다드의 과학자 칼레드 프란시스 씨는 케이 전 단장의 그같은 평가에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프란시스 씨는 사찰단이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같은 무기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란시스 씨는 이라크의 그같은 무기들이 10년 전에 파괴됐다고 말하면서, 적어도 화학무기들이 파괴됐다는 사실은 자신이 잘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프란시스 씨는 걸프 전쟁 이후에 이라크 정부는 모든 무기 개발 계획을 중단시키고, 대신 그같은 계획을 살충제와 제초제, 그리고 다른 제품들을 만드는 계획으로 변경했다고 말하고, 보유하고 있던 모든 무기들도 파괴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프란시스 씨는 자신이 이라크의 모든 무기들이 파괴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무기 파괴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친구나 동료들이었기 때문이라면서 , 또한 자신은 가장 중요한 부서인 연구실에 근무했기 때문에 밖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칼레드 프란시스 씨는 1987년부터 1997년까지 화학무기 개발 연구실에서 근무했습니다. 1990년 대 초까지 여러 해 동안 프란시스 씨는 겨자 가스나 사린 가스, V-X 신경가스 같은 치명적인 물질의 품질 관리를 맡았습니다. 프란시스 씨는 미국의 소리와의 회견중에, 이라크 정부는 원했다면 몇 달안에 쉽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학 무기 개발 계획의 재가동을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프란시스 씨는 이라크 정부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화학무기 개발 계획을 재가동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장비는 아주 간단한 것만 필요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프란시스 씨는 복잡한 도구나 장비가 전혀 필요없는 일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그러나 자신이 아는 한 그 같은 프로그램을 다시 재가동하려는 구상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프란시스 씨는 1990년대 초 화학무기들이 파괴되고 난 후, 자신은 세제와 다른 산업용 용액에 사용되는 염소 제조 공장으로 보내졌다고 말했습니다. 1997년에 그 공장을 떠난 후 지금은 아주 다른 일을 하고 있는 프란시스 씨는 다시는 화학 분야에서 일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