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언론인 대담] ‘엔론 스캔들’ 특종 기자, 베사니 매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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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시간입니다. 저는 오종수입니다. 지난 2천년대 초, 미국 정ㆍ재계를 뒤흔든 대형 추문이 발생했습니다. ‘엔론 스캔들’이라는 사건인데요. 유수의 에너지 기업이었던 ‘엔론(Enron)’이 정치인들에게 막대한 후원금을 제공하고, 회계 부정을 하다가 파산한 일입니다. 이 사건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여파를 불러왔는데요. 엔론의 부실 운영 실태를 세상에 처음 알린 언론인을 오늘 초대했습니다. 경제전문매체 ‘포천(Fortune)’ 편집국장을 지내고, 로이터통신 논설위원을 역임한 베사니 매클린 기자와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베사니 매클린 기자

기자) 안녕하세요, 바쁘신 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VOA 한국어 방송 청취자들께 자기소개를 해주시죠.

매클린) 제 이름은 베사니 매클린입니다. 언론인이자, 책을 여러 권 쓴 저술가이고요. 포천과 경제전문방송 CNBC, 그리고 로이터통신을 거쳐, 종합 교양지 ‘베니티 페어(Vanity Fair)’ 편집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방송 패널과 강연자로도 활동하는 중입니다.

기자) 포천에서 엔론 스캔들을 특종 보도하신 걸로 유명하잖아요?

매클린) 제가 사태를 최초 보도했다기보다, 엔론의 부실을 처음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이라고 보시면 돼요. ‘엔론 주가는 과대평가됐나(Is Enron Overpriced?)’라는 제목으로, 2001년 3월에 기사를 썼는데요. 엔론 재무보고서에, 높은 주가를 뒷받침할 만한 결정적인 정보들이 빠져 있던 점을 지적했습니다. 엔론이라는 기업이 겉으로 보면 대단하지만, 속이 부실한 상황이라는 이야기였죠.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시원찮았어요. 당시 엔론은 모두에게 칭송받던 기업이었거든요.

기자) 말하자면 ‘우량기업’으로 통하던 엔론의 경영 상태를, 매클린 기자가 의심한 거군요?

매클린) 그렇죠. 심지어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을 언론이 꼽으면 항상 엔론이 들어갔어요. 당시, 미국과 유럽 사이에 거래하는 에너지의 20%를 담당하는 거대 기업이었거든요. 원래 작은 회사였다가 10여 년 만에 빠르게 성장하면서 주목받았어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경영 기법과 사업 방식도 잇따라 선보였고요. 당시로선 선구적이었던, 온라인 사업에도 발을 뻗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재무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상한 점이 많았어요. 이런 확장세를 뒷받침할만한 실제 능력이 보이지 않았던 거에요. 그래서 제가 처음 기사를 썼을 때, ‘왜 저렇게 쓸데없는 의심을 하지?’라는 게 대중의 대체적인 반응이었어요. 촉망받는 혁신 기업이 부실 운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던 거죠. 제가 근거를 제시했는데도요.

기자) 하지만 회사를 무리하게 성장시키면서 차입 경영에 의존했고, 그 손실을 감추려고 분식 회계를 한 사실이 밝혀졌잖아요. 매클린 기자는 먼저 문제 제기를 했던거고요.

매클린) 네. 그 결과로,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던 회사가 갑자기 무너진 거죠. 제가 보도한 1년쯤 뒤에 결국 파산 신청을 했으니까요. 미국민 모두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정도 비중의 회사가 갑자기 몰락하면, 경제ㆍ사회적 여파가 굉장히 크거든요. 직접적으로, 엔론 주식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막대한 피해를 본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제 보도가 어느 정도 예고편 역할을 하면서 충격을 줄여줬던 걸로 봐요.

기자) 이 사건을 지금 되돌아보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매클린) 스캔들이 터진 게,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10여년쯤 앞선 시점이었어요. 당시 엔론이 무너지는 걸 다른 매체들도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 관계 업체들을 비롯한 여타 기업들의 줄도산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10년 뒤인 금융위기 때도 이렇게 위기를 예측하는 보도 활동이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어요. 정부가 미리 적절한 규제 등을 통해 대처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 게 언론의 순기능 중 하나예요. 또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 사태로 경제 상황이 불확실하잖아요. 어느 때보다 언론의 감시 역할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기자) 젊은 여성 언론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존경하는 인물로 매클린 기자를 꼽는 사람이 많습니다. 탁월한 취재력과 끈질김, 예리함을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기자 생활하신 지 얼마나 됐습니까?

매클린) 1995년에 시작했으니까, 하하하, 벌써 25년이나 됐네요. 하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한 건 더 오래전입니다. 1990년대 초에, ‘골드만삭스(Goldman Sachsㆍ유명 투자은행)’에서 기업 투자 분석가로 일했어요.

기자) 투자 분석가로서 전문성이 있었기 때문에, 엔론의 부실을 집어낼 수 있었던 거군요. 언론인으로 방향을 바꾸신 이유는 뭡니까?

매클린) 직업상 매일 경제 뉴스를 점검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언론 보도 환경에 익숙해졌어요. 글 쓰는 재주도 좀 있고 해서, '내가 직접 기사를 쓰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 때 전공이 영문학이거든요. 은행에 다닌지 몇 년 만에 ‘나한테 좀 안 맞는 일이다’라는 마음이 들던 시점이었어요. 그래서 경제 전문 기자가 되는 게, 제 전문성과 경험을 살릴 완벽한 목적지라고 판단했어요.

기자) 언론계 입문 이후 여성으로서, 지금처럼 성공적인 인물로 인정받는 과정이 어렵진 않았습니까?

매클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약받은 적은 없어요.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제가 언론 생활을 시작한 포천에서, 동등하고 공평한 처우를 해줬거든요. 기사를 구상하거나 특집 기획을 내놓은 게 훌륭하다고 판단되면, 성별이나 연차에 상관없이 힘을 실어주고 공을 인정해줬어요. 그 결과로 제가 몇 년 만에 편집국장까지 승진했잖아요. 그런 공평한 사내 문화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여성으로서, 거대 기업 엔론을 대상으로 특종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기자) 좋은 보도 소재나 취재 대상을 남자나 선배 기자가 가져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군요?

매클린) 네. ‘엔론에 관해 이러이러한 게 의심된다’, 이렇게 담당 부장께 말씀드렸더니, ‘그래? 네가 증명할 수 있으면 써 봐’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어요. 오히려 취재 대상인 엔론으로부터, 여자라고 무시당한 정황이 있었어요. 엔론 회장이 직접 포천 고위층에 전화를 걸어와서, 제가 쓰는 기사를 못 내도록 압박하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비교적 괜찮았던 제 경험을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기자) 본인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무슨 뜻입니까?

매클린) 요즘 코로나 사태로 경제 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직장 내에서 여성들이 불리한 게 현실이니까요. 여성은 육아와 가사, 그리고 경제활동까지 이중 삼중 부담을 지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원격교육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게 못 가게 되니까 엄마들은 더욱 직장 생활하기가 어렵죠. 여성 언론인 중에서도 엄마들이 많습니다.

기자) 그럼 지금까지 경험에 비춰, 미국의 언론 자유도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매클린) 상당히 자유롭다고 봐요. ‘표현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 이곳(미국)이잖아요. 우리(미국인들)는 탄압 당할 걱정 없이,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위해 일어나 말할 수 있어요. 다만 최근 흐름에서 우려할 요인은 있어요. 온라인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곳(인터넷 사회연결망 운영사)들의 힘이 커지고 있잖아요. 이 와중에, 전통적인 언론사들 일부는 경제적 압박으로 생존 위기에 몰리고 있어요.

베사니 매클린 기자

기자) 매클린 기자의 개인적 이야기로 돌아가죠. 지금까지 언론계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일은 뭡니까?

매클린) 흠, 특정 사례를 꼽기는 힘들고요. 솔직히 말해, 누구든지 저를 도와주는 취재원을 만날 때마다 정말 행복해요. 하하하. 기사를 풀어나갈 실마리가 꼬여있을 때, 중요한 정보를 주는 사람, 그걸 풀어나가게 해주는 사람 말이죠. 그리고 개인적 발전의 계기가 되는 사람도 있잖아요. 인터뷰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배울 점이 있고, 영감을 주는 인물들 말이에요.

기자)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시는군요?

매클린) 네. 흥미로운 사람을 만나고, 얻어낼 만한 걸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게 취재ㆍ보도 활동의 모든 것이에요. 제가 쓴 기사가 온전히 제 지식과 능력에서 나왔겠어요?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보도가 가능한 겁니다.

기자) 그럼 가장 안 좋았던 일은 뭔가요?

매클린) 음… 가장 안 좋았던 일은 뭐랄까, 언제든지 기사를 출고하기 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내가 쓴 기사가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진 않을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담았나, 이런 걸 생각하다 보면 밤잠을 못 자기도 해요.

기자) 아쉽지만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매클린 기자처럼 되고 싶은 젊은 여성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시겠어요?

매클린) 모든 게 ‘호기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호기심이거든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해 궁금해할 줄 알아야 돼요. 그래야 질문을 할 수 있으니까요.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은 기자가 될 수 없습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VOA를 듣는 분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에게,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에 관해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

매클린) 언론 자유는 요즘 같은 때 극도로 중요합니다. 코로나 사태에서 비롯된 세계 공통의 위기 상황이어서, 정확한 정보 유통이 절실하니까요. 언론 자유가 생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정보 생산과 유통에 여성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돼요. 여성을 위한 보건 정보는, 남성 중심의 정보에서 벗어나 특화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계기가 되면, 다시 한번 초대하겠습니다.

매클린) 좋습니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또 연락하죠.

언론 자유와 양성평등,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노력하는 여성 언론인들을 만나보는 ‘여성 언론인 대담’, 오늘은 베사니 매클린 전 ‘포천’ 편집국장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