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미국 대선이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인데요.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주요 정치적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현장에서 취재한 인물을 오늘 초대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정치부장을 지내고, 현재 정치담당 부국장(deputy national politics editor)을 맡고 있는 에이미 가드너 기자인데요. 지금 바로 이야기 듣겠습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가드너) 물론이죠! 제 이름은 에이미 가드너입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정치 전문기자인데요. 정치부와 산하 조직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저희 정치부는 편집국 내에서, 주요 정치적 사안에 대해 ‘심층 보도’하는 기자들의 모임인데요. 정치 현상의 이면을 함께 풀어냅니다. 다시 말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사건들 보다 깊이 들어가는, 분석과 전망 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정치 기사 중에, 속보나 단신들은 정치부 밖에서 우선 처리합니다.
기자) 언론에 입문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가드너)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언론인이 됐어요. 펜실베이니아대학교를 나온 게 1990년이니까 벌써 30년이나 됐네요. 대학신문에서 일한 것까지 치면, 그보다 더 됐고요. 뉴욕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 버지니아주의 지역 신문에서 주 정부 출입 기자를 했었고요. 워싱턴포스트로 옮긴 것은 2005년입니다.
기자) 기자가 되기로 결심하신 계기는 뭡니까?
가드너) 신문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고등학교 때부터 품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동기가 재밌는데요. 저의 학교에 제대로 된 교내 신문이 없었어요. 미국의 웬만한 학교엔 다 있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대학에 가자마자, 대학신문에 열정을 쏟았어요. 그때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취재하면서 언론 전반에 애정이 더욱 커졌습니다. 졸업 후에도 계속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미국과 전 세계에 사는, 각자 다른 모습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나 좋았어요.
기자) 그럼 30년 넘는 경험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과 나빴던 걸 꼽는다면 뭡니까?
가드너) 가장 나빴던 경험을 말씀드릴게요. 아주 어린 ‘새끼 기자(cub reporter)’ 시절에, 지역 신문에서 카운티 정부 이야기를 보도하다가, 터무니없는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당국이 공청회도 없이 특정 정책을 시행한다고 기사를 썼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로는 아직 승인받지도 않은 정책이었습니다. 공청회를 하려면 몇 주나 더 남겨둔 상태였어요. 제가 섣불리 기사를 썼던 거예요.
기자) 어떤 정책이었습니까?
가드너) 그 사안이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도 안 나요. 너무 창피했던 기억 때문인데, 아마 토지 사용에 관한 현안이었던 것 같아요.
기자) 그 실수를 어떻게 만회하셨나요?
가드너) 굴욕적인 실수를 통해, 아주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내가 이 일에 대해 아는 게 뭔지, 그리고 모르는 건 뭔지 먼저 정리하는 습관을 갖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도 점검하고, 또 점검하고, 모든 절차를 이해했는지 스스로 확인했어요. 필요한 사람을 모두 만났는지도 살핍니다. 그리고 다시 기사의 주제로 돌아왔을 때, 아무런 두려움 없이 쓸 수 있으면 그때 기사를 쓰고 있어요.
기자) 기사의 ‘정확성’을 확보하는 장치를 여러 단계 마련하신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해당 사안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기사는 더 정교하고 정확해집니다. 때로는 기자한테 말하기를 꺼리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럴 때 더욱 자신감을 갖고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제게 말해주지 않으면, 당신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아서, 기사의 정확성과 균형감이 떨어집니다”라고 경고하는 거죠. 그러면 이야기들이 술술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결국 기사의 품질이 올라가죠.
기자) 초창기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지금은 미국 유력 매체의 정치부 조직을 이끌고 계십니다. 여성으로서 이 자리에 오는 게 어렵진 않았나요?
기자) 음, 저는 아주 운이 좋았어요. 제 경력을 통틀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워싱턴포스트의 정치 전문기자라면, 사실 언론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위치잖아요. 지금은 별다른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자 생활 초창기에는 제 성별(여성)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주요 정치인이나, 공보담당자들을 비롯한 취재원들이 ‘젊은 여자가 기자야?’ 하는 식으로 대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기자) ‘젊은 여자는 기자가 될 수 없다’는 게 과거의 분위기였나요?
가드너) 젊은 여자는 능력도 없고 아는 게 별로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분위기였어요. 저의 실체를 파악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저평가하는 거죠. 젊은 데다가 여자니까, 경험도 부족할 테니, 기자로서 진지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기자) 그런 시각을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가드너) 기사로 승부했어요. 취재원들을 놀라게 했던 거죠. 주요 정치인들과 대통령 후보 등이, 제가 쓴 기사를 읽어보고, 깊이와 통찰에 탄복했다는 반응을 많이 보여줬어요. 그 뒤로는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기자) 신문사 내부적으로는 ‘양성평등’ 상황이 어떤가요? 여성으로서 책임자 위치에 계시잖아요.
기자) 음, 역사적으로 훨씬 많은 남성이 책임자 위치에 있었죠. 모든 언론 매체에서 공통된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냐면,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쳐요. 여성의 관심사와 남성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이죠. 여성들이 크게 가치를 두는 사안도 남성들이 볼 땐 별일 아닐 수 있잖아요. 그래서, 남성의 관심사가 보도의 주된 방향이었습니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인데도요. 그런데 지금은 변하고 있습니다. 많은 여성이 책임자급 위치에 오르고 있으니까요.
기자) 지금은 언론사들이 뉴스 가치 판단에서, 이전보다 성별 안배를 고려하고 있는 겁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지금은 각 언론 매체가 ‘다양성(diverse)’ 문제에 아주 큰 압박을 받는 상황이에요. 사회적인 요구가 커지고 있으니까요. 뉴스 가치 판단뿐 아니라, 기자들의 업무 배치와 보직 선정에도 다양성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기자)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말씀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저희 신문사(워싱턴포스트)의 2020년 대선 보도팀은 성별에 있어 엄청나게 균형 잡힌 인원으로 구성됐어요. 대선을 보는 시각에 있어 여성과 남성이 다르니까, 기자들도 남녀 고르게 배정한 거죠.
기자) 이제 ‘언론 자유’ 이야기를 해보죠. 현재 미국 사회의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이나 주시겠습니까?
가드너) 10점(만점)을 주겠습니다. 우리(미국)의 수정헌법 1조로 빛나는 항목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 보장’이니까요. 우리(미국인들)는 그 점에서 매우 행운입니다. 하지만 제가 한 가지 우려하는 건, 그것(언론 자유)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인지 모르는 미국인들도 있다는 점이에요. 언론 자유가 당연한 걸로 아는 거죠. 그게 없을 때 어떤 상황일지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세계를 내다보면 언론 자유 없는 나라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도 말이에요.
기자) 미국인들이 왜 언론 자유를 당연하게 생각할까요?
가드너) 미국의 뉴스 독자와 시청자들은 국제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다른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죠. 그 결과,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에 감사하는 정도가 낮아요.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자유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데도요.
기자) 하지만 최근 일부 정치인들이 언론을 적대시하는 게, 언론 자유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가드너) 물론, 그런 언사가 주류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저하할 수 있습니다. 불행한 사실이죠. 하지만 그런 일은 ‘언론 자유’와는 별개 문제에요. 우리(기자)들이 할 일을 못하도록 (물리적으로) 막거나 탄압하는 게 아니잖아요.
기자) 정치 전문기자로서 현재 대선 정국을 간략히 평가해주시죠.
가드너) 제가 보기엔, 지금 우리나라가 너무나 갈라져 있어요. 양쪽(공화-민주 양당)의 입장이 그야말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니까요. 역대 어느 대선에서도 이 정도로 벌어져 있던 적은 없습니다. 미국이 처한 현실에 대한 분석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시각이 확연하게 다르잖아요.
기자) 양쪽의 시각이 그렇게 달라진 이유는 뭘까요?
가드너) 핵심 지지층 밖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을 안 하기 때문이에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할 메시지를 개발하고 제시하는 게 정치의 본연인데, 양쪽 모두 그게 없는 겁니다. 11월 3일 대선 이후에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우리 모두에게 질문해야 될 시점이에요.
기자) 아쉽지만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가드너) 여성을 포함해, 세계의 젊은 언론인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한 마디로 ‘나가서 일하라’는 겁니다. 지금 처한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저변을 넓히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그래야 언론 환경이 변하고, 사회가 변합니다. 학교 문제든, 교통 문제든, 사회적 현안이든, 언론이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게 개선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북한까지 이 방송이 송출된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르겠어요. 대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워싱턴포스트 소속 에이미 가드너 정치 전문기자의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