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 애도기간이 끝난 뒤 북한이 발표한 첫 대남 메시지는 매우 강경했습니다.
성명서는 무엇보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했습니다.
표면적으론 김 위원장 조문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를 비난의 주된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천안함 연평도 도발에 대한 사과 요구를 거둘 것을 압박한 내용입니다.
특히 이번 성명서는 다음 달 2일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연설을 겨냥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이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대북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의 해빙은 없다는 점을 북한이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다만 성명서가 군과 인민이 앞으로도 북-남 관계 개선과 평화번영의 길을 향해 힘차게 나갈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북한이 여전히 대화의 여지를 남겨 놓은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남측이 신년사를 통해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와 대화와 협력을 할 용의를 밝히면서 고위급 회담이나 관광 재개 회담을 제의하면 북한도 호응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또 1년 정도 남긴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남북관계 긴장을 높임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놓고 한국 내 갈등을 극대화시키려는 움직임도 한층 본격화되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성명서가 6자회담 재개 협상과 관련해서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만 협상을 벌이는 이른바 ‘통미봉남’ 전술의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날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역사는 이미 17년 전 대국상을 당한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댄 자들이 어떤 비싼 대가를 치렀는지 기록하고 있다”며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한국이 미-북간 핵 협상에서 소외됐던 일을 새삼 끄집어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미-북 3차 대화 직전에 중단된 6자회담 재개 협상에는 적극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북한을 관리하는 차원에서라도 대화를 마냥 거부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국책연구기관인 외교안보연구원 김현욱 교수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오바마 재선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만약 북한이 미사일이나 핵을 또 발사하면 상당히 치명적이거든요, 공화당 쪽에서 엄청 비난할 거란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 2기가 들어설 때까진 북한과 원하지 않는 대화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집니다.”
북한의 새 지도부가 애도기간이 끝나자 마자 이처럼 강경한 대남 노선을 밝힌 데 대해 김정은 체제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당과 군의 노장세력들을 끌어안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박병광 박사입니다.
“새로운 지도자가 강경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내부에서의 존재가치를 더 강하게 드러내고 또 기존의 당과 군 특히 군쪽의 노장들의 기존 노선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런 제스처를 쓴 것으로 저는 보죠.”
성명서에서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북한의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국방위원회가 대변인 명의로 내오던 성명을 이번엔 이례적으로 기관 명의로 낸 점입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 사후에도 국방위원회가 건재하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려는 의도로 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사이에선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직을 맡으면서 김 위원장 사후 권력의 중심이 국방위에서 당으로 급속하게 옮겨갈 것이라는 관측들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