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해 남한의 모든 조문단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23일 남한의 모든 조의 대표단과 조문 사절을 '동포애의 정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개성육로와 항공로도 열어놨다며 조문객들의 모든 편의와 안전을 충분히 보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그러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유족의 조문단 방북만 허용한다는 한국 정부의 방침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북한은 한국 정부의 방침은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야만 행위라며 민간의 조의 방문을 허용하고, 한국 정부도 응당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담화문 형식으로 표한 조의에 대해서도 “공식 애도와 조의 표시를 부정하고 주민들을 위로한다는 식으로 불순한 속심을 보였다고 비난했습니다.
북한이 한국 정부의 조의 표시와 제한적인 조문 허용 방침에 반응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 통일부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국회에 출석한 류우익 통일부 장관의 말입니다.
“정부가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고심 끝에 내린 판단이니까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 일행이 답방 형식으로 조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줬으면 합니다. 이 문제로 계속 논란을 이어가는 것이 향후 남북관계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말씀 드립니다.”
한국 통일부 관계자는 ‘미국의 소리’ 방송에 북한이 남한을 비난한 것은 조문단 문제를 두고 남한 내 분열을 노린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통일부는 또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이 방북할 때 동행하는 정부 측 실무진은 방북을 지원하고 연락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 실무진이 별도의 조문은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의 민화협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 일부 단체들은 민간 조문단 파견 방침을 세우고 통일부에 의사를 전달한 상태입니다. 민화협 이운식 사무처장입니다.
"민간 조문단 파견은 현재 불안정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향후 북한 새 지도부와 남북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데 하나의 큰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민간단체의 조문이 남북관계 개선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문 문제를 둘러싸고 남북간 입장이 맞서면서, 일부에선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와 비슷한 조문 파동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야당과 민간단체가 조문단 파견을 주장했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불허해 남남 갈등이 증폭되고 남북관계 역시 크게 악화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1994년처럼 조문 문제가 급격한 남북관계의 악화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습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김영윤 박사입니다.
“한국 정부가 그동안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서 벗어나 대북정책 기조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요. 따라서 94년과 같은 조문 파동은 나오지 않을 것이고 양측이 합의를 해 조문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사망 이후 사실상 북한에 조의를 표하고 민간 조문단 파견 허용 등 유연한 대북 메시지를 잇따라 취하고 있습니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도 이날 국회 남북관계발전특위에서 북한 새 지도부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의 공식 입장은 남북간 기본합의에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돼 있습니다. 새 지도부의 등장을 계기로 북한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길 바라고 이를 위해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북한의 애도 기간이 끝난 뒤 내년 초 신년 공동사설을 지켜본 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