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11일은 미국의 Veterans Day입니다. 전시든 평화시든 미국의 각 군에서 복무한 모든 남녀의 공적을 기리는 연방 공휴일입니다. 한국의 재향군인의 날과 비슷한 기념일입니다. 이 시간에는 동양계 여성으로 이라크전에 출전했다 두 다리가 절단됐지만 좌절하지 않고 연방 상원의원까지 된 불굴의 베테런(veteran)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정식 이름, 라다 태미 덕워스는 1968년 3월 12일 방콕에서 화교 출신 태국인 어머니 ‘라마이 솜포른파이린’과 영국계 미국인 아버지, 프랭클린 덕워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미국 시민이었기 때문에 태미도 미국 시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미 육군과 해병대에서 복무한 군 출신으로, 미국 독립혁명 때부터 이어져 온 무장의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군 생활을 마치고 유엔과 난민 관련 기관에서 일했기 때문에 태미 가족은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폴, 캄보디아, 하와이 등 여러 곳에서 살았습니다. 태미는 방콕 국제학교는 물론 싱가포르 미국학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제학교 등을 다니면서, 태국어, 인도네시아어, 영어 등을 골고루 배울 수 있었습니다. 태미는 1985년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는 매킨리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어 태미는 하와이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워싱턴 디시에 있는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국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공부를 더 하기 위해 태미는 중부지방인 일리노이주로 가, 노던 일리노이대학교, 약칭 NIU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경제와 공공보건이 전공이었습니다.
NIU에 재학하는 동안 태미는 장교후보생 과정인 ROTC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여성에게는 전투병과 지원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헬리콥터 조종사만이 유일하게 여성 장교를 선발했기 때문에 태미는 헬기 조종사를 지원했습니다.
블랙호크 헬리콥터 조종사 훈련을 받은 태미는 장교 임관 후 주 방위군(Army National Guard)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태미 덕워스는 2004년 이라크 복무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는 중단됐습니다. 태미는 2015년에야 카펠라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태미 덕워스는 UH-60 블랙호크 조종사로 ‘자유 이라크 작전’에 참전했습니다. 블랙호크 헬기는 미 육-해-공군 주력 전술 유틸리티 헬기로, 전투지역에 장비와 물자를 나르며 직접 전투에 나서기도 합니다.
이라크에 파병된지 8개월 만인 2004년 가을, 작전 중이던 블랙호크가 이라크 반군의 RPG(Rocket-Propelled Grenade)에 맞아 추락했습니다. 이때 태미는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오른쪽 다리는 엉덩이 바로 밑까지,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까지 절단되고 말았습니다. 오른쪽 팔도 기능이 완전히 마비됐습니다. 이라크 전 중에 두 다리를 모두 잃은 최초의 여군이었습니다.
태미는 그 후 종종 그러한 희생이 덧없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라를 위해 봉사했다는데 나는 자랑스럽다. 나는 언제라도 다시 가겠다’고 말합니다. 부상 후 태미 덕워스는 워싱턴에 있는 월터 리드 육군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습니다. 덕워스는 병원에 있는 동안 소령으로 진급하고 퍼플 하트 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공군의 ‘에어 메달’, 육군의 ‘아미 커멘데이션 메달’도 받았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태미 덕워스는 미국의 정책 수립가들이 군인들의 희생에 맞는 응분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시정하는 운동을 벌인 덕워스는 부상 장병과 그 가족에 대한 처우 개선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태미 덕워스는 부상자 처리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의회에 보내고, 두 차례 관련 회의에 나가 증언도 했습니다.
태미 덕워스는 병원 치료를 마친 다음 정계 진출을 시도했습니다. 2006년 덕워스는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 하원 의원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그러나 근소한 표 차로 낙선했습니다.
그 후 덕워스는 일리노이주 보훈국장으로 임명되고 이어 2006년에는 일리노이주 정부의 보훈처장이 됐습니다. 주 보훈처에 있는 동안 태미 덕워스는 군 복무를 한 사람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는 세금 혜택을 주는 정책을 수립했습니다. 덕워스는 또 제대한 미국인과 그 가족에게 정신 치료와 보건 혜택, 주거 문제를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9년 바락 오바마 대통령은 덕워스를 연방 보훈부 차관보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태미 덕워스는 군 복무를 한 사람들이 노숙자로 떠돌아다니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덕워스는 나아가 제대한 여성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특별한 애로 사항을 해결하는데도 애를 썼습니다.
2012년 태미 덕워스는 일리노이주 제8지구에서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재도전해 당선됐습니다. 부상 여군 출신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이 된 것입니다. 하원에서 활동하면서 덕워스 의원은 군사위원회, 정부개혁감독 위원회, 2012년의 벵가지 테러 공격 등 주요 사건의 조사 위원회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하원에서 덕워스 의원은 처음 아이를 가진 여성이 여행할 때 공항에서 안전하고 청결한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한 FAM 법안을 상정했습니다. 아이를 공중변소에 안고 들어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에서 모유를 먹이는 일은 여성으로서 모욕적이고 불결한 환경이기 때문에 법제화가 필요했다고 덕워스 의원은 강조합니다.
군 복무를 마친 사람들의 자살률을 줄이고 그들의 행적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 초당적인 클레이 헌트 법 통과도 앞장서 추진했습니다. 제대한 시민들이 민간 부문에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Troop Talent 법, 군복 조달의 이중 관행을 막아 40억 달러의 예산을 줄이도록 한 규정 등 국방부와 정부 기관 전체의 낭비와 사기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습니다.
태미 덕워스는 군에서 부상을 당하기 전 일리노이 방위군 브라이언 볼스비 소령과 결혼했습니다. 덕워스는 딸 출산을 앞두고 2014년 방위군에서 제대했습니다.
2016년 태미 덕워스는 일리노이주를 지역구로 하는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이로써 덕워스는 상원에서 두 번째 아시아계 여성 의원이 됐습니다. 덕워스는 참전 중 부상으로 불구가 된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이기도 했습니다.
상원에 진출한 태미 덕워스 의원은 맨 처음 추진한 법안으로 공공사업 분야에서 관료 체제상의 지연을 줄여 고용을 늘리는 효과를 내게 한 법안을 제출해 기록적인 속도로 통과시켜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버지니아 대학과 밴더빌트 대학의 효율적 입법 센터(Center for Effective Lawmaking)는 115대 상원에서 가장 유능한 초선 상원으로 덕워스 의원을 선정했습니다.
덕워스 의원은 소수민족 기업 지원, 산업체의 남 중독 예방, 제조업 일자리 증가, 더 많은 사람의 대학 진학을 위한 지역사회 지원 등 많은 분야에 걸쳐 왕성한 의정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2018년 덕워스 의원은 둘째 딸을 출산해 재임 중 출산한 최초의 의원이 됐습니다. 덕워스 의원은 이어 의원들이 한 살 미만의 자신의 유아를 모유를 먹이기 위해 의사당에 데리고 올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처음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모든 맞벌이 부부들에게 가정 친화적인 일터를 제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두 딸과 남편이 있는 가정주부에 의정 활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덕워스 의원은 틈만 나면 마을 급식소에 나가 자원봉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VOA 뉴스